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아 마땅한 날
나에겐 몇 가지 강박 관념이 있다. 집에 들어서면 바로 양말을 벗을 것. 술에 취했다 싶으면 반드시 핸드폰을 끌 것. 그리고 생애 모든 기념일을 꼭 챙길 것. 특히 애인과의 기념일은 이날엔 마치 우리만 연인이 된 것처럼 신경써 챙긴다. 그렇다고 호화롭게는 아니고 그냥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본다. “내가 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꼭 오래 만나자.”라는 말을 주고받아도 낯간지럽지 않은 날. A와의 기념일은 꽤 열성적으로 준비했다. 그가 날 무심한 애인이라 여기며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몇 번 있었기에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 ‘내가 무심해 보여도 널 이만큼 생각하고 있어’라고. 우선 그의 블로그부터 뒤졌다. 블로그에 들어가자 갖고 싶은 물건 목록이 나왔다. A는 위시 리스트를 블로그에 몽땅 적는, 한마디로 간편한(?) 타입이었다. 그중 내 마음의 크기를 잘 나타내 줄 가격대의 물건을 골라 구매했다. 사
랑은 무성영화랬다. 소리를 끄고 봐야 한다고.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가 더 효과적이다. 다음 단계는 케이크였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 싶어서 주문 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딸기를 넣은 초콜릿 무스 케이크로. 케이크 위에는 ‘HOMEBODY, HAPPY DAY’라고 썼다(A가 평소 좋아하는 단어가 ‘HOMEBODY’였다. 집에 있기 좋아하는 그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편지는 새벽에 적었다. 그래야 아주 진지하고 솔직하게 적을 수 있으니까. 물론 낮에 읽어 봐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A는 이걸 보며 자신의 콤플렉스인 작은 치아를 가리며 웃을 거다. 그리고 그는… 정말 환히 웃었다. 이번만큼은 치아를 가리지 않고, 아주 환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저 표정 하나 보겠다고 나는 이렇게 준비를 했더랬지. 기념일은 참 의미 있는 날이다. 24시간 안에 내 모든 마음을 쑤셔 넣고자 노력하는 하루. 권태로울 수 있는 연인 사이에 ‘우리 그래도 꽤 많은 날을 만났어’ 하며 서로를 대견하다고 북돋아 주는 날. 이게 내가 기념일을 챙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