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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Feb 24. 2023

다시 만난, 연필

나의 사물들 - 1

연필이 내 필통에서 사라진게 얼마나 오래됐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샤프와 볼펜 등 각종 화려한 필기도구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기에도 연필은 내 필기도구 범주에 들지 못하고 점점 나의 삶에서 멀어져만 갔다. 더욱이 21세기가 도래하면서 퍼스널 컴퓨터가 상용화가 되고 휴대폰의 기능이 발달되면서 연필은 물론이거니와 내 글씨체를 만날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모든 필기도구들은 어두운 필통 에서 가끔씩 주인이 필통을 열 때 들어오는 빛에 놀랄 뿐이었다. 오래전부터 필통에 자리 잡지 못한 연필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화석이 되어 묻혀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연필을 철저히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일 선물을 잔뜩 받아와 내 앞에 갖가지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아이가 받아 온 많은 선물들 중 단연 내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연필 열 두 자루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연필 한 다스였다.  순간 나는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연필을 참 좋아했다. 연필에서 나는 나무냄새가 좋았고 연필을 잡고 무엇이든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연필심이 다 닳으면 기차의 기관차처럼 생긴 은색의 연필 깎기 구멍에 연필을 집어넣고 손잡이를 신나게 돌렸다. 싹싹거리는 소리와 연필심이 깎이면서 내 손에 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뾰족하고 깔끔하게 긴 연필들을 필통에 나란히 정리하면 내 기분도 상쾌해졌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보니 연필이 내 필통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시절, 연필은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연필로 쓴다는 것은 지울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워야 하니 연필로 쓰라는 옛 가수가 멋지게 노래를 부르며 충고를 해주던 생각이 난다. 열 살도 안된 내가 연필을 쥐고서 연애편지는 쓰지는 않았지만, 아니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많은 것들을 쓰고 틀리고 다시 고쳐 썼을 것이다. 연필 잡는 법을 배우고 연필을 잡고 삐뚤 하게 글자를 쓰기 시작하여 능숙하게 글자를 쓰게 되었던 그 시간 동안 연필은 에게 용기를 주고 토닥거리며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따뜻한 친구이지 않았을까. 아마 그래서 필통 속에 연필을 꽉 차게 넣어 다녔을 것이다.


아이 덕분에 이제 우리 집에는 연필이 많아졌다. 연필의 짝꿍인 지우개도 덩달아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연필 몇 자루를 깎아서 내 필통에 넣어 두었다. 드디어 내 필통이 완전해진 기분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면 연필을 꺼내 노트에 글을 쓴다. 신기하게도 연필을 잡으면 키보드로는 한 문장도 써지지 않았던 글이 어느새 노트 한 바닥을 채우게 된다. 다른 필기도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내 마음까지  야들야들하게 만들면서 자기 검열 없이 술술 글을 쓰게 만드니 연필을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쩌면 글을 쓰는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 운명처럼 등장한 것이 아닌가,라는 연필 운명론을 펼치기까지 하니 점점 연필에 대한 애정이 증폭되고 있다.


나는 요즘 홀로 고군분투하며 글을 써야 하는 조금은 외로웠던 시간에 함께할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조력자 역할까지 해주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내 필통 속 기다란 연필이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함께 많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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