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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아 Nov 23. 2022

블랙 프라이데이가 남긴 후유증에 대해서

못 이기는 척 당할 수밖에 없다 <슬며들기>

요 근래 SNS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 ‘블랙 프라이데이 up to ~90%’ 일 년에 한 번 크게 돌아오는 세일 시즌이다. 그간 눈여겨보았던 의류,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즌의 큰 장점이지만 내가 원하는 상품은 절대 90%까지 세일을 안 한다는 것이 이 시즌의 최대 단점이기도 하다. (이월이 합리적인 구매인 것을 알면서도 왜 난 늘 신상에 지는 걸까) 몇 주간 끊임없이 나를 유혹했던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세일 광고에 나는 결국 넘어갔고, 시즌이 남긴 후유증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첫 시작은 이랬다.

평소 내가 좋아하지만 비싸서 자주 살 수 없었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신상품을 ~50%의 가격으로 한정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은 아니었지만 뭐 어쨌든. 다음 날 오전 11시 소량으로 판매되는 구스 아우터를 사기 위해, 캘린더에 5분 전 알람까지 걸어놓고 사전 로그인, 배송지 체크, 결제 정보까지 완벽하게 예행연습을 거쳤다. (이게 뭐라고.. 열정적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멈출 수는 없다)

11시 1분 전. 10시 59분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오른손 검지는 1초라도 늦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폰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11시 땡 하자마자 구매 버튼을 눌렀고 11시 40초에 구매에 성공했다.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을 때 ‘품절’ 문구를 확인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승자가 된 기분이었다 (훗 진짜 이게 뭐라고..) 수강신청보다 더욱 치열했던 구스 아우터 구매 대란에 구매를 실패한 사람들은 해당 브랜드 공식 계정에 구매 방식에 대한 수많은 불만들을 털어놓았고 나는 조용히 승자의 웃음을 띠며 배송을 기다렸다.


그래서, 결국 반품

다음 날 바로 배송으로 물건이 도착했고 들뜬 마음으로 피팅을 하고 거울을 봤는데 웬 거대 엉덩이 구스 한 마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음 내가 생각했던 핏이 아닌데.. 아니 그래도 그냥 입어야 하나? 아니 그래도 20만 원인데 반품할까? 하 그래도 정말 싸게 샀는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그래 반품하자. 이렇게 나의 첫 블랙프라이데이 구매는 실패로 돌아갔다. 세일은 이렇게 무섭다. 나에게 정말 어울리는지 필요한 옷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구매 이유는 ‘싸니까’ 하나로 모든 행동이 합리화되는 인지 오류의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이랬다.

첫 구매에 실패하고 정상적인 사고 회로의 오류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20만 원짜리 의류를 반품했으니 나에게 20만 원이란 꽁돈이 생겼다고 착각하며 블랙 프라이데이는 곧 끝나간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전형적인 쇼핑 중독 증상) 매일 밤 이 쇼핑몰, 저 쇼핑몰을 둘러보느라 늦잠을 잤고 회사는 지각을 했고 있는 쿠폰 없는 쿠폰을 영끌하기 시작했다.

병이다 병. 그런데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병을 완치하는 방법은 그냥 하루라도 빨리 구매하는 것뿐이라는 걸
블프 시즌이 끝나는 날 결국 구매를 해버렸고 드디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조심히 포털사이트에 ‘쇼핑중독’을 검색했다. 대표적인 증상은 이렇다. '이번에는 이것만 사야지, 이것도 필요하니까'라고 핑계를 대는 버릇. 


너무 내 얘기라서 어퍼컷으로 명치 한 방 세게 두드려 맞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쇼핑 여기까지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근데 나를 못 믿겠으니까 카드를 자르던지 한도를 줄이던지 어떤 수를 내긴 내야겠다..^^




2021년 아무도 모르게 만든 SNS 계정에 기록할 글을 끄집어내어 딱 1년이 지난 지금 발행해본다. 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 카드 자르고 한도 줄였냐고? 그럴 리가. 음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만고의 진리. 올해도 어김없이 블랙 프라이데이는 다가왔고, 나를 유혹하는 세일 광고도 여전하다. 이 타이밍에 꽉 찬 옷장을 한 번 쓱 훑고는 '이 소비 바보.. 입을 거 많잖아'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가스비도 엄청 오른다는데 애껴야지. 애껴서 맛있는 거 사 먹어야지.. 먹는 게 남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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