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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May 03. 2021

고통의 시간이 빚은 동화

[삐삐 롱스타킹]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다 <비커밍 아스트리드>

(배경이미지: <비커밍 아스트리드> 메인 포스터 ⓒ알토미디어)


 영화는 어느 방에서 시작한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노인으로 보이는 한 실루엣이 있다. 미지의 인물에게 접근하듯 카메라는 살금살금 줌인하면서 대상에게 다가간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어느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책상 위에 널브러진 어린아이들의 편지. 그중 한 아이가 편지를 통해 주인공에게 묻는다, “어떻게 아이들을 이렇게 잘 아세요?”. 그리고 영화의 제목, “Unga Astrid”가 화면에 나타난다. 제목의 뜻은 스웨덴어로 “젊은 아스트리드”다. 영화는 제목처럼 그의 어릴 적부터를 되짚고, 나아가 어떻게 그녀가 아이들의 정서를 세심하게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젊을(혹은 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영화를 보기 전,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 작가의 일생을 다룬다는 소식만 들은 채 상영관에 입장했다. 그래서 사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놀랐다. 명랑한 이야기와 캐릭터의 뒤편에, 생각보다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산 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여성으로서 겪은 고충들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엄격한 청교도주의를 기반으로 보수적인 문화가 만연했으며, 이런 문화와 사회 자체가 그녀에게는 커다란 수난이었다.


▲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비커밍 아스트리드>를 통해 알 수 있던 점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동화적인 세계는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작가적 상상력으로 눈앞의 사물에 비현실적인 서사를 부여하거나, 아이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은 모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현실의 고통을 버텨내는 그녀만의 방식이 바로 동화였다. 그래서 그녀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이야기 속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떠나버린 존재들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에서 떠나 아이들만의 환상을 꿈꾸는 것, 그녀가 창작한 이야기는 당연히 동화일 수밖에 없었다.


▲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하지만 이런 동화적 회피는 절대로 나약하지 않았다. 정말 유명한 니체의 말도 있지 않은가,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이 회피는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창의적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창의성은 많은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화가, 캐릭터가 되었다.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아스트리드가 동화를 집필하기 이전의 시점에 영화를 매듭짓지만, 아스트리드에게 아이들이 보낸 팬레터를 영화의 중간마다 보이스오버로 들려주며 그녀가 퍼뜨릴 선한 영향력을 암시한다.


▲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사실 영화의 끝에 다다를 때쯤이면, 영화의 제목은 <비커밍 린드그렌>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후 남편이 될 스투레 린드그렌과의 만남을 암시하고, 본편이 끝난 뒤 텍스트로 보여주는 후일담 또한 결혼 후 그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됐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드그렌이 아니라 ‘아스트리드’인 이유는 명백하다. 첫 성을 물려준 아버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 남편이 되어 새로운 성을 전해줄 스투레 모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 누구보다 ‘아스트리드’라는 이름의 그녀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뒤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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