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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Sep 07. 2023

“디자인은 세심한 관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위해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견지한 태도와 자세

앞으로 조수민라이트랩은 조명 디자인 산업에서 당대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아이코닉한 인물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빛과 조명을 바라보는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인 관점을 관철시켰던 당대의 인물들을 조망해 보며 이를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내 일과 삶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제일 먼저 소개해 드릴 조명 디자이너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1918.02.16 - 2002.12.02)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입니다. 조각가였던 지아니노와 리비아 볼라의 아들로 1944년 밀라노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그는 졸업 후 밀라노 카스텔로 광장에 있는 피에르 자코모의 스튜디오에서 형 리비오와 함께 일하며 조명을 비롯해 도시 계획, 건축, 전시 및 제품 디자인 등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는 조명 디자인을 비롯한 제품 디자인 계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디자인에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며, 때문에 디자이너에겐 다른 누구보다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도 유명한 그는, 주변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디자인하고 고안한 제품들은 모두 그의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 것들로 단순한 제품을 넘어 뉴욕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보관되며 전시되고 있으며, 현대의 제품 디자이너들에게 여전히 영감의 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는지, 그에게 어떤 기준과 철학이 있었던 건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스틸리오니만의 디자인적 지향점


그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인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그는 탁월한 디자인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때문에 카스틸리오니를 대표하는 가장 큰 디자인적 특질은 ‘경계 없음’으로 가장 먼저 압축됩니다. 1944년, 형제들과 함께 ‘제7회 밀라노 트리엔날레’에 참가하여 그 유명한 라디오 세트 모델 ‘RR126’을 선보인 이례로, 건축과 도시계획, 전시디자인부터 가구디자인, 조명 디자인과 제품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의 제품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제품들로는, 조명 디자인의 획기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코(ARCO)를 비롯하여 타찌아(TACCIA) 램프, 셀라(SELLA), 메짜드로(MEZZADRO) 체어 등으로, 그중 아르코, 타찌아, 메짜드로와 셀라는 모두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영구 소장품으로 등재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는 제품 본연의 기능에 대한 심도 높은 탐구와 함께 기존의 기성 제품과 결합하여 보다 확장된 기능을 제안하는 디자인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더해 부품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은 할 수 없다’ 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디자인적 요소의 삭제를 반복한 그의 디자인은, 특유의 유머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동시에 간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평소에도 디자이너로서 호기심과 관찰을 중요한 가치로 강조하곤 했습니다. 남다른 방식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남들은 쉽게 지나치는 평범한 물건들과 행동들 속에서 늘 남다른 한 끗을 발견 했고, 그렇게 발견한 영감을 제품에 투영하려 노력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심미적 감각 모두가 투영된 그의 조명 작품

그는 그저 관망의 대상이 아닌 당장 실생활에서 기능적으로도 뛰어난, 동시에 심미적인 아름다움 또한 겸비한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조명 디자인 부문에서 그는 역사에 남을만한 제품들을 디자인했습니다. 우아한 포물선 곡선을 그리는 ‘아르코 Arco’ 조명과 ‘람파디나 Lampadina’ 조명 등 디자인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한 번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이미 친숙한 작품으로, 그의 미학적 지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로등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한 아르코 조명은, 천장에 설치한 작은 조명 여러 개로 실내를 밝혔던 당시 상황을 감안했을 때, 위치도 옮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면적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는 점에서 당대의 조명 디자인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제품이었습니다. 중간에 뚫린 구멍에 바를 끼워서 들면 두 사람이 충분히 옮길 수 있게 디자인된 만큼, 기능적으로도 획기적이면서도 동시에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운 제품으로 그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터사이클에 내장된 모터핀에서 착안한 조명 ‘타치아 Taccia’의 디자인은 광원을 내장하고 있는 받침대 부분의 발열을 줄이기 위함이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제품명인 타치아는 ’침묵‘을 뜻하며 실제로 공간 속에서 은은하면서도 고요한 빛을 제공합니다. 또 다른 조명 ‘람파디나 lampadina’ 는 전구 아래에 필름 릴(reel)을 받침대로 사용해서 만든 테이블 조명입니다. 받침대로 쓰인 릴은 선을 감아 정리하기에 매우 유용할 뿐 아니라, 릴에 뚫린 구멍을 통해 벽에 고정할 수도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기능성과 함께 심미적 만족 또한 함께 의도한 그의 노림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아이코닉한 제품들은 일상생활을 관찰하여 실용적인 제품을 디자인하려는 카스틸리오니의 집착과 노력, 독창성, 명확한 전문성, 미적 감성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미학적인 만족을 넘어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그의 디자인이 100년이 지난 후에도 사랑받으리라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접 디자인한 조명 제품 외에도 카스틸리오니는 그의 생애에 걸쳐 건축 작업과 함께 재떨이, 스툴, 스위치, 카메라, 전화기 등 150개 이상의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꾸준히 인기를 얻었음은 물론 디자인 커뮤니티 전반에서 존경과 찬사 또한 받았습니다. 실용적이고 기발하며 목적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현대 디자인의 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제품은 전 세계 박물관의 디자인 컬렉션에 포함될 정도로 많은 찬사와 존경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산업 디자인 제품이 예술 작품으로 간주되는 등 예술계에도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카스틸리오니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왕립 건축가 협회, 파리 장식미술관, 현대미술관 등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의 뛰어난 작품과 철학, 그리고 ‘형태와 기능이야말로 성공적인 디자인의 요건’이라는 신념이 현대의 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은 주변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밀라노 카스텔로 광장에 있는 카스틸리오니의 스튜디오(현재는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운영하는 재단 본부로 사용 중인)에서 카스틸리오니는  40년 넘게 일했습니다. 306개의 산업 디자인 오브제부터 191개의 건축 프로젝트, 무역 박람회와 전시회 등 임시 전시를 위한 400개의 디자인, 그리고 사진과 기술 도면 및 다수의 프로토타입이 있습니다. 또한 이곳엔 그가 연구하는 데 사용한, 그에게 영감을 주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일상적인 물건들도 있습니다. 그는 이를 ‘익명의 걸작’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왼쪽 눈을 가린 그의 오른쪽 눈에서 ‘일상’이란 단지 평범한 것이 아닌 늘 새롭게 변화하는 ‘영감’ 그 자체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는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년)에게도 큰 영감을 줬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잡스는 카스틸리오니가 미국에서 강연할 때마다 찾아가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의미 없는 치장보다 가치 있는 쓰임새, 즉 본질에 집중하는 카스틸리오니의 생각이 잡스를 사로잡았다고 전해집니다.


기발한 창작과 전에 없던 것을 개발하고 디자인하기 위해선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아킬레 카스틸리오는 그것 역시 선입견이며 새로움을 위해 필요한 건 단지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과 그것을 통해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태도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오로지 제품을 사용하는 이용자적 관점과 그것이 그 자체로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덜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40년간 일상적인 작업공간에서 가장 창의적인 제품을 디자인했던 그의 삶은,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동시에 “주변을 살피는 일에서부터 디자인은 시작된다“던 그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돕니다. 어쩌면 영감과 창의, 기존에 없던 새로움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 서비스가, 제품이, 그리고 일이 카스틸리오가 말하는 ‘본질’에 얼마나 가까운지, 되짚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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