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증 장애인 교육의 현실

by 산들


오늘도 K는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흥얼거렸다. 좀 더 솔직히는 수업 내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 덕분에 오늘은 사진에 대한 해설을 마무리하는 날인데 집중하기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수업이 막바지에 달할수록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즘 더 절감하고 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작년에 처음 장애인 교육을 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서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사회에 봉사한다는 개념과는 멀게 살아왔기에 어느 정도 그런 생각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내가 그동안 겪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작 인원은 11명, 문제는 반 이상이 집중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솔직히는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도 초반에는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첫 수업을 하면서 너무 순진했던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하는 사진작가가 이전에 자기 수업 이야기를 했을 때도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80대까지 강의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설마 하는 안이한 생각이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면한 현실은 그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그동안 20년 넘게 강의를 하면서 누군가와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을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고 살았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강의는 적어도 눈을 마주치며 소통이 이루어졌다. 가끔 조는 이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아예 그런 기대 자체가 불가능했다. 첫수업이 너무 길었다. 평소 강의 자료가 없어도 2시간 정도는 수업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계속 책상을 두드리며 웅얼거리는 K, 한 시간 내내 외계인 같은 말을 소리치는 J, 몇 개월 동안 수업을 하면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는 O,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T, 수업시간마다 거의 울고 있는 R, 알 수 없는 인물과 캐릭터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혼잣말을 하는 L, 나머지도 의사소통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건 처음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더군다나 전체 수업시간은 20회 차 60시간. 그래도 야외수업을 할 때는 상황이 조금은 나았다. 야외 수업은 사진 출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실내의 중압감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다. 개별적으로 사진 찍는 구도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특히, 이들이 찍는 사진은 나중에 전시회에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의미도 있었다.


야외수업의 가장 큰 복병은 날씨였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무더위 때문에 밖에서 수업을 한다는 건 피하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숲이나 그늘이 있는 곳, 박물관 등을 선택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실내에 들어가면 더운 날씨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돌아올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드디어 수업의 끝이 보인다. 지금은 사진을 이용하여 감정과 표현을 다룬 언어를 선택하고, 이를 기반으로 ai 도움을 받아 문장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뭔가 그들도 진짜 자신만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다소 낭만적이면서도 감동적인 결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수업을 하면서 기관과의 문제도 수업 내내 스트레스였다. 지금 동일한 프로그램을 다른 기관에서도 하는 중이다. 사실 이것도 처음 그곳과 협의하면서 진행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내 시간을 내서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갈 때마다 수강생들도 반겨 맞아주고 반응도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에 인문 다큐 영상 제작 지원사업이 있었는데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기관은 상황이 다르다. 오늘도 불쑥 H가 수업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좋으련만 지나가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불쾌했다. 수강생과 사진을 조율 중이었는데 본인이 그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나가다 조언이랍시고 한 마디 한 것이다.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나중에 이런 건 참조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도 충분한 내용이었다. 아마도 본인이 뭔가를 과시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을 하는 도중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다니. 돌아보면 그동안 일하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을지 짐작이 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장애인 교육이란 게 일반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희생과 봉사가 밑바닥에 깔려 접근하는 분들이 있다.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텐데, 옆에서 지켜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한 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결과물은 나오겠지만 씁쓸하게 끝날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결과를 의도한 건 아닌데 그 사실이 안타깝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멸종에서 복원으로, 우포 따오기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