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바람이 차다. 빌딩풍이 매섭게 불어오면 바지 속의 무릎도 머리칼에 가려진 귀도 벌써 시렵다. 허한 마음에 쿠팡을 뒤적이다 로켓 배송으로 2만원대 침낭을 구매했다.
침낭이 오자마자 중성세제를 넣고 세탁을 했다. 탈수를 한번 더 돌리니 반나절만에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아기 캥거루가 된 것처럼 침낭 속에 몸을 쏙 숨기니 아늑한 것이 마음에 든다.
겨우내 침낭 안에서 잘 예정이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가스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도 웬만하면 아끼자, 참자, 해왔지만 혼자 부담하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원은 커녕 천원이 아쉽다.
보일러를 틀면 웅- 소리를 내며 계량기가 마구 돌아가기 시작한다. 요즘은 계량기 돌아가는 것을 매일 지켜보며 하루 사용량을 계산해보기도 한다. 그 숫자에 30을 곱하니 왠지 벌써 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처럼 초조하고 허하다.
돈 새나가는 구멍을 봉봉하게 솜이 오른 침낭으로 틀어막아보고자 했는데, 이렇게 하나둘 야금야금 사 나르는 게 많으면 오십보 백보 아닌가 싶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야, 이제 네가 놀러와도 깔고 덮을 이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