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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영 Feb 22. 2019

결혼생활의 슬럼프 그리고 소통

어느 순간 무기력해지는 날 발견하거나, 평소 의욕과 호기심이 있던 일에 더 이상 흥미도 관심도 없어지는 순간. 그런 순간들...


업 앤 다운이 있긴 했지만 다운의 순간이 그리 길진 않았었다. 업이라는 순간이 잘 없는 나이기에 항상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는 내 기분 지수는 어느 순간부터 평행점 '0'에서 마이너스로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나의 경운 그 원인이 단 한 가지는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직도 원인을 찾고 있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맞춰가야만 평행점이 유지되는 결혼 생활이 아닐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결혼 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결혼을 하고 나에게 일어나니 절대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작은 하나하나가 모두 거슬렸다.

왜 본인이 벗어 놓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제대로 넣지 않는 것인지,

왜 본인이 먹은 도시락을 내가 씻고 치워야 하는 것인지,

왜 네놈이 벌려놓은 쓰레기를 내가 치워야 하는 것인지,

왜 네가 마신 맥주병을 내가 분리수거해야 하는 것인지,

왜 적당히 YES라고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을 꼭 이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왜 친절히 한번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인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 컨택도 하지 않은 채 말하는 것인지,

왜 내 친구들도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대화하는데 넌 나의 문제에 관심조차도 없어 보이는 건지,

왜 내가 용기 내어 무언갈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로 날 설득하려 하는 건지

(난 지가 나에게 이야기 꺼내어 대화할 때 수긍해주고 대화하려 하는데, 왜 난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없는 것인지...)

그 수많은 왜의 끝에는


'왜 난 널 선택한 것일까?'


좋은 점이 더 많은 사람이니까로 넘어가고 이해하기에 내가 너무 지쳐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았다. 어디든 이 나라를 떠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것이 향수병으로 이어졌고 우울흠으로 전이되었다.


난 그렇게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Panic attack(공황장애) 이란 것을 맞이해야 했다.


첫 번째 패닉 어택은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사람들이 만 원이었는데 버스가 출발할 때까진 괜찮았다.

2 정거장을 지나자 몸이 이상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을 느꼈고 누군가 내 가슴을 쇳덩이로 누르는 기분이었다.

점점 숨이 가빠 왔고,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었다.

숨을 쉴 수 없게 되자 식은땀이 온몸을 덮었고 눈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한 암흑 세상이 되고 더 이상 버스에 있을 수 없었다.

만원 버스에 주저앉아 주변의 눈길을 뒤로 한채 제발 다음 정거장에 빨리 도착하길 빌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겨우 내렸고 회사는 갈 수가 없었다.


두 번째 패닉 어택은 2달 전쯤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보단 가벼웠지만 증상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단 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앉을자리가 나서 재빨리 앉아 깊은 심호흡을 하여 겨우 진정시켰다.


세 번째 패닉 어택은 이번 주 월요일.

조금은 가벼웠던 두 번째와는 달랐다.

이렇게 더 버스에 있다간 기절을 할 것 만 같았다.

다행히 정거장이 가까워오자 바로 내렸는데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에 주저앉아 나 자신을 추스를 때까지 앉아있었다. 마치 홈리스처럼. 하필 홈리스와 마약중독자가 가득하기로 유명한 그 길에서...


세 번의 패닉 어택까지 겪고 나니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병원의 상담 약속을 잡고 그렇게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감기도 아닌,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 패닉 어택이란 놈으로...


의사에게 세 번의 사건들과 증상에 대해 설명 후 그의 첫 번째 질문,

최근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는지, 기분 상태가 어떤지, 우울을 느끼는지...


이게 패닉 어택(공황장애)이라는 건지도 모르는 나였기에 갑작스러운 몸의 반응에 난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인지도 모르겠고, 구글로 검색하니 패닉 어택이라고는 하지만 인터넷이 의사는 아님으로 속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 후 그의 왈,


"패닉 어택(공황장애)입니다. 약간의 우울증도 동반하고 있습니다."


아니길 바랐지만 그랬다. 공황장애.

정말 다행인 건 주기가 짧지 않은 1년에 한두 번 정도이고 세 번 다 겨울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Seasonal Affective Disorder (계절성 정동장애) 일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최근에 더 깊게 든 결혼생활의 짜증과 회의, 향수병이 이 계절의 영향으로 더욱 부스팅 되어 우울함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게 마음의 스트레스로 이어져 몸이 공황장애로 반응한 것...


난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를 발견할 때 대처가 빠른 편이다.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결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한번 결정을 내리면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 결정이 비록 효과적인 결정이 아니 일지언정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내가 내린 결정으로 생긴 실수들을 시행착오로 여기고 그 안에서 최대한 좋은 효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름 살아남기 힘든 터프한 조직생활도 했고, 힘든 일도 꽤 했었는데 결혼생활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이 해결책인지도 모르겠는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있는 기분이다.


이 사람이 내 어떤 말에 상처 받을지 알기에 난 당신 때문에 우울하단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신 때문이란 말 대신 난 향수병이란 핑계를 댔다.

논리적인 이 사람은 날 이해할 수 없었다.

늦어도 영주권 카드는 다음 달이면 나오고 그때면 한국을 갈 수 있는데 왜 우울한 건지.

그의 그 논리적인 반박을 내 솟구치는 짜증과 답답한 감정이란 놈을 잠시 정지시키고 차근히 설명했다.

나도 너만큼 논리적인 사람이라 다음 달에 갈 수 있는 한국인데 지금 우울해할 필요 없단 것을 안다고... 하지만 그건 향수병으로 너무 힘든 내 마음, 가고 싶어 하는 날 억지로 자연스럽지 않게 '논리적인 이유'로 설득하는 것이지 않은가.  가고 싶은 내 마음은 논리적인 이유를 들었다 하여 변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억지로 날 붙잡아 놓는 것이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말.


난 다시 한번 차분히 이야기했다. 너의 그 말들은 내 마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면서도 난 알았다. 전혀 그는 내 눈물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말간 얼굴로 날 공허하게 쳐다보는 그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지금도 넌 우는 날 이해하지 못하겠지... 넌 논리적인 사람이니까... 논리적으로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유를 아는 것과 감정을 느끼는 건 다른 거야. 그냥 난 집에 가고 싶고 지금 나에게 제일 필요한 건 너에게 멍청하게 들리겠지만 너의 따듯한 말 한마디라고... 그냥 다 괜찮을 꺼야라는 그 말 한마디라고...


그제야 나의 서러움이 전달되었는지 말없이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꺼억꺼억 목놓아 한참을 울었다.


누가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했던가  

우리는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처럼 대화법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다.

나는 나와 다른 행성에서 온 이 우주인과의 소통을 위해, 이 우주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가끔은 내 마음을 찢을 만큼의 고통과 인내가 동반되는 이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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