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루틴으로 하루를 두 번 살다.
남편의 권고로 밤에 글을 써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훌륭한 일을 해내고 책도 척척 써내시는 엄마들을 보니, 새벽에만 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라클 미드 나잇을 하는 엄마도 많고, 낮 시간을 잘 활용하기도 하고, 아이들 잠든 후 시간을 퀄리티 있게 쓰기도 한다.
새벽에 못 일어나서 하루 종일 자책을 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을 10년째 보아온 남편이 오랫동안 나를 설득해왔다. 새벽 고집을 좀 거둬들이고 애들이 자고 난 밤에 글을 써보라고. 그래서 남편이 하라는 대로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 책상 앞에 처음 앉아 보았다.
한두 시간 블로그 포스팅을 매끈하게 한 편 올린 후 나는 대답했다. '뭐, 밤에 글 쓰는 것도 막상 해보니까 좋네'
사실 좋았다. 일단, 새벽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됐고, 낮 동안 벌어진 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쓸거리도 꽤 떠올랐고 문장도 새벽에 비해 야들야들했다.
새벽에는 잠에서 깨자마자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고, 하얀 모니터를 눈 앞에 두고 커서와 함께 눈을 깜빡거리면서 멍 때리는 내 뒤통수를 깨워내는 것만도 한참 걸렸는데 그런 버퍼링의 시간도 줄일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나는 한참 몰입이 잘 되고 있는 중, 시간이 다 되어서 접어야 하거나 아이 중 하나가 갑자기 깨서 나를 찾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아서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 혹은 그다음 날 밖에 지속할 수가 없었다. 항상 일은 생기고 신변에 변화도 생긴다.
특히 우리 집처럼 고만고만한 아이 넷이 함께 살고 우리 집이 약속과 이벤트가 많은 편인 탓에 그 시간이 일정하게 유지되라는 보장이 없었다.
뭔가 모르게 억울하다.
더 솔직한 이유는 따로 있다. 놀기 좋아하는 내 마음이 아이들이 다 잤는데도 고고한 작업을 머리와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시험 끝나고도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애들이 잠들면 고단했던 하루 일과를 토닥이면서 나도 나를 위로해 주고 싶다. 나에게 놀이가 글 쓰는 일이라면 참 좋겠지만 아직 그런 경지엔 이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위한 보상은 함부로 몸을 부려놓고 미드를 보거나, 글을 쓰기 위한 책 읽기가 아닌 흥미나 재미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 읽기를 하거나, 최대한 누워서 뒹굴거리다 잠이 오면 스르르 잠드는 것이다. 잠자기 직전까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날을 세우며 앉아있고 싶지 않다.
역시나 한 이틀 밤에 글쓰기를 진행했을까? 셋째 날 날 부산에서 도련님이 올라오셨다. 그다음 날엔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왔다. 다다음 날은 주말이라 가족 모두 모임에 갔다. 다음날 겨우 다시 이어가나 했지만 또 그다음 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이들 재우다가 그대로 같이 전사해 버렸다.
나는 가까운 이들들의 방문을 '내 할 일 있는 시간에 찾아온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는 싫다.
아이들과 함께 잠드는 게 두려워서 배드타임 스토리를 피하는 엄마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새벽시간에 내 꿈에 물을 주는 일을 해 치우고 나면 나머지 일상은 덤으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그런데 내겐 너무도 중요한 이 중요한 일과가 끝난 밤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 오늘 밤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새벽에 내 꿈나무에 물을 다 주고 또 다른 하루를 여는 것과는 판이 다른 게임이다.
그래서 밤 글쓰기를 권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하련다.
'밤도 좋고, 낮도 좋지만 낮과 밤은 옵션, 새벽은 필수네요. 나에게 당신과의 연애는 선택, 결혼이 필수였던 것처럼‘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지 말자
태어나서 처음 너무도 원하는 것 새벽 기상 루틴을 손에 넣고 나니 마음이 바빴다.
처음에 4시 반이던 기상시간이 4시로 더 당겨졌고, 다시 그 4시의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3시 40분에 일어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새벽은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해서 새벽 인증을 내놓고, 김미경 캠퍼스 홈페이지에 새벽 인증 글을 쓰고, 101 class에 등록해서 유명 유튜버에게 마케팅을 배우고, 블로그도 재편해야 할 것 같으니 망고 보드 수업을 듣고, 필사가 좋다던데 필사 미션방에 멤버가 되고, 영어도 놓칠 수 없으니 단톡 방에 오늘의 분량을 녹음해서 인증하고, 1일 1 버리기 방, 운동 인증하는 방, 등등 습관을 만들기 위한 습관 방들로 내 새벽이 가득 차 버렸다.
3시 반부터 8시까지 약 4시간 반 동안 양적으로 많은 일을 해 냈지만 딱히 이거다 할 만한 결과물 없이 바쁘기만 하고, 체력은 방전되어 갔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재미를 잃었다. 이것저것 욕심이 하나씩 보태질수록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원래 목적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목적이 사라질수록 새벽에 일어났던 본연의 의미도 없어진 것이다. 의미가 없어진 새벽이 재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의무감에 돌돌 쌓여 113일쯤 억지스럽게 이어가던 새벽 기상은 컨디션이 너무 떨어져 늦잠을 자버린 어느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분간의 운동이 새벽 루틴에 주는 활력
지금 내 책상 앞에는 나의 새벽시간이 5분 단위로 혹은 시간대별로 적혀 있는 새벽 시간표가 있다.
나는 26년간 쉬지 않고 다이어리를 써 온 사람 같지 않게 시간표 쓰기에는 대놓고 난색을 표했던 사람이다. '사람이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모두 이뤄낼 수 있다'. '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로드맵이 확실치 않아서 그런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의지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기를 부렸다. 시간대별로 분단위로 계획을 써서 붙인다는 것이 너무나 유치해 보이고 고고한 책 쓰는 일은 그런 유치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 첨예하게 새벽시간에 대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지난 100일처럼 이것저것 하지 않는다. 글 쓰고 운동하기 딱 그 두 가지만 한다. 대신 이 두 가지 항목을 다채롭게 항목별 시간대를 구성해 종이에 쓰고 핸드폰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매일 수정 보완으로 가다듬고, 휴대폰 알람에다가 적어놓은 시간표대로 알람도 더 디테일하게 매일 다듬기도 한다. 시간을 쪼개 쓰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고 뭉텅뭉텅 쓰면서 길을 잃는 사람은 반드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첫 도전 새벽 100일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것이다.
새벽 100일간의 교훈.
113일을 끝으로 사라져 버린 새벽 습관을 처음엔 ‘도전 실패’로 받아들였다. ‘다시 새벽을 되찾자, 이번엔 현명하게’라고 결심한 후 2차 도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렇게 100일을 도전한 나의 새벽이 지난 세월 3일 하고 그만두고 20일 겨우 채우고 말고를 반복했던 때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100일을 넘겨본 저력은 다시 정비해서 새로 달리는 2차 새벽 루틴의 단단한 습관 내공이 되어 주었다.
3일을 해도 그 시간은 해낸 것이지만, 그건 실패했다는 강한 패배감을 준다. 100일을 찍고 번 아웃이 되니 다음 도전과의 그 사이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으로 해석되었다. 영화배우가 작품을 찍을 때 모든 정신과 생활을 그 작품에 몰입하고 나서 다음 작품 때까지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100일을 넘기고도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기기 위한 실패였다는 것을 새벽 루틴 2차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해하게 됐다. 이제 100일은 내가 한번 루틴을 시작하면 꼭 달성해야 하는 기준의 날이 되었다.
새벽판에 운동 끼워넣기
새벽 4시 20분 나는 잠도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5분간 인스타 운동로 다솔맘의 444 루틴을 5회 실행한다.
2차 새벽 루틴 중요 목록 중 하나다. 어젯밤에 생각하면서 잤던 책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하며 잠을 깨우는 동시에 바로 몸을 움직인다. 여러 가지 해 본 운동 중에 가장 짧게 나의 코어운동에 도움이 되는 루틴을 알게 됐다. 함께 하는 다이어트 모임 합니다에서 얻은 정보를 백분 활용하는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명상도 해보고, 바로 글쓰기로 돌입도 해 봤는데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단 몸이 힘들면 잠이 다시 오거나, 생각이 퍼지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중심을 잘 잃어가는 나를 잘 이해하고 넣게 된 새벽 선물(?)이다.
5분간 거칠게 몸을 움직이고 하고 나면 일단 잠이 확 깨고, 1시간 걸려서 오는 집중력을 5분 안에 당겨 올 수 있다. 몸의 기운이 크게 돌면서 오늘 쓸 글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한 후에 아예 핵심 새벽 습관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함께 하는 맘 메이트 멤버들과 눈곱만 뗀 얼굴로 줌 영상에서 새벽을 함께 한다. 그렇게 1시간 반쯤 몰입해서 글을 쓰고 나면, 세상이 새로 보인다. 그리고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새벽을 여는 화면 속 동지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다. 출근을 위해 줌 독서실은 7시에 문을 닫는다.
그 후에는 나도 가볍게 블로그나 인스타에 내 단상을 업로드하고, 이웃 블로거들의 글을 읽고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소통으로 새벽 문을 닫고 일상의 문을 연다.
아침을 시작했는데 이미 하루를 산 것 같다.
이렇게 내 루틴을 말끔하게 해 내고 나서 아이들을 깨우면, 엄마의 공기는 이미 달라져있다. 이 기운으로 잠을 깬 아이들과 그냥 엄마가 늦어서 헐레벌떡 깨우는 기운은 분명 다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고, 특히 아이들은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하면서 마음과 영혼을 키워간다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이 새벽을 반드시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이 새벽 문을 닫을 때마다 든다. 이 좋은 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코로나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는 엄마들이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특히 육아를 하다 보면 일상에 자아가 너무 쉽사리 휩쓸려 가기 때문에 새벽이라는 단단한 코어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이런 마음으로 늘 손길 닿는 지인들에게 새벽 기상을 권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새벽을 정복하는 자, 세상을 정복한다고 하는가 보다. 세상 정복은 모르겠다. 적어도 새벽 기상이 더해 갈수록 인생이 더 밀도 있어지고 의미가 커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새벽을 통해 내 내면과 친해질 수 있었고, 이 친화력으로 네 아이를 키우고, 바디 프로필을 찍으며, 책을 쓰고 있고 코로나의 일상도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나에게는 새벽시간이 생존 필수품이자 삶의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