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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중 Jan 09. 2019

Sketch Simply, Snatch Surely

전시 들여다보기, Keith Haring.

ICON, Keith Haring


  작가의 이름보다 작품을 먼저 보았다. 티셔츠, 머그컵에 프린팅 되어 있는 그림을 먼저 보았다.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한 그의 그림체가 좋아서. 작가의 이름이 키스 해링이라는 사실은 전시도, 책도, 인터넷 서핑도 아니었다. 유니클로에서 판매하는 티셔츠의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보았을 때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키스 해링이라는 것을 알았다. 팝 아트의 대표 작가 키스 해링의 작품은 그렇게 쉽게 소비되고 있다. 



Untitled, Keith Haring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봐주길 원했다. 작품 활동 초기, 지하철의 빈 광고판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경찰이 그를 체포하기 전에 작품을 완성하고 떠나야 하는 상황. 신서유기에서 기가 막히게 그림을 그려내는 송민호처럼. 단순해 보이는 그의 화풍은 경찰과의 술래잡기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Untitled, Keith Haring

 

 그의 작품의 대다수는 제목이 없다. 그는 '그림을 보는 사람이 작품을 해석할 때 비로소 나의 작품 활동이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해석에 편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단다. 속칭 '사람들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위 작품을 보며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 'SKY 캐슬'이 생각났다. 더욱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맨 위에 올라간 사람의 머리 위에 보이는 선들은 후광 혹은 '가진 자들의 큰 소리'로 보였다. 나의 해석과는 다르게, 오디오 가이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 얽혀있는 사람들의 관계, 동적인 동작은 사회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상업광고를 제작했던 선배 예술가 앤디 워홀처럼, 키스 해링도 광고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광고 제작물을 보며 느낀 점은 '메시지'다. 상업광고보다는 반전(反戰), 성소수자의 인권 등과 같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인 철학을 광고 형태로 표출했다. National Coming Out Day와 Free South Afreeca 같은 포스터들이 대표적이다.  

ICON SERIES


  그는 기호학을 배웠단다. 그의 작품에서는 반복적으로 보이는 아이콘들이 있다. 엎드려 있는 사람, 개, 천사 등과 같은 기호들은 패턴처럼 그의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그의 의도대로 기호를 해석하는 것은 작품을 보는 사람의 몫이다. 전시를 보며 동일한 기호를 여러 작품에서 만날 때마다 기호를 해석하는 나의 생각은 작품마다 달라졌다. 다양한 굿즈로 만나보아서 내게 친숙했던 아이콘들은 전시의 다음 섹션으로 이동할 때마다, 다음 작품을 볼 때마다 낯설어졌다. 



  가로 4미터가 넘는 커다란 작품. 도슨트는 이번 전시의 백미가 되는 작품이라 소개했다. 키스 해링은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작품을 그려내는데, 완성된 그의 작품들은 놀랄 만큼 조형미가 대단하다고 했다. 이 그림은 뒤집어서 전시되고 있다. 키스 해링이 막상 그려놓고 보니 거꾸로 뒤집었을 때가 더 마음에 들어 '앞으로 전시는 뒤집어서 해달라'고 말했단다. 직접 보면 물감이 위로 솟구쳐서 흐르는 걸 볼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사람을 그린 선의 굵기가 들쭉날쭉한 경우가 있는데, 역시 그도 사람이다. 


  화사한 바탕에 정말 많은 사람이 얽혀 있는 걸 보고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현대 사회는 인종, 성향,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얽혀서 살아간다. 작품의 바탕이 되는 다양한 색이 한데 얽혀 있는 것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게 아닐까? 생각건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그의 속내는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함께 살아갑시다' 일지도 모른다. 



  검은 배경에 대비되는 채도 높은 핑크색의 삼각형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느끼는 바가 많았던 작품. 핑크색 삼각형의 의미는 소름 끼쳤다. 이 삼각형은 나치에서 열등 인류를 구분하는 기호에서 따왔다. 나치는 사람을 구분했고 '노예화와 절멸 대상 열등 인류'를 정했다. 절멸 대상에는 유태인, 사이비 종교, 페미니스트, 공산주의자, 선천적 장애자 그리고 성소수자가 있다. 핑크색 역삼각형의 기호는 성소수자를 뜻하는 나치의 구분 기호다. 


  키스 해링은 AIDS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은 AIDS 확진을 받은 이후 그린 것인데, 눈과 귀를 가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AIDS 위험을 전파하지 않은 정부를 뜻한다고 한다. AIDS로 세상을 떠난 키스 해링은 정부가 나서서 AIDS의 위험성을 전파해주길 바랐다. 


  작품을 보면서 든 생각은 핑크색 삼각형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나치가 정한 모든 열등 인류(?)'를 뜻하는 것 아닐까. 인종, 성향, 성별, 장애유무 모든 탄압받는 사람들은 대표하는 것이 핑크색 삼각형이 담는 의미라 생각한다. 눈과 귀를 닫은 사람들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았다. 나치즘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것을 '열등함'으로 규정한 폭력적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고와 대화의 단절의지를 뜻하는 눈과 귀를 가린 사람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든 작품.


  


  이번 전시를 보면서 블리자드의 모토가 생각났다. '입문은 쉽게, 마스터는 어렵게'. 블리자드의 게임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마스터하는 것은 어렵다. 수 백만의 한국인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겼지만, 프로게이머 등 초고수의 영역으로 가면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키스 해링의 작품 역시, 다른 예술 작품에 비하면 쉽게 접하고 시각적으로 단순하게 구성돼 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은 관객 개개인의 해석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키스 해링의 말처럼 그의 그림의 해석은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그의 후기 작품을 보면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입문은 쉽게, 마스터는 어렵게'. 이번 전시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오락적으로 즐기기에도 키스 해링전은 많은 배려를 한 전시이다. 아이콘들을 네온으로 예쁘게 꾸며놓고, 곳곳에 사진을 찍고 즐기기 좋은 요소를 배치해 놓았다. 또한 전시 내에서 '층간 이동'이 없다는 것 점은 DDP 전시의 큰 장점이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비교적 편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에 방문하실 생각이시라면 도슨트 투어와 오디오 가이드를 추천드린다. 모든 전시가 그런 것처럼 많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 이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함께 나눈 김은비 도슨트 님의 설명이 매우 친절하고 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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