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전주에서 살았다. 군 시절과 해외에 머물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50년 넘게 전주에 산 셈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전주하면 한옥마을을 떠올리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한옥마을은 여전히 후줄그레하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전주천이다.
1936년 전주천 대홍수 때 전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당시 천변 인근이 물에 잠기며 큰 피해를 겪었다고 전한다. 그때 전주천에 놓여 있던 여러 다리가 유실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전주에 물난리가 났던 유일한 해이지 않을까 싶다.
유년 시절 내 기억 속 전주천은 큰 비가 내릴 때면 어김없이 도로변까지 넘실거렸다. 그런 날이면 사람들이 천변에 길게 늘어서서 전주천 물이 거세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누런 흙탕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였다. 그 물살에 휩쓸리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듯 보였다.
그 무렵 전주천은 지금처럼 넓지도 않았고 잘 정비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한 번씩 전주천에 물난리가 나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전주처럼 자연재해의 피해가 거의 없는 곳에서 큰 비야말로 가장 큰 볼거리였다. 그러니 누구라 할 것 없이 비가 그치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돼지가 떠내려가기도 했다. 70년대 무렵 가난한 집에서는 돼지가 큰 재산이었다. 거센 흙탕물에 쓸려서 둥둥 떠내려가는 돼지를 보면 사람들은 혀를 차며 탄식을 하곤 했다. 돼지를 잃어버린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났겠지만 지켜보는 이로서는 눈앞에서 돈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천변가에서 호기롭게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내 기억에 올 여름처럼 덥고 비가 많이 내린 해는 별로 없다. 누군가는 올해가 가장 시원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내린 비의 양도 무시무시했다. 전국적으로 홍수 예보가 내린 후, 전주천에 나가 보니 물살이 제법 매서웠다. 물론 예전처럼 천변에 길게 늘어서 물구경을 하는 이는 없었다. 하기야 아무리 물이 불어난다고 전주천 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리는 만무했다.
전주천은 몇 차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새에 관심이 생긴 이후 가끔 전주천에서 사는 조류 조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쇠백로, 왜가리, 민물가마우지를 비롯하여 물떼새까지 다양한 종류의 새가 살고 있었다. 새와 친해진 후 바라보는 전주천은 또 남다른 느낌이었다. 해질 무렵 오목교나 청연루에서 바라본 전주천은 붉은 노을과 어우러져 황홀할 정도였다. 그 순간,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겨울날, 나는 한옥마을을 거쳐 전주천까지 걸었다. 살면서 이런 풍경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날 내가 만난 전주천이야말로 내 평생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날 눈 덮인 전주천은 너무도 눈부셔서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풍경처럼 다가왔다. 사진을 본 이들도 전주 맞냐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하였다. 심지어 전주에 사는 사람도 물었을 정도였다.
가을 바람이 선선해지면 전주천을 걷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갈대는 더 풍성해질 것이고 전주천변에 볼거리도 많아지리라. 앞으로도 나는 전주천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 살기 좋고 인심 후덕한 전주에 이런 아름다운 천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