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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의 고장에서 아직도 글 씁니다

by 산들


전주는 역사적으로 책과 인연이 많은 동네이다. 조선의 출판 시장을 꽉 잡고 있던 경판본과 완판본, 그중 완판본이 바로 이 전주를 근간으로 해서 나왔다.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지만 글을 쓰는 일을 쉽게 권하긴 어렵다. 밖에서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고달픔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원고 마감에 쫓기며 받는 스트레스는 둘째치고 글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도 막상 돌아오는 대가는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전부터 작가는 굶어 죽기 딱 알맞는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천재가 아닌 이상, 자기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선 오래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글쓰기의 필력은 무작정 열심히 하거나 한두 해 바짝 쓴다고 쌓이는 내공이 아니다. 30년 넘게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다 보니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어떤 글은 눈에 들어오고, 어떤 글은 처음 몇 줄에서 멈출지.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조금은 생겼다.

물론 그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자신할 수는 없다. 사실 글만큼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경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당선작” 이야기이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예심을 거쳐 올라간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아 떨어진 작품에서 당선작을 뽑았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심사위원의 눈에는 차지 않지만 다른 심사위원은 그 가능성을 보고 뽑을 마음이 드는 것이 공모전의 특성이다. 그래서 신춘문예에서는 실력이 중요하지만 운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지금이야 지금이야 글쓰기 책이 넘쳐나고 강좌도 많이 있지만 내가 창작 공부를 할 때만 해도 그런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엄두를 못 냈을 뿐만 아니라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거의 혼자 독학하다시피 해야만 했다. 나중에 귀한 인연 덕분에 그나마 한두 번 지도를 받기는 했다.

모대학 출신처럼 든든한 선배가 있는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제도가 있다는 건 알았다. 원고를 부치고는 1월 1일까지 당선 소식을 기다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마음 졸이며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새벽 신문을 들추어 보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대학시절 응모한 작품이 최종심에 언급되었는데 그 사실을 십 년이 훌쩍 지난 다음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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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등단을 하고 글 쓰는 이들과 지금까지 눈을 맞추며 살아오고 있다.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후 수십여 권의 책을 내고 이곳저곳 신문사에 투고하는 행운도 누렸다. 사실 이번에 내는 시집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도』는 나에게는 아주 각별하다. 출판사에서 8차 교정지를 맡고 보니 편집을 담당했던 디자이너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은 불편하고 미안해도 지금 고치지 않으면 책이 나오고 난 다음에 후회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출판사에 찾아가서 마지막까지 디자인에 대한 상의를 했다. 9차 교정인 셈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출판사에서 8차 교정지를 받아본 이는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실력 좋은 이는 한두 번 보고 끝냈으련만 나는 책을 낼 때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매달려야 간신히 마음에 든다.

일정상으로는 조금 이르게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욕심을 냈다. 마음에 드는 책표지며 본문 디자인까지 더해지다 보니 한참 늦었다. 그래도 욕심을 부린 덕분에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번에 내는 시집은 공을 들인 만큼 더 애정이 많이 가는 책이다. 새벽까지 교정지를 붙들고 있다 보니 막판에는 AI의 도움을 받아볼까 하는 유혹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광풍처럼 AI 열풍이 불고 있다. AI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는 불과 3년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은 AI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빠르게 나뉘고 있다. 글쓰기도 예외는 아니다. 작가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기 불편하겠지만 어쩌랴.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그들 역시 예전과는 다른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신춘문예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매만지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 본다. 아직 서툴고 부족하고 어색함뿐인 원고겠지만 그 원고를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또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알기 때문이다.

그건 마우스만 딸깍 하면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처음 AI를 공부할 때와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만큼 뛰어난 글을 막힘없이 뽑아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감탄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글쓴이 이들이 발로 쏘다니며 만드는 글의 매력, 묵직한 엉덩이와 거친 손의 힘을 믿고 싶다. 그게 내가 오늘도 부족한 글이지만 새벽에 기대어 글을 쓰는 이유이다.



*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몇 분이라도 이번에 나오는 시집을 드리고 싶지만 방법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개인 스레드에라도 남겨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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