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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25. 2024

끝나지 않은 <해녀의 부엌>

  

70대 해녀가 죽었다. 평생 바다를 벗 삼아 살던 그녀는 홀연히 바다로 돌아갔다. 사인은 심정지였다. 마지막 바다에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최근 20년 동안 80여 명 가까운 해녀가 세상을 떠났다.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어 중의 하나가 해녀이다. 그런데 최근 고령의 해녀가 많아지다 보니 해양사고 위험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해녀의 부엌>은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1회 30명 한정으로 사람을 받는다. 주된 공연의 내용은 해녀 김춘옥의 삶이다. 그녀는 13살에 애기 해녀로 물질을 나선 후 60년 넘게 물질을 하며 살았다. 한마디로 해녀로서는 제주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은 젊은 배우들의 입을 빌어 새롭게 거듭났다.       



어릴적 꿈은 국회의원이었지만 해녀였던 엄마가 잠수병을 얻은 후, 여덟 식구의 생계는 온전히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학교를 접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질할 때도 1등을 했을 만큼 재주 많고 욕심 많던 그녀였다. 물질이라면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바다에서 숨을 참는 일은 육지에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센 물살을 견디며 물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상으로는 2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략 1분 20초가 한계이다. 그녀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제주의 바다는 나가기만 소라와 전복이며 문어까지 풍요로운 선물을 아낌없이 건넸다. 그녀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수산물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물질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생활하며 살았다.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풍성하게 건져 올렸던 해산물이 갈수록 양이 줄어드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주 바다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해양 쓰레기로 제주 바다는 몸살을 앓고 지구 온난화로 바다의 어족 자원 또한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같이 물질하던 동무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이제는 그녀 혼자 남았다. 해녀는 물을 떠나면 죽은 목숨이다. 비록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위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제주 해녀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지금은 물질을 하는 가장 어린 해녀 나이가 쉬흔여덟이니 조만간 제주도에서 해녀라는 이름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최근에 물질에 관심을 가진 해남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해녀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공연 프로그램은 해녀 김춘옥의 삶, 뿔소라 장인의 해체쇼, 식사, 인터뷰 순으로 이어진다. 그중 압권은 김춘옥 본인의 인터뷰이다. 궁금한 점을 관객이 적어 내면 즉석에서 그녀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어느덧 흥에 겨워 즐겨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을 부르기도 한다. 구성진 노래에 그녀의 한숨과 애절함이 묻어  온다. 그녀는 요즘 들어 관객과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늙은 해녀의 노래에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식사시간에는 건강한 제주 바다가 길러낸 것들이 식탁에 오른다. 싱싱한 야채, 해물, 그리고 뿔소라, 돔베고기와 물회, 미역국이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안주가 좋으면 술을 찾는 이도 있다. 와인을 비롯해서 취향 따라 고르는 재미가 있다. 눈으로 음식을 먼저 맛보고 다음으로 입이 즐거워지는 순간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싱싱할 뿐만 아니라 맛도 그만이다. 게다가 제주 해녀라는 상상력이 곁들여서인지 음식이 더 맛깔스럽고 정겹다.      

  


해녀의 인생은 고단한 것이어서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통역관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여든다섯의 나이로 시작하여 현역 배우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평생 물질만 했던 처지라 배우라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배우로 거듭날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      



처음 배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다. 괜히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가 사람들의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우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살맛이 났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배우 3년 차이다. 여든일곱을 살면서 이런 재미난 세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출연료로 받는 돈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주는 이들이 있어 그녀는 행복하다. 남은 생애 동안, 앞으로 관객을 만난다면 몇 명이나 만날 수 있겠는가. 진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물질하러 나서면 바다가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녀도 우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녀가 들려주지 못한 남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아직도 제주 바다처럼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물질 하러 나서면

다섯 시간 내리 바다를 훑는다 


평생 물질을  해도 무섭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순간이다 

같이 들어갔어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도 몇 있다  


아침이면 기적처럼 

매일 새로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양껏 가져와도 티가 나지 않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채워진다 


지금껏 바다가 나를 품어주어 

넉넉히 살았다


오늘도 나는 바다가 준비해 둔 

부엌으로 간다 

-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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