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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26. 2024

카카오가 우리에게 오는 법


제주도가 고향인 여자가 있었다. 


어릴 적에는 지금 가게가 위치한 구좌읍의 읍내 '세화리'에 한번 놀러가는 게 소원일 정도로 더 깡시골에 살았다. 그러던 여자는 남편과 함께 소원의 땅 세화리에 가게를 냈다. 카카오 열매를 소재로 다루는 가게였다. 가게 한켠을 제작실로 쓰고 밤이면 물건을 만들고 낮이면 그 물건을 팔았다. 다행히 물건은 잘 팔렸지만 매일 반복되는 중노동에 부부의 영혼은 너덜너덜해졌다. 접어야 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멘털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다.      


어느 날 플리마켓에서 직접 만든 카카오 캐러멜을 팔았다. 지금도 1위 판매매출을 올리는 제품이다. 번개장터 같은 곳에서 얼마나 팔릴까 싶었지만 그날 하루 딱 두 시간만에 올린 매출만 180만 원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판매 속도가 빨랐다. 한 손님은 30개를 한꺼번에 사가기도 했다. 검증받았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부의 생활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던 차에 아내의 하소연을 들은 단골손님이던 두 여자가 직원으로 들어왔다.      


두 명의 인건비만 벌자는 심정으로 달려든 게 대박이 났다. 아내는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였고, 남편 역시 LG전자에서 특허왕으로 불릴 정도로 재주꾼이었다. 하지만 매일 모니터만 보는 일에 지친 나머지 의기투합하여 시댁이 있는 과테말라로 떠났다. 



하지만 한번도 사업을 안 해본 이 부부는 3개월 만에 쫄딱 망했다. 거기서 운명처럼 카카오를 만났다. 고대 마야족과 아즈텍족에게 카카오는 '신들의 음식'이었으며 신들이 이들에게 내려준 선물이었다. 과테말라 사람들에게도 카카오는 신이 주신 축복과 같았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카카오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이 생긴 이후 남편은 원재료를 구매하는 일을 하고 아내는 유통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판매하는 제품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신이 나서 떠들면 완판이었다. 그렇게 각지 사업 설명회 등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부부의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도 되고 사람들에게 더 큰 주목을 받는 일이 생겼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카카오 패밀리’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쓴 게 이 부부이다. 제품이 카카오를 기반으로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국민 메신저로 등극한 카카오톡 때문에 자회사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카카오 패밀리라는 이름 역시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이제는 코코하KoKoHAA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고객과 만난다.      




사람들은 ‘카카오’라는 단어를 들으면 초콜릿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다음으로 따라오는 것은 당연히 달달한 맛의 추억이다. 초콜릿만 그런 게 아니라 카카오도 그렇다. 카카오는 카카오나무 열매의 씨를 빻아 만든 가루를 말한다. 초콜릿이라는 이름도 ‘쓴 물’이라는 뜻의 원주민 나와를 족의 말 '쇼콜라틀'에서 비롯했을 정도로 원래 카카오는 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동안 생각했던 카카오와 코코하가 만드는 카카오 제품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생긴다.      


이전에는 제품의 원재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최종 결과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접하는 것은 완제품으로 나온 상품화된 제품이었다. 그러나 재배나 유통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제품을 무작정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부는 이 과정이 투명한 제품만 쓰기로 마음먹었다. 시댁이 과테말라에 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제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도 큰 장점이었다.      




카카오는 신이 주신 열매라고 할 정도로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에 처음 카카오가 전파되었을 때 유럽인들이 열광한 이유가 있다. 카카오 음료는 피로 해소와 강장제로 탁월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카카오 재배나 유통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건 장난을 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팔자! 이게 부부가 지켜온 소신이자 사업 철학이다.      


부부가 파는 카카오 제품은 마니아 층이 많이 구입한다. 그만큼 고정층이 두터운 편이다. 최근 부부는 상품의 대중화를 위하여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일반인들이 보다 친근하고 쉽게 접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대중적이고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 개발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부부는 또 다른 꿈을 꾼다. 바로 신바람 나는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 보자는 것이다. 나라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제주도 전역이 불경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화리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무실의 공실이 늘어나고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아지는 게 현실이다.      



남편인 로이가 자신의 재주를 살려 사람들의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특허 출원 등을 돕고, 아내인 정아 씨는 가게 컨설팅이나 마케팅 등을 돕는다. 그들이 사는 세화리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동네가 되는 게 부부의 꿈이다. 이를 위하여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정부 지원사업도 따냈다. 앞으로 30여 개의 가게들이 새 단장을 할 때쯤이면 제주도만이 아니라 전 국민,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세화리로 거듭날 것이다.      


부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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