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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Mar 15. 2020

영화 클래식과 뮤지컬 스위니토드 티켓팅 간 상관관계

물론 배우 조승우님이 나온다는 사실은 기본값이고요.

델리스파이스의 고백과 클래식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들으면 생각나는 작품이 몇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세요? 저는 응답하라 1997보다 가장 먼저 클래식을 떠올리곤 합니다. 클래식은 멜로 영화입니다. 귀엽고 풋풋한 첫사랑의 정서를 잃지 않으면서도, 멜로의 기본에 충실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예쁜 시간만 남겨놓고 끝끝내 이어지지 않거든요.
대학생 지혜는 어느 날 집안을 정리하다, 엄마가 보관해 놓은 낡은 상자에서 낡은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엄마 주희와 그녀의 첫사랑이 함께 나눈 편지와 그 시간을 기록한 일기장을 펼치면서, 주희의 첫사랑과 지혜의 짝사랑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멜로의 클래식
영화는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운명이 된다는 멜로식 판타지를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요. 스포일러라서 말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이 영화의 공식에 의하면 지혜는 그녀가 짝사랑하고 있던 태수와 이미 이어질 인연이었던 거죠.
사실 클래식은 영화 속에서 이 인물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빠져드는지에 대해 그리 소상히 다루진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아주 아주 예쁜 시간들을 보여주고, 그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음에 관객들이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어 줬어요.
그 때의 사랑이 등장인물은 물론 관객들에게 더 예쁘게 기억될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사랑이 계속 이어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채 다 읽지 못한 책을 덮듯,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젖은 몸에 열이 오르듯이요. 두 사람이 별 위기 없이 계속 만나올 수 있었다면 당연히 이렇게 애절하고 아름답게만 기억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안전한 슬픔, 또는 추억
사실 우린 이런 걸 아주 좋아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을 실제보다 더 예쁘게 떠올리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죠. 오래된 옷장에서 나는 깊고 오래된 나무 향기, 어릴 적 할머니나 엄마의 화장대에서 맡았던 파우더 냄새 같은 것에 괜히 아련한 기분에 젖기도 하는데, 사뭇 슬프면서도 가슴이 말랑해져요. 우리에겐 "안전한 슬픔"을 즐기는 속성 같은 게 있는 거 같더라구요. 그걸 다른 말로 추억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오렌지쥬스 유리병, 호돌이 그림이 그려진 유리컵과 손바닥만한 작은 티브이가 있는 익선동 카페가 인스타그램 인증샷의 성지가 되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한 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클래식과 뮤지컬 스위니토드 티켓팅 간의 상관관계
저도 요즘 나름 멜로를 찍고 있어요. 처음으로 뮤지컬, 그것도 조승우 배우님이 나오는 <스위니 토드>에 푹 빠져 있는데, 슬프게도 티켓팅에 번번히 실패하고 있거든요.
이게 무슨 멜로냐, 하시겠지만 저는 나름 진지합니다. 뮤지컬엔 두 가지 재미가 있어요. 하나는 생생한 종합예술을 제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제가 앉을 수 있도록 피튀기는 티켓팅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희네 집 앞에서 가로등을 달칵 켜고 끄길 반복하던 준하처럼, 저도 가끔 표도 없이 뮤지컬 극장에 가고는 합니다. 티켓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어렵게 어렵게 티켓을 구해 뮤지컬을 봐도 제가 하는 뮤지컬 짝사랑이 멜로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뮤지컬은 막공을 하고, 저는 막이 내리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그래도 저는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 날본 배우들의 연기와 애드립, 제 귀를 흠뻑 적시던 아름다운 넘버들을 떠올리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준하와 주희가 우산도 없이 흠뻑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며 젖었던 것처럼, 지혜와 태수가 소나기 속에서 웃음짓던 것처럼, 저도 요즘 스위니토드라는 소나기에 푹 젖어들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이 소나기도 그치겠지만, 아니 그러니 더더욱 이 순간에 푹 빠져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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