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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Jul 17. 2023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

낚시금지구역


나는 정말 낚시를 좋아한다. 어릴 때 바닷가에 살면서 낚시는 생활의 일부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틈틈이 낚시를 했고, 해외에 나가서도 꼭 낚시를 했었다. 심지어 아랍에미리트에서도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했다. 그만큼 낚시를 좋아했고 강으로 바다로 나가는 걸 즐겼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고 나서 바다에 대한 동경이 다시 일어났다. 책에서처럼 기록에 남을만한 물고기를 낚을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조그마한 배를 사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삶을 꿈꾸기도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몇 번 낚시를 함께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의 집중력 한계로 오래 즐기지 못했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작은 개울가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생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거 같다.


집 근처에 가족이 자주 가는 작은 공원이 있다. 한 바퀴 걷는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호수가 있는데 간혹 물고기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발견하면 잡고 싶어 하는데, 이곳은 '낚시금지구역'이자 출입금지구역임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이 공원에 나가자고 보챘다. 오랜만에 비가 그쳐 나가 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아이들은 새로 산 채집망을 들고 아주 씩씩하게 공원으로 향했다. 잠자리가 많이 날아다니고 있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둘째는 제법 날쌔게 잠자리를 4마리나 잡았다. 나는 한 마리를 잡고 나서 셋째 손을 잡고 천천히 공원을 걸었다. 그때 어느 어르신께서 낚싯대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으나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그 어르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낚싯대를 꺼내 들고 호수를 향해 던졌다. 셋째의 속도로 느리게 한 바퀴 돌 동안 어르신의 낚시는 계속되었다.


공원을 걷는 동안 생각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낚시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이 분에게 낚시금지구역임을 상기시켜야 할지 말지 고민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괜한 다툼이 생길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보다 더 한 것은 혹시나 아이들에게 해가 미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딱히 정의감이 불타올랐던 건 아니었다. 다만, 아이던 어른이던 잘못한 행위에 대한 제재가 일관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레 어르신께 이곳은 낚시금지구역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몇 번이나 못 들은 채 하다 한 시간만 하고 갈 테니 눈감아 달라고 했다. 강제로 제재할 자격도 없는 처지라 한 발 물러났다. 공원관리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셨기에 그분들을 믿기로 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한 무리가 되어 담소를 나눈다. 참 못난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잠시 후 경찰관 두 분이 오셨고 결국 어르신은 낚싯대를 접었다. 그것도 한 시간만 하겠다고 10분을 버티다 한 철수였다. 씁쓸한 마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가는데 횡단보도에서 어르신과 마주쳤다. 사실 누가 신고했는지 모르는 입장이지만 정황상 내가 신고했을 가능성이 컸기에 어르신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냥 가시라 말하고 집으로 가는데 어르신이 우릴 따라온다. 왜 따라오냐고 물으니 집까지 찾아가 내가 법을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확인할 거라고 한다. 근처에 아는 사람이 많다며 사람까지 동원한다고 겁박했다. 아이들이 보는데 더 이상 안 좋은 모습 보이지 마시고 돌아가라 일러도 계속 따라오며 욕을 해댄다. 마침 지나가던 경찰차가 멈췄고 경찰관 두 분이 다시 어르신을 인솔했다. 혹시나 또 따라오거나 욕설을 하면 신고하라며 근처에서 대기한다고 하셨다.


둘째와 셋째는 약간 겁을 먹었는지 여기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다. 첫째는 할아버지가 잘못했는데 왜 자꾸 아빠한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 아저씨들은 왜 할아버지가 잘못했는데 벌을 주지 않고 그냥 보내는 지도 물었다.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리고 화를 내거나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아빠는 너희들이 걱정돼서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어른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다고, 바르게 고쳐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대신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일'에 초점을 맞춰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째는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도 채집이 금지된 생물을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야 생물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다고. 어쩌면 70 먹은 노인보다 8살 먹은 아이가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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