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루 멘데(Kaoru Mende)가 말하는 조명 건축 디자이너의 역할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조명 디자이너는, 카오루 멘데(Kaoru Mende)입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카오루 멘데는 1950년 일본 도쿄 출생으로 그의 업을 정확히 정의하자면 건축 조명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쿄 예술대학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무사시노 예술대학의 조명 디자인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쿄 예술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1990년 라이팅 플래너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하여 CEO로 역임하는 등, 조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거 조명부터 건축 조명, 도시 및 환경 조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조명 디자인 분야에서 프로듀서 및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조명 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민 연구 단체인 '조명 탐정단'을 조직하여 리더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축 조명 디자이너로 그는 일본 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습니다. 도쿄 국제 포럼, JR 교토역, 센다이 미디어테크, 롯폰기 힐스,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 싱가포르 도심 조명 마스터플랜, 알릴라 빌라 울루와투, 아만 뉴델리,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도쿄역 파사드 조명 등의 훌륭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조명 철학을 전 세계에 전파해 왔습니다. 그가 남긴 족적은 비단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도 진행 중이며 곧 다가올 미래에까지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 예상합니다. 때문에 그가 참여해 온 프로젝트들에서 그의 철학을, 또 그의 디자인적 지향점과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면, 그가 꿈꾸는 빛의 도시란 어떤 모양일지 그의 어깨너머로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카오루 멘데는 '디자인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작은 독창성'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디자인은 재미있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대로 디자인은 과학과 예술을 오가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사회와 경제의 생생한 사건과 더 밀접한 관련을 통해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디자인이 반드시 고귀한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트릭, 혹은 저속하다고 평가받는 광고나 쓸모없어 보이는 조명 또한 모두 디자인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늘 겸손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저는 디자인을 ‘의도’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디자인을 '의도'라고 번역하는 이유는 시대가 인정하는 디자인이 되려면 그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도' 대신 '의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디자이너의 '의지'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카오루 멘데(Kaoru Mende)
또한 그는 조명 디자인 그 자체를 넘어 조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될 ‘공간’의 역할 및 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가 말하는 공간은 단순히 방과 건물을 넘어 도시 환경까지 포괄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조명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조명을 사용하여 공간을 배치하는 작업을 의미하지만, 이 작업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방과 건물의 조명 디자인뿐만 아니라 더 넓은 도시 환경과 관련된 조명 디자인도 포함됩니다. “ - 카오루 멘데(Kaoru Mende)
"조명이 바뀌면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조명은 사람의 표정을 더 생동감 있게 보이게 하고, 식탁 위의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게 하고, 도시 풍경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조명을 계획하고 설계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제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카오루 멘데(Kaoru Mende)
이러한 그의 지향점과 함께 건축 조명 디자인에 중점을 둔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인 라이팅 플래너 어소시에이츠(Lighting Planners Associates)를 1990년 설립하여 전 세계의 조명 프로젝트를 주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LPA를 통해 700~800여 건의 조명 작업을 해왔고, 그중에는 도쿄 국제 포럼, 도쿄역 마루노우치 빌딩을 비롯하여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 각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도 있습니다. 2012년 개장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멘데는 빛을 엔터테인먼트의 한 형태로 활용한 설치물을 통해 낮에만 주로 방문하던 식물원에 밤에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빛을 활용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3년에 완공된 나가사키 국립 원폭 희생자 평화 기념관이 특히 기억에 남는 조명 디자인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구류 아키라는 목이 말라죽어간 원폭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건물 주변에 지름 29m의 검은 화강암 물통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원폭 투하로 사망한 사람 한 명당 하나씩 7만 개의 광섬유 입자를 물통 바닥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불을 켜러 갔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람이 불면 수면이 파문을 일으키고 조명이 부드럽게 흔들렸습니다.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탄생했습니다." - 카오루 멘데(Kaoru Mende)
빛의 사용으로 도시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으며, 사용되는 조명의 종류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 또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멘데는 조명 계획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평화기념관이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카오루 멘데는 효과적인 도시 조명의 역할을 설계하기 위해서 크게 다섯 가지 관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방범과 안전(Security & Safety), 도시 미관(City Beautification), 지역적 특색(Local Character), 환경 친화적(environmental Friendly), 편안함(Comfort)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청계천과 남산, 문화재 등 조명의 장점을 통해 도시 미관 수준을 높였다고 말하며 시민이 느끼는 빛의 편안함과 환경 친화적인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하면 뛰어난 도시 조명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명을 활용해 도시의 야간 경관을 아름답게 변모시킨 대표적인 도시로 파리와 뉴욕 등을 꼽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조명과 어우러지도록 구성하고 포인트 조명을 활용한 디자인 설계가 뛰어나다는 근거에서였습니다.
또한 그는 야간 경관이 단순히 관광객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수준을 넘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편안한 조명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편안한 조명 환경을 구성하기 위한 첫 단계는 눈부심을 없애는 일, 즉 빛공해를 최소화시키는 데 있다”며 “또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이 필요로 하는 밝기와 어두움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하며, 또 도시 야경을 구성할 때 문화와 기후, 지형 등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독창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 등을 돋보이게 하는 조명을 도시 곳곳에 설치했고 홋카이도는 도시에 뒤덮인 눈을 살린 조명으로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야간 경관 관광지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또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 조명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에 거주민이 즐길 수 있는 조명을 고민하고 상호 간의 의견을 공유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조명 디자인이란 최종 목표만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라 점차 변모되는 과정을 공유하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가 의지를 갖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주변 정보, 시민의 기대 등을 아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빛을 설계함으로써 그 유익 또한 도시와 도시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에서 조명의 근본적 기능과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2050년에 100세가 되는 카오루 멘데는, 일본 남성의 기대 수명이 점차 길어지게 될 가까운 미래를 벌써부터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가 100세에 이르는 미래에는, 가로등과 같이 높은 위치에서 노면을 비추는 조명은 사라지리라고 그는 예상했습니다. 지구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기 때문에 회색 노면에 빛을 비추는 기존의 방식 또한 재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신 가로등은 낮은 위치에서 빛을 비추게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노면에 빛을 발하는 선이 박혀 있는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20세기에 사용된 빛의 양을 재고하여 어둠과 그림자의 중요성을 재검토하고 밤의 밝기를 적절히 조절할 것입니다.
도시 조명의 역할도 크게 바뀔 것입니다. 도시 조명은 야간 안전을 보장하는 것 외에도 낮과는 다른 아름다운 야간 경관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도시 야경은 각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담아 안전하고 아름답고 쾌적하며 특색 있는 경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 세계 80개 이상의 도시에서 그는 야간 산책을 진행하며 각 도시를 비교하고 분석해 왔고, 결국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없으며 존중해야 할 다양한 조명과 야간 문화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20세기의 발전은 밤을 안전하게 만들고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은 조명을 제공하여 도시를 더욱 밝고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빛의 증가가 실제로 우리에게 더 쾌적한 밤을 제공했을까요? 이에 대해 카오루 멘데는 이렇게 답하며 앞으로 디자이너가 견지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명 디자이너는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과도한 조명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이에 더해 우리는 빛과 그림자의 전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조명 디자이너는 항상 고객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요구받으며, 그 밖에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은 점차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재미를 위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에 사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질 테니까요. 때문에 미래의 조명 디자이너는 새로운 기술을 평가하고 사람들의 일상과 적절하게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미래의 밤을 밝히는 기술과 예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일 것입니다.”
- 카오루 멘데(Kaoru M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