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Jun 21. 2024

제주, 무릉외갓집


제주라는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제주’라고 읊조렸을 때 그 단어는 내 가슴 어딘가에서 아우성치며 다가온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상상만으로도 그리움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단어에서 여행의 출발을 떠올리거나 영감을 받기도 한다. 하나의 지명이 사람들의 가슴에 울리는 파장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제주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남다르다.      


한때 제주가 낭만의 대명사처럼 다가온 적이 있다. 제주가 도심에 지친 이들에게는 탈출구이자 도피처로,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있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한 달 살기의 성지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가 생기고, 제주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제주가 바다를 곁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들어 제주는 한국사회에서 이질적이면서도 경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코로나 시절, 해외로 가지 못한 한을 제주에 풀어냈다. 해외로 가지 못하는 이들이 제주로 몰려들자 항공권 가격이 폭등하고 제주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주 집값이 폭등했으며 물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제주가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 열품이 사그라들자 다시 제주는 이전과 다른 형태의 침체를 겪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극심한 빈사 상태에 허덕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비싼 물가, 별다를 게 없는 풍경, 고만고만한 콘텐츠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거기다 한 번씩 불거지는 씁쓸한 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나라로 돌리는 데 일조했다. 지금 제주가 겪고 있는 아픔은 이런 시대적인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제주의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있는 몇 군데 사업장을 찾았다. 처음 찾은 ‘무릉외갓집’은 제주 농산물에 주목한 사업체이다. 세 마을이 무릉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진 후, ‘무릉외갓집’은 세 마을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수행하던 폐교에 터를 잡았다. 한때 버려졌던 폐교가 이들의 손을 거쳐 견학장소이자 체험장소로 거듭났다. ‘무릉외갓집’의 신화에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는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자 외국인들에게 김치 체험 등을 시행할 수 있는 터전이 생긴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농산물 가격의 기복이 심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생산자의 손을 떠난 농산물이 소비자 손에 이르기까지 유통이 복잡하고 중간 마진이 심하다.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폭등하면 폭등하는 대로 농부들이 욕을 얻어먹는 게 농산물이다. 게다가 기후 변화에 따라 피해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망한 농사꾼이 많은 이유이다.      


무릉외갓집이 농산물 구독제라는 낯선 제도를 도입한 것도 안정적인 경영을 위한 목적이었다. 그들이 택한 전략은 지역 농산물 생산자에게 농협 구입가격보다 10% 비싸게 구입하고, 이를 도시 소비자들에게 꾸러미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대신 요구한 것은 믿음직한 먹거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었다. 생산자에게는 높은 가격을, 소비자에게는 신뢰할 만한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상생의 원칙을 세운 셈이다.      




그들이 발간하고 있는 월간지는 이러한 신뢰의 상징이다. 무릉외갓집의 월간지 표지는 꾸러미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가 모델이다. 그가 자신의 농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의 친밀도와 신뢰도는 급상승한다. 만약 감자를 고를 때, 누가 생산했는지 모르는 물건과 자기 얼굴과 이름을 내건 감자 가운데 무엇을 고르겠는가?      


자기 이름과 자기 얼굴을 내걸고 하는 먹거리에 진심이지 않는 농부가 있겠는가! 온라인상에서 어떤 농사철학을 지니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하는가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장사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먹는 먹거리에 어떤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가를 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밋밋한 감자가 특별한 감자로 바뀌는 건 스토리가 빚는 마력이다. 우리가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릉외갓집은 현재 세 가지 꾸러미 사업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각종 야채와 과일 모음 꾸러미, 과일 꾸러미, 소규모의 족은꾸러미이다. 현재 이들은 1인 가족이 많아지고 시대가 변하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 마케팅의 중심에는 이 꾸러미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있다. 건강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는 한 무릉외갓집의 미래는 밝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꿈을 가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