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뭘 먹지? 이게 내 고민이야.
국가번호도 +82인 대한민국.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나는 성격이 급하다.
답답한 것은 딱 질색이고, 질질 끄는 것도 정말 싫어한다.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식당이 있다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가지 않는다. 궁금하다면 피크타임을 피해서 가거나 신포도라며 돌아서버린다. 대화를 할 때 뜸 들이는 것을 싫어하며, 결론부터 듣고 싶어 하는 성격. 이런 나였기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미국에서의 삶이 답답하게 느껴진 날도 많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하루는 36시간쯤 되는 건가. 도대체 뭐가 이렇게 여유롭고, 말도 느리담.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나의 급한 성격을 반성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등교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정전이다. 내가 묵고 있던 집만 정전인 줄 알았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신호등이 모두 꺼져있었다. 마을 전체가 정전이었다. 신호등이 꺼져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평화로운 거리다. 아침마다 학교까지 데려다주던 호스트 파파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신호등이 꺼져있는지도 모른 채 학교에 도착했을 것이다. 보행자를 우선으로 배려했기 때문에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등교시간이자 출근시간에 일어난 정전이었기에 도로 위 거리는 꺼진 신호등으로 아비규환이지 않을까? 정전이 해결된 후 사고 소식이 잇따라 들려올 것만 같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
정전도 모를 만큼 평화로웠던 거리. 서로 조금씩만 배려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은데,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렇게 여유로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고민이라는 것이 있을까? 수업이 끝나고 옆 자리 학생에게 물어봤다.
"너 혹시 고민 있어?"
"오늘 점심 뭐 먹지?"
아잇. 장난치나. 순간 동문서답을 한 줄 알고 다시 되물었다.
"아니, 네 고민이 뭐냐고."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가 내 최대 고민이야."
내가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시 물어봤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당장 집에 가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걸 고민해서 뭐 해? 그냥 오늘 하루 잘 살면 되는 거야."
대답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말이 맞다. 내일 일 아니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데,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 사는 여유로운 국민이 아닌,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한국인이기에 오늘도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