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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영 Oct 10. 2021

결혼&일상에서의 브레이크 한 달째…

이제 돌아갈 준비 중… 다시 내 현실로!

사랑니 발치를 핑계(?)로 3주 더 연장한 한국 거주.

한국 여행이란 말보다 한국 단기 거주가 더 적절한 단어 같다.


정확히 오늘은 밴쿠버 땅을 떠난 지 한 달째.


폭풍 같은 한 달이 지나갔다.


지난 일이 년간 못해서 찜찜하던 병원 검사들 (산부인과, 치과, 내과 특히  대장내시경) 한국에선 흔하디 흔한데 없어서 불편했던 것들의 쇼핑들, 그리웠던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오는 따뜻함을 채우기 위한 만남들나는 어쩌면 한국 도착 Day - 1부터 현실로 돌아갈 얻기 위해 방전된 에너지를 채우듯 그렇게 매일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도착한 이후 단 하루도 혼자 조용히 산책하고 커피숍에서 여유 부려본 날이 없었다.

드디어 폭풍 같던 to do list를 끝내고 나니 급격히 밀려오는 심심함과 불안감에 (이래도 되나 하는) 동네 산책을 하고 동네 커피숍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결혼 후 남편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처음인데 이 처음을 천천히 음미(?) 하며 남은 3주를 보내보려 한다. 사실 3주 차부터 캐나다가 그리워지기 시작하고 원수 같던 남편도 보고 싶기까지 해서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나 걱정 아닌 걱정을 잠시 했었다.


이미 10월임에도 한여름 같은 더위와 어딜 가든 넘쳐나는 사람과 차들, 소음, 휘양 찬란한 간판의 불빛들 (정말 많은 간판들) 가끔은 경우와 선을 넘는 매너들에 ‘그래 난 한국에 왔지’란 생각을 번뜩 들게 하면서 한편으로 그 모든 것들이 날 피곤하게도 했다.

은퇴하면 한국에서 꼭 같이 살자며 약속했던 미국사는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그 친구의 한마디가 또 한 번 날 일깨워 준다. ‘우린 이제 한국에서도 이방인이구나.’

그 말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 한동안 마음이 썩 좋진 않았다.


어젠 엄마와 함께 잠시 볼일을 보러 한 건물을 들어가야 했다. 건물 안에는 변호사 사무실과 병원들이 입점해 있어서 손님들의 들고나는 것이 빈번한 그런 건물이었다. 엄마와 볼일을 마친 후 훤히 열린 앞문과 뒷문 중 식당이 있는 방향인 뒷문 쪽으로 나가려 하니 건물의 관리인으로 보이는(정확히 이 사람의 지위가 뭔지는 모르겠다) 한 중년 아저씨가 우리를 막아섰다. 다짜고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첫마디 ‘왜 앞문 놔두고 이라노~ 앞문으로 가요 앞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뒷문이 후미진 것도 아니고 건물이 후진 것도 아니었다. 나름 관리 잘된 앞문과 뒷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런 장소였다.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었다. 첫마디부터 짜증과 다짜고짜 앞문으로 가라는 말밖에는… 왜 정당한 나의 선택권이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침해당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나도 언성이 높아졌다. 엄마는 싸우기 싫어 혹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냥 앞문으로 가자며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솟구치는 화가 참을 수 없었다. 그분은 끝까지 비논리로 나에게 소리 지르셨고 나는 끝까지 그분에게 당신의 이유는 말이 안 된다며 소리 지르고… 더 이상의 에너지 낭비가 의미 없어 보여 건물을 나왔다.


정말 웃기는 건 소리를 지르며 부당함에 맞서(?)면서 알 수 없는 조금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의 나는 정말 나약하고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시스템에 대해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나만의 작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온실 속 화초 같은 것이라 안전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난 왜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지에 대한 자괴감을 한상 지니고 있었다.

그 후 10년의 세월 동안 내가 겪은 참으로 많은 일들과 도전과 감정들이 꼬장꼬장한 한국의 중년 아저씨와 소리 지르며 싸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정말 이상한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캐나다에서 결혼생활을 하느라 직장생활을 하느라 변한(단단하고 강해진) 나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왔는데 이번 브레이크를 통해 날 재확인한 셈인 것이다.


조금은 복잡하고 알 수 없던 내 감정들이 정리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히려 그 아저씨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도 그 아저씨에게 아저씨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선 사과받고 싶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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