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편견은 글쓰기에게나 줘버려
책은 내 인생의 밑그림
살면서 ‘이러면 안 된다.’ ‘살아봐라 너도 뻔하지.’ 이런 인생 선배들의 얘기 많이 들어왔다.
처음엔 귀 기울였지만, 몇 번 속다 보니 의심이 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시작할 때는 더욱 먼저 해 본 사람의 경험에 귀 기울이게 된다. 선배들의 경험을 잘 배워야 한다고도 해서 그렇게 열심히 따라 하고 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취합한 뒤 나만의 것을 찾아내는 것과 들은 대로 답습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듣는 인생은 그 사람의 인생일 뿐 결국 내 삶의 지도는 내 손으로 그려나가야 하는데 남의 것을 따라 베끼듯 부분을 그리다 보면 내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만다.
그러니 내 손으로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흰 백지를 앞두고 창작의 고통이 따르겠지만 될 때까지 놓으면 안 되는 삶의 우선순위다.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일지 지속적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특히 내 인생도 어떻게 해결이 안 되는데, 아이의 인생을 전격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들이닥치니 이건 나에게 직면한 실전 상황이었다. 유전자에 박혀있는 본능에 따라 후손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기 위한 최적의 선택을 향해 두 눈에 불을 켠다. 이때 아이를 낳아 키울 때 나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복이자 업이라고 하는 자식. 이 연이어 밀려오는 업을 복으로 바꾸기 위해서 온 마음과 생을 다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찾아 헤맨 끝에 누구나 얘기하던 책 읽기와 글쓰기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싱거운 결론이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상과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 아이들과 갇혀 사는 나에게 책만이 검증된 도구였다. 내 새끼를 위해, 진짜를 찾아내고야 말겠다 하는 거친 욕망의 입구에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책들을 비집고 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안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 책을 뚫고 나간 자리를 뒤를 돌아보니 켜켜이 쌓아 두었던 글이 있었다.
먼저 결혼한 언니들 얘기도 육아 선배 이야기도 물론 들었다. 하지만 참고만 했다.
그리고 다이어리에 쏟아내고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진짜 나라고 믿고 그것만 추종했다. 내가 다이어리를 ‘요정’이라 부르며 신격화하는 이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은 내가 진짜 원하는 내 인생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책과 노트뿐이었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좌표 찍기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자아를 찾겠다고 애썼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먼저 살아본 사람의 안내대로만 내 인생의 GPS를 잡으면 잘 살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는 꼭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는 내 판단에 따라 무작정 살아볼 수도 없었다.
책을 인생 선생님 삼아 세상을 배웠고 다이어리, 블로그에 아무 말 대잔치를 쏟아내며 나만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특히 결혼이나, 살 곳, 육아 철학, 내 평생의 직업 일생의 중요한 선택만큼은 편견에 맞서 나대로 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살아서 다행이다. 힘든 길을 걸어왔지만, 가슴 뻐근한 뿌듯함이 있다. 쉬운 길만 가는 선택은 어차피 없었던 것이다.
내가 주체적인 삶을 끌고 가느라 힘들 것이냐 따라가느라 버거울 것이냐 차이일 뿐이다.
부처님 말씀에 어차피 인생은 고의 연속이라 하지 않았는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나를 강력하게 끌고 있다. 싶으면 편견과 들은 말과 상관없이 그것에 직접 나를 꽂아볼 것을 적극 권한다. 나만이 느끼는 그 대상을 향한 이끌림은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 불가하다. 편견과 맞서 폭망 한 것도 몇 있지만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잘 되고 있다. 나의 정체성을 찾은 일. 연애하듯 사는 부부와, 잘 커가고 있는 사 남매, 평생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 일, 생을 함께 할 엄마 동료들을 만나게 된 일 등. 편견에 맞서길 참 잘했다 싶은 항목들 정리해 본다.
하나, 남자는 다 똑같다?
위험한 편견이다. 정말 남자마다 다 다르고, 특히 결혼할 남자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는 선택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내가 내 자유의지를 마음껏 펼치고 살 수 있는 대상인가?’가 제일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든 대화로 마음을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융통성과 바닥에 깔린 그 삶의 생각이 중요했다.
그걸 알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 실험, 연구를 거듭했다. 연애시절은 초반에 찌릿 시기를 건너오면 실험, 관찰계의 황금시간이 온다. 이때를 최적으로 활용해서 내 우선순위를 함께 지키고 살 수 있는 상대인가를 면밀히 뜯고 보고 나름의 분석을 해야만 한다. 나는 연애도 치열하게 했다. 평생 살 동반자를 고르는 일이라 절대 게을리할 수 없었다. 대충 할 수 없고 인생은 유한하니 쉬는 텀도 없이 연애를 했다. 그 경험이 준 내 결론은 오히려, ‘남자는 남자마다 다 다르다’였다.
둘, 결혼과 연애는 다르다?
세상에 별 남자 없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한 그 남자도, 결혼하면 즉각 유부남 1. 유부남 2가 된단다. 이 말을 제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아마 꽉 찬 나이에 학생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이 아쉬워서 나를 아끼는 마음에 하는 조언이었을 테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반대 입장이었다면 그런 조언을 하는 언니 거나 친구였을 테니까. 그러나 난 귀에 박힐 것 같은 못을 빼버리고 과감히 결혼식장 레드카펫을 밟았다. 결과는 대 만족이다. 애인이었던 그는 결혼해서도 똑같은 그 사람이었다. 아니 결혼 후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히 지금 직업도 있다. 그는 넓은 품으로 유년시절 방황으로 굳어 있던 마음을 살면서 모두 녹여주는 진짜 나에게 심폐소생술 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결혼생활은 안정적인 연애의 지속 같다. 평생 깨질 염려가 없는 연인 사이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을 뚫고 둘이서 손을 맞잡고 데이트를 다닌다. 유난이다 재 x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편견을 뚫고 한 선택 중 가장 멋진 선택이고, 나는 그에 따른 호사를 당당하게 누리는 중이니까.
셋, 애 낳고 찐 살은 안 빠진다?
나는 아이를 넷 낳고도 아이 낳기 전과 같은 몸을 유지하고 있다. 이건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나다움이기도 했다. 임신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감지 못한 채 멋모르고 첫 아이를 낳고 나서 바뀐 내 몸을 보고 아차! 싶었다. 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붙이는 것조차 짜증스러운 그 상황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타국에서의 외로움도, 젖을 못 물고 빽빽 울어대고는 아이도 아니었다. 바로 변해버린 나의 몸이었다. 임신해서 2인분을 먹으면서 찐 살은, 뺄 때는 오롯이 내 몫으로 세배, 아니 열 배는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 여실함을 안고 두 번째 화살부터는 현명하게 피해 가는 요령을 익히기 시작했다. 임신 중에 많이 걷고 운동하고 적당히 챙겨 먹었다. 열 달 간의 긴 싸움이었다. 매일매일 체중계에 나를 올려놓고 예상 킬로수를 넘을 때는 숫자가 내려올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필요하다 싶을 때는 임신 중 다이어트도 했다. 심지어 덴마크 다이어트 식단도 감행했다. 엄마로서 자격 운운하는 얘기 많았지만, 귀는 열고 마음은 닫았다. 내 엄마자격은 나 자신과 나를 엄마라 부르는 내 내 아이만이 부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일단 나는 이 몸 관리를 포기하면 나다움을 놓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육아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생물학적인 시기를 견뎌내야 하는 동안, 내 몸만이 100%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다. 다른 건 다 내 맘대로 안 되니, 이 몸만큼은 오롯이 내 뜻대로 경영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성공시켰다. 나다움을 고집한 덕에 이 고집이 결국 나를 더 좋은 일들이 있는 미래로 데려다주었다.
넷, 돈 없으면 애도 못 키운다.?
아이를 죽 데리고 식당에 간다. 옆 할머니가 묻는다. ‘다 한집 이유?’ 너무나 자주 연출되는 상황 ‘네! 다 제 거예요~ 욕심 많죠?’ 하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예상된 다음 말씀이 이어진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혹은 ‘아이고 잘 사는 집인가 보다’ 처음엔 아니에요. 저희는 월세집에 살고요. 아이는 돈이 없지만 어떻게 해서 낳은 거고요. 어쩌고 저쩌고..‘ 한사코 내 현실을 정확히 이해시켜 드리려는 정직 증후군을 발동됐다.
그런데 10년 차 요령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그 말들을 즐기고 있다. 부자로 보인다는데 나쁠 게 뭐람? 아이 한 명당 얼마더라? 한 아이당 2억은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통계라 나왔다고 최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우리 부부, 지금도 집의 절반 이상이 은행 소유지만 네 아이들 덕에 적어도 8억의 자산을 깔고 앉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집 사 남매는 사실, ‘생명은 사랑의 결실이다’라는 고전적인, 아니 현실감각 제로인 두 남녀가 만든 결과다. 그런데 먼저 저지르고 현실감각은 때에 따라 찾아가면 정말 안 되는 걸까. 소중하니까 더 계획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전 우주적인 작용이 필요한 생명 잉태를 한 갓 내 한 사람이 기준이 되어 계획한다? 남이 뭐라든 나는 내 가설을 증명하고 살아야 하니 남편을 꼬셔 인위적으로 흘러가는 세태에 일침을 놓겠다며 일단 낳아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자기 밥그릇 차고 나온다’는 조상님 말씀처럼 우리 가족은 제법 잘 살고 있다. 전우주적인 실험에서 우리 부부의 가설이 맞은 거다.
다시 한번 본능에게 확성기를 꽂고 묻길 바란다. 아이는 반드시 경제적 준비가 되어있어야 키울 수 있는 것인지.. 아이를 키우는 데 진짜 필요한 것이 물질적인 환경뿐인지 말이다.
다섯, 가정 안에는 엄마의 희생이 반드시 따른다.?
그렇게 시대를 역행하고 저지른 네 명의 아이, 다행히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고 있다. 내가 잘 자라고 있다고 하는 기준은 꿈이 크고, 인성 바르고, 구김살 없이 밝은 것이 전부다.
아, 책 좋아하고 영어 말 조금 알아들을 줄 알고 스스로 하루 할 일도 제법 챙겨서 한다.
한 둘도 아니고 이 네 아이를 오롯이 부부만의 힘으로 키워 갈 수 있는 건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게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놓을 수 없는 엄마이니 자신의 영역은 모두 알아서들 챙겨 살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게 되는 가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였고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야 하니 포기할 수 없었다.
부족한 엄마를 가능하면 많이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도 엄마의 이 내면의 태도는 신기하게도 전달이 되는 듯했다. 오늘을 꿈꾸며 육아의 지난한 터널을 지나왔다. 그날은 분명히 온다. 아이들은 가정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고, 나는 나대로 만족하는 하루를 꾸려 갈 수 있는 그날 말이다. 한 집안에 살되 여섯 개의 독립된 인격체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가정,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가정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도 잘 키우는 엄마이면서 나다움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신의 한 수는 바로, ‘엄마는 이래야 한다’라고 귀에 못 박히게 들어온 그 못을 과감히 빼내고 내 소신대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내 것이 좋으니 참고하라고 할 순 있지만 따라 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정이다. 엄마 본연에 들어차 있는 나다움을 최대한으로 꺼내서 그것이 축을 이루는 내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은 책 읽기로 만들어 가고 글쓰기로 완성시키면 된다. 매일 읽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글을 쓰는 것은 부차 원적인 문제이다.
왜 책 읽고 글을 써야 하는지 마음에 닿는 울림이 있다면 그 울림에 따라가라. 내 하루 속에 반드시 마음이 선택한 책을 읽고 내 속에 쏟아내는 글을 쓰자. 하루에 되는대로 15분도 좋다. 단 몇 페이지라도 좋다. 내가 이 기준점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지속된다면 방법은 절로 따라오게 되어있으니 일단, 읽고 쓰는 삶을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