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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Apr 05. 2022

닮아간다

가족을 통한 깨달음

한 달에 두세 번 주말 근무를 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만, 집에 가지 못한 아쉬움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 없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한가한 시간에 아내에게 화상전화를 걸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뒹구느라 힘들었는지 아내 눈이 퀭했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데 둘째가 잽싸게 아내 폰을 낚아채곤 아빠 언제 오냐고 묻는다. 일곱 밤 더 자면 간다고 대답하니 손가락 일곱 개를 펴고는 "이거 맞지?" 한다. 이제 막 셈 공부를 시작했는데 제법 똘똘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자기 할 말만 한참 떠들어대다가 아빠 보고 싶어서 일찍 자야겠다고 한다. 아이 말에 괜스레 뭉클해진다. 똘똘하게 구는 것보다 말 한마디에 감동을 주는 아이가 더 사랑스럽다. 통화를 종료하고 하릴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행기 한 대 지나간다. 나를 두고 떠나가는 비행기도 미안했는지 소리도 없이 날아간다. 파란 도화지에 흰 구름 길게 그리면서 참 곱게도 난다.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혼자 점심 먹는 게 미안해 주말에는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간다. 마땅히 땡기는 게 없었는데 중화요릿집으로 가자고 한다. 잡채밥이 맛있고 양도 많다고 해서 메뉴 고민을 덜었다. 식당에 도착했는데 이게 왠 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금일 휴업'이라는 푯말이 떡하니 붙어있다. 혹시나 싶어 문을 밀어봐도 꼼짝하지 않는다. 혹시나 미닫이문인가 싶어 옆으로 밀어봐도 마찬가지다.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전에 애써 심호흡으로 하고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그나마 동네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푸짐하게 먹었더니 기분을 풀었다.


배 부르고 날씨마저 화창하니 스르르 졸음이 쏟아진다. 연신 하품이 나오길래 사무실로 돌아가 오래간만에 낮잠이나 잘까 싶었는데 시간이 아깝다. 어디 갈만한 곳이 없냐고 물으니 가까운데 꽃구경이나 가자고 한다. 남자 둘이서 무슨 꽃이냐고 핀잔을 줬지만 동굴같이 칙칙한 사무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녕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날이 좋아 그런지 바다색도 아름다웠다. 가까운 곳부터 애매랄드, 사파이어, 흑진주처럼 영롱한 자태를 내뿜었다. 같은 바다일 텐데 깊이와 햇빛을 받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내는 게 신기하다. 하긴 사람도 다를 바 없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깊이와 그날 감정에 따라 달라 보이니까 말이다. 문득 오늘 나는 어떻게 색으로 보일지 궁금해졌다. 동료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김녕해수욕장을 지나 5분 정도 더 달리니 유채꽃밭이 나타났다. 분명 가족이 제주도에 왔을 때 풍력발전기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왔던 곳이었다. 불과 두 달 전에는 허허벌판이었는데 그 사이 유채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생명의 신비함이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바람에 따라 살랑거리는 모습이 마치 병아리들 같았다. 어미닭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처럼 귀여워 보였다.


나도 참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는 꽃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전과 다른 감정을 느끼니 말이다. 노란 유채꽃이 병아리 같다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스웠다. 아내와 아이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같은 사물을 보고도 다양하게 인지하게 되는 것 같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바닷가에 살아왔음에도 바다는 그저 푸른색이라고만 인지했었는데, 이제는 애매랄드니 사파이어니 흑진주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나는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유채꽃을 앞에 두고 너무 잡념에 빠져든 것 같다. 다시 눈을 돌려 유채꽃을 마음에 가득 담는다. 내친김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실제로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마음에 들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사진을 보냈다. 다음 주말에 집에 가면 함께 꽃구경 가자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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