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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16. 2021

글 나와라 뚝딱. 이만큼~

사남매 키우는 부부 깜짝 도깨비여행



이 역마살은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된지 모른다.


나는 그라고 주장하고 그는 나라고 주장한다. 여튼 우리는 그렇게 역마살낀 부부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뉴욕에서 만나 부산에서 결혼하고 텍사스에서  아이둘 낳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양주, 동대문구, 지금집까지

 

2번의 국경 8번의 이사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역마살은 안정적인 삶을 사는데 치명적인 우리로 만들고 있다. 여수를 100번은 다녀온것 같고, 아빠가 있는 곳이라면 해외도 마다하지 않고 5,4.3.8개월 짜리를 줄줄이 매달고 열혈히도  따라다녔다.


둘이 아무리 마음이 맞아도 챙겨야 할 것들 앞에서 망연자실할법도 한데, 많이 단련되어 있어 이제는 손발이 척척이다.


코로나4단계를 품은 여름방학. 초등학생 3명과 유치원생1명이 함께 하는 다소좁은 우리집 라이프는 힘에 부친다. 안 그래도 슬럼프님까지 오신 엄마는 '오늘 하루 재밌을 꺼리'를 찾아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 핫 여름.


그러던 중. 나만 힘든게 아니었는지 무료한 방학을 보낼 묘안이라며 아이중에 하나가 '도깨비 다시 보고싶다.'라는 말을 흘렸다. '내 최대 인생드라마를 요녀석들이 어찌알지?' 나 때문에 아는거겠지만.. 여튼 우리는 마음이 맞아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자마자 다시 커튼을 치고 거실에 이불을 깔고 전기를 모두 소등했다.



그리고 넷플렉스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 내 힘겨운 삶에 등불이 되어준 명작드라마를 소환했다. 그렇게 낮에 시작한 정주행은 밤이 될때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저녁까지 시켜먹으면서 '한편더! 한편더!'를 이어간다.


8편이나 봤을까. 시간으로 따지면 10시간에 가까운 드라마행은 진짜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못할 짓, 또 나에게도 할짓이 아니라며 먼저 잠들었던 남편은 다음날 널부러져있는 우리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공범인 큰딸과 큰아들 그리고 나조차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자' '매주 토요일 2~3편을 보는 정주행'으로 이어가보자 결론내고 일요일은 무료하게 각자 딩굴거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앞집 아줌마가 극도로 흥분한채로 우리집 현관에 서있다. 작년 갓 이사왔을 때부터 '이웃 트라우마'로 저자세로 고개를 팍 숙이고 인사를 했는데, 그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일단 아이가 많으면 죄인이되야 하는건지, 인사도 안 받아주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갔던 옆집 아주머니, 근 1년 동안 그 어떤 왕래도 없었고 가끔 아이들말로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해서 씁쓸했을 그 뿐인 그런 앞집이었다.

 

알콩달콩 서로를 챙겨주고 음식도 나눠먹으며 온정있게 사는 이웃을 꿈꾼것은 지나친 기대였을까? 이번에도  그런 복은 없나보다 하며 아쉽지만 애써 신경안쓰고 살던 앞집.


나를 불러내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우리집 앞에 서있다. 지난 집 층간소음문제로 시작되어 선을 훌쩍 넘어 우리집을 괴롭히던 아래층과의 분쟁, 그 지옥같은 나날이 떠오른다.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기 힘든, 말도 안되는 소리를 계속 이어가신다. 내가 당신을 욕하는 소리 뭐라고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왜 남얘기 하냐고.


나는 이성과 논리로 응대할 대상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차분하게 우리집 구조랑 그 집 구조상 앞집소리가 들릴리가 없지 않냐 안심시켰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 얘기를 왜 하겠느냐며. 그래도 계속 내가 발뺌하는거라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친다. 듣다듣다 못한 큰 딸이 '지금 갑자기 들어와서 뭐하시는거예요. 진짜 민폐시거든요' 하는데 내가 아이의 손을 꾹 눌러 잡았다.



내가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는지, 잠자는 방은 어딘지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왜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는채로 일단 저 힘든 마음속엔 무언가가 있겠지 싶어 최대한 내 안에 있는 친절을 모두 동원해 좋게 설명하고 마무리 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윗층에서 아까 우리집앞에서 들렸던 큰 목소리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길지 않다. 아마 말도 안되는 소리를 따져묻는 아줌마가 어이없어 밀어내고 문을 쾅 닫아버린듯한 상황이었다.


하아.... 내 이웃은 왜들 이러는가.......말이다.




그것 때문은 아닐텐데, 아예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고

여튼 우리는 갑자기 짐을 쌌고


강원도로 향한 도로를 다행히 6인식구라 뻥뻥뚤린 자동차전용도로를  밟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아빠엄마의 충동적인 선언에 익숙해졌는지

"자, 양양에 목욕하러 가자"는 말에


'지금? 갑자기? 일요일 오후인데요? 진심으로요?"

"하아......" 하며 주섬주섬 따라 짐을 챙기는 아이들.


3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썩한 아이들, 그 틈을 뚫고 굳이 둘이 얘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 부부. 주인잘못만나 쉴틈없이 전국을 누비는 카니발은 그렇게 오후5시10분 폐장 50분전에 동해바다 영진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급조된 해수욕 올여름 마지막 바다입수를 마치고 이상한 분위기로 먹은 늦은 아침 이후에 빈 위장으로 놀아댄 탓에 아이들과 엄빠는 배고픔에 절규했다. 모래를 대충 털고 옷을 차에서 갈아입히고 급히 차를 이동하던 중. 눈썰미 100단인 아빠가 크게 소리친다.


"앗!!!, 여기가 도깨비 촬영지네?"


"꺄~~~~진짜? 말도 안돼~~~"


아이들과 나는 경악했다. 정말 드라마같이. 아무도 예상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끌리듯이 온 이 곳에  도깨비 촬영지라니.! 이게 꿈인지 삶인지 혼돈스러웠다.



사진을 몇 컷 찍고 돌아서는데 잠시 사라졌던 막내가 소리를 치며 돌아온다.


"가지 마세요.!! 이거 들고 다시 찍으라고요!!"


그녀의 손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약초가 들려져있다. 뿌리에서 나는 냄새로 추측하건데 도라지인것 같다. 본게 무섭다고 그녀는 메밀꽃다발이 있어야 사진의 맛이 산다고 생각한거다. 이미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비켜선 우리를 막내딸이 두 팔로 가로막는다. 이거들고 사진찍기전에는 못간다고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그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한껏 찍고서야 겨우 풀려나 주린 배를 채우러 갈 수 있었다.


위에 막내 손에 들려있던 그 도라지다발. 메밀꽃은 꽃말이 연인인데 도라지꽃은 찾아보니 '영원한 사랑'이란다. 영원히 사랑해 꼬마도깨비 슬아야 ^^

여튼 오랜만에 겪은 이상하고 아름답고 신기한 일, 도깨비 같은 일이었다.


한 드라마를 10시간 보고나면 생기는 일들, 모두 한번씩은 겪어봤음직한 일들. 분명히 완전 반대의 외형을 갖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자꾸 운전하는 남편이 공유로 보이고 촛불을 불면 누가 나타날것 같고,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중 누군가는 수호천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면서 현실과 드라마를 착각하며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 생긴 일이라 더더욱  너무나도  놀라웠다.

 


드라마 도깨비. 분명 내가 시간 맞춰서 기다렸다가 본 몇 안되는 드라마인데 이렇게 다시보는데 새삼스럽게 대사들이 다가올수가 없다. 본방영했던 시간들을 반추해본다. 2017년초.? 아.. 메밀꽃다발 대신 아무 약초나 뽑아다가 손에 쥐어주는 막내가 돌쟁이였을때니까..


나 힘들었을때였겠구나.


저 대사가 귀에 잘 들어올리가 없었던 때구나.


그때를 견디고 나니 이렇게 사지에 아이들을 달고 남편이 시켜주는 밥 먹으면서 배 땅땅 드라마보는  행복한 엄마가 되었구나. 좋아했던 드라마를 '공유'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도깨비아저씨를 함께 '공유'하는 때를 만났구나.


나의 살아온 지난날의 서사가 새삼 파노라마처

도깨비 촬영지인 그 바다를 스쳐 풍경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새벽을 양양 어느 호텔에서 맞았다. 3시30분에 일어나 필사글을 큐레이팅하고 글벗들에게 읽혀서 좋을만한 예시글을 쓰다보니 다시 도깨비드라마와 이 장소와 지금 읽고 있는 책 '관계의 물리학' 그리고 나의 삶이 찬란하게 얽힌다.


그렇게 영혼을 쏙 빠뜨려 한편의 글을 완성하고 났더니

글벗1호님이 저쪽 방에서 어그적어그적 일어난다.


촛불대신 다이어리 쓰기로 수천번 소환해 내서 만난 나의 도깨비 아저씨다. 머리가 하늘로 다 솟아있고 오징어에 맥주를 내내 드시고 주무신 얼굴은 덕지덕지 부어서 도깨비처럼 생겼다. 그리고 내 글을 읽고 오랜만에 '격찬'을 해준다. 나는 천상 작가라고, 일상과 우주와 통찰력과 교훈이 한꺼번에 다 녹아든 완벽한 글이란다. 그리고 자기는 멀었다나?


그럼, 10개월 쓴걸로 26년 쓰기로 버텨온 삶을 따라잡을라해서 쓰나? 더 열심히 하면 좋은 날 온다고 건방을 떨어줬다.


나의 우주는 그다. 그와 함께 풍성하게 살기 위해 모든것이 설계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네 아이는 잘 키워서 10년안에 모두 잘 독립시키자는데 합의했고 나이들어서도 최고 재밌게 사는 방법은 무얼까? 생을 걸고 고민한 끝에 그에게 나의 생존수단였던 책과 글쓰기를 전수했다. 전수하는데 10년 걸렸지만 요즘 그 10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네 아이의 이야기도 재밌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 '관계의 물리학'처럼 우주와 관계와 우리의 인연을 이야기 하는데 그 생각이 내 생각과 찰떡같이 맞아떨어질때 혹은 내가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로 나의 놔관을 자극해줄때 그는 참 섹시해보인다.


그도 내가 아이엄마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매일 새벽 날것으로 잡아올린 3시30분의 글감을 받아 글을 쓰는 글벗으로서 이제는 그의 '소원'이 되어 버린 책쓰기를 먼저 한 작가 선배로 보일테니 말이다.


그에게는 얄짤이 없다. 내 생활의 전부가 다 드러난다. 그래서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존경받는 삶이 최고의 성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


그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가고 있는데 존경보다는 보살핌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그 보살핌이 아주 가치있게 쓰인다고 그가 여겨준다. 우리가 함께 정한 삶의 목표. 이렇게 부부가 우리처럼 완전하게 사랑하는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이것을 전파하는데 이번생을 쓰자고 결의했다. 그 수단이 아이를 잘 키우는 모습일 수 있고, 함께 책을 쓰는 모습일 수도 있고 이렇게 자유롭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


도깨비처럼 어디에다 쏟아부울지 모를 능력치를 가슴에 품고 쓸쓸하기만했던 29년간의 삶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음껏 펼칠 그곳, 그라는 우주와 접속했다. 서로간의 최적의 거리가 네 개의 소우주가 끼어들면서 정돈이 됐다. 그렇게 서로 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의 균형 그 아름다운 균형점에서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밀어내는 힘으로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 우리만의 우주를 키우고 있다.




다시 아이들이 깨면 주섬주섬 늘어진 짐들을 챙겨 도깨비보다 이상한 앞집 아주머니가 있는 서울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더는 완전히 두렵지 않다. 두렵다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쳐다볼 줄 아는 내가 됐다. "아. 글감떨어질때 되서 글감을 주시는건가" 모든 삼라만상이 글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여유있는 나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늘 불안에 떨던 나로서 몇일전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침대와 한몸이었던 나는 상상도 못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오락가락 리듬을 타며 살겠지만


나에겐 든든한 빽이 있다. 그라는 1차 보호막 그리고 그 주위에 네명의 똥강아지들, 그리고 보잘것 없는 나를 늘 응원해주는 찐글벗들. 이 재미난 삶의 시작은 다시 한때 나의 우주였고 지금도 그러하나 곁에 두고 소중한 줄 모르는 영혼의 짝과의 캐미속에서 생긴다는 그 사실을.


우리의 삶을 통해 조용히 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고생한 나의 유년시절에 지금에 합당한 보상인 나의 삶을 축복이고 선물임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묘약은 수많은 인연관계와 등장인물이 얽히고 섥혀 있지만

결국 글쓰기가 항상  피날레를 장식한다.


글은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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