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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7. 2024

꿈을 좇는 사람을 응원한다

         

연극 티켓이 2장 있는데     


아내가 연극 이야기를 꺼낸다. 같이 갈 거냐는 말이다. 오후 4시 티켓이었다. 시내가 아닌 덕진공원 근처에서 하는 연극이었다. 그동안 연극을 안 본 지 제법 오래 지났다. 작년 가을, 학생들과 서울에서 보았으니 한참 지났다.      


올해 초 스페인에 갔을 때, 바르셀로나에서는 카르멘 공연을 하고 있었다. 길을 지나는 데 마침 공연장이 있었다. 마음으로는 내심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본 고장에서 맛보는 연극이나 오페라는 그 특유의 맛이 있다. 가족 여행을 하면서 이탈리아 베로나 원형경기장에서 보았던 카르멘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천년도 더 된 원형경기장에서는 여전히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인원이나 무대의 스케일도 장대했다.   

   

나는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가능한 한 플라멩코를 많이 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그도 여의치 않았다. 세비야에서 단 한번 보았을 뿐이다.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바로 코앞에서 현란한 춤을 추고 쉬지 않고 발을 놀리는 이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중년 남성이었다. 공연 내내 무희보다는 중후한 남자의 매력이 다가왔다. 그건 예전에 마드리드에서 투우를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세비야에서는 플라멩코가 어울렸는데 왠지 바르셀로나에서는 플라멩코가 끌리지 않았다.      


이번 연극의 제목은 <검은 상자>. 조선 왕조 시절에는 카메라를 검은 상자라 불렀다 한다. 조선왕조의 황실 전속사진사였던 육손경(손가락이 여섯 개라서 붙은 별명)이 찍은 사진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이었던 엘리스의 방문 선물로 건네진다. 하지만 그녀는 사진의 대상이었던 고종황제를 황제로서의 존엄이 느껴지지 않고, 둔감한 인물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이에 상처를 입은 육손경은 자신의 아들에게 그 사진을 없애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다시 그 아들의 아들에게까지 유언은 이어진다. 이에 증손자가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에 있던 사진을 한국에 초청하는 기획에 도움을 주고, 마침내 조상들의 유업이었던 고종황제의 사진을 없앤다는 내용이었다.      




2시간이 넘는 내내 몰입도가 굉장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했으나 각 인물의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진행되었다. 오늘은 공연 마지막 날. 사흘 동안 이어진 이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생했을까? 마지막 무대 인사를 할 때 보니 대략 20여 명이 나섰다. 그 인원들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요즘처럼 유튜브와 가상 세계가 대세인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게 자신들이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가며 연극을 올리는 이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이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연극과 같은 장르는 속도나 기술적인 영역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가장 느린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은 세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연극배우들의 주머니가 가볍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되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AI 시대에 이런 꿈에 매달리는 이들은 어쩌면 시대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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