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상의 도시 피렌체
우리가 숙소로 정한 것은 피렌체 근교에 있는 signa였다. 시냐라 불리는 이곳은 단지 피렌체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잡은 동네였다. 주인은 차를 가져가봤자 피렌체는 주차도 힘들고 복잡하니 기차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기차로 피렌체는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주차가 문제였는데 다행히 하얀색 주차선에서는 종일 무료이고, 파란색 주차선에서는 오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만 무료라 한다. 집에 있는 세탁기를 이용할 수가 없다는 말에 동네 근처에 있는 빨래방을 갔으나 휴가란다. 다른 곳에 있는 빨래방까지 가기 위해서는 10분 정도 가야 한다는 말에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까지 따라가서 표 끊는 법까지 배워서 마음을 놓았건만 정작 문제가 발생한 건 다음 날이었다.
피렌체 두오모야 당연히 가야겠지만 우피치 미술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겨진 숙제였다. 나는 검색을 하다가 미술관 투어와 야간 투어가 함께 있는 상품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런데 결제를 하려고 보니 다음날은 예약이 불가한 상태였다. 결국 한국에 있는 회사에 전화하여 상담한 결과, 다른 날짜로 결제를 하고 간신히 아침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적어도 숙소에서 8시에는 출발을 한다고 해도 빠듯한 일정이다.
다음날 기차역에서 표를 사는데 어찌 된 셈인지 카드가 결제가 안 된다. 현지인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기차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표는 끊을 수 없고 속이 타들어 갔다. 거기다가 이미 미술관 투어를 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난감한 상태였다. 입장료와 미술관 투어까지 합하면 20만 원이 넘는데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간신히 현금으로 표를 끊어 기차를 타니 처음에 예상했던 10분이 아니라 거의 30분 가까이나 걸린다. 투어 팀과 약속한 시각은 가까워지는데 기차는 너무 너무 느리다. 다행히 옆자리에 앉은 젊은 친구가 자신이 내리는 역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친구가 꼭 있다. 위기에 빠진 이를 도와주는 흑기사 같은,
피렌체 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H&M 정문 앞이었다. 역에서 출발해서 몇 분이나 지났을까 기사가 도착했다고 한다. 만나는 장소를 캡처한 화면을 보여주었는데 기사는 야간에 만나기로 한 장소만 보고 헤르메스 앞에 내려준 것이다. 다시 목적지를 이야기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그 순간 다시 요금 버튼을 누른다. 그러더니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멈추더니 우리에게 20유로를 이야기한다. 거리 대비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생각하고 항의하자 갑자기 문을 열면서 내리란다. 졸지에 우리는 길로 쫓겨났다. 황망한 우리를 남겨 놓고 택시는 떠났지만 당시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어이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도 그 기사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 기차역에서 불과 5분도 안 걸린 거리였는데 그걸 20유로를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미터기를 보고 있는 내 앞에서. 그 이후로는 아예 택시 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중에 두오모 근처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가 보았는데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만나기로 한 H&M건물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근처를 몇 번이나 헤맨 끝에 간신히 여행사 직원을 만나 입장권을 받고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우피치 미술관에 입장하고자 하는 사람들 줄이 제법 길다. 긴 줄이었지만 빠르게 입장을 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우피치 미술관의 이탈리아어 'Uffizi'(우피치)의 뜻은 사무실이다. 우피치는 지금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오피스의 어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는 메디치가의 공무 집행실로 쓰였으나 지금은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카톡에 남겨진 대로 3층에 도착하니 이미 설명이 한창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제 막 설명을 시작한 상태였다. 아침 한 시간 내내 마음 졸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택시기사에게까지 내리라는 소리를 듣고 난 터라 거의 반쯤은 포기상태였는데 그래도 일행이 생기니 안심이 되고 다시 힘이 난다.
한 가문이 일군 위대한 미술품들, 메디치가는 그들의 부와 재력을 예술가들에게 아낌없이 후원함으로써 인류 문화사에서 빛나는 한 시대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는 메디치가의 미술품을 피렌체시에 기증함으로써 한 가문으로서 최대의 찬사를 들었다. 얼마 전에도 <살바토르 문디>라고 불리는 예수 초상화가 뉴욕 경매에서 5000억 가까이 팔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메디치 집안이 포기한 작품의 가치는 얼마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소장품이 2,500여 점이라니 당신이라면 그녀의 선택에 쉽게 찬성할 수 있을지? 그 조상은 르네상스를 일구고 그 후손을 세상 사람들에게 예술의 즐거움을 선사한 셈이다. 그녀가 내건 유일한 조건은 집안의 작품을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 덕분에 피렌체 시민들은 메디치 가문이 보유했던 방대한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혜택을 맛볼 수 있다. 지금도 방대한 작품의 양 때문에 한 번에 전시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순회 전시를 한다고 한다. 또한, 우피치 미술관은 순수한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미술관이 약소국의 침략과 약탈로 얼룩진 상처를 안고 있는데 비해 우피치 미술관은 가문이 기증받거나 자체 소장한 미술품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얻어진 이름이라 한다.
우피치 미술관 가운데서도 유명한 작품 앞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다. 그 중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작품 앞이다. 그동안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던 보티첼리의 작품이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작품 크기가 압도적이다. 비너스의 탄생 앞에도 사람이 몰려 있지만 <봄>(프리마베라) 앞에서도 사람들이 좀처럼 발길을 뗄 줄 모른다.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프리마베라는 다른 작품에 비해 좀 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게 보인다.
보티첼리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성 시모네타를 모델로 삼아 <봄>, <비너스의 탄생> 등을 완성하였다. 자신의 사랑을 작품에 그려냄으로써 한 여인을 예술사 속에서 불멸의 뮤즈로 만들어 놓았다. 당대의 뮤즈로 이름이 높았던 시모네타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외사랑을 화가는 울분이 아니라 사랑의 느낌으로 그려 놓았다. 화가는 자신을 시모네타 옆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니 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대충 가늠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신곡>에서 사랑의 화신으로 그려낸 것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샤를 로테가 만인의 연인으로 거듭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순간 타오른 사랑은 한 영혼을 불태우고, 그 사랑의 힘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특기할 만한 점은 <비너스의 탄생> 작품 옆에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점자판으로 설명과 그림을 만들어놓았다. 누가 그림을 눈으로만 본다고 했던가, 마음으로 읽는 이들도 있는 것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가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옆에 위치한
점자 안내문도 찾아볼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눈길 어두운 이를 위해
마음으로 작품 읽는 법과
더불어 세상 가는 길을 새겨 놓았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못 보는 이 많은 세상에
마음의 눈으로 보는 이는 지혜롭다
어두운 길 가는 이를 위해
눈 밝은 이들이 보내는
그들 방식의 따뜻한 인사다
- <점자 안내문>
피에타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명성을 얻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그린 그림의 주제는 <성가족>이다. 확실하게 미켈란젤로의 것이라고 판명되는 유일한 그림인 성가족은 현존하는 그의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초기의 작품이다. 단명했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미켈란젤로는 당시로는 엄청날 정도로 장수한 화가였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과 건축, 회화, 시 창작까지 섭렵함으로써 당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의 타고난 열정과 재능에 장수의 복까지 곁들어짐으로써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이름을 인류의 예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에 새겨 놓았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직접 액자까지 디자인한 작품으로 작품을 의뢰했던 도니와 얽혀 있는 일화가 흥미롭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도니는 작품 인수를 머뭇거렸고 가격을 낮추려다 결국 처음 가격보다 3배나 비싼 가격에 살 수밖에 없었다 한다. 그의 평생의 역작이었던 천지창조를 그릴 때 자신을 냉소한 추기경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를 지옥의 사자 미노스로 그릴 정도로 뒤끝이 확실했던 미켈란젤로다운 복수법이다. 이처럼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그림에 숨겨진 후일담을 알아가는 일도 재미있다.
우피치를 떠올리면 한 여자에 대해 불같은 사랑을 불태웠던 보티첼리가 떠오르지만 메두사를 그린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도 인상에 남는다. 신화 속 메두사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사용했다고 하니 독특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메두사 설명을 하는 동안 잠자코 있던 아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그리스 로마신화와 당시 안료로 사용했던 청금석을 이야기함으로써 칭찬을 들었다. 한때 청금석은 첸니니에 의해 “고귀하며 아름답고, 모든 색상 중에서 가장 완벽한 색”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던 광물이기도 하다. 그런 걸 아들이 알고 있다니, 나도 순간 으쓱해졌다. 그런 소소한 기억들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다.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이 눈 앞에 펼쳐진다거나 다른 이의 해설 속에 나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어쩌면 우리가 연예인을 동경하거나 만날 때의 느낌도 그런 것이리라.
사실 나는 카라바조와 같은 경향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잘 구사했던 카라바조는 사실적인 작품에도 능했다. 그래서 근대 사실주의를 개척한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평범하기에는 너무 강한 개성이 문제였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기에 그는 너무 강하고 위험했다. 폭행, 다툼, 살인 등의 단어에서 나타나듯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은 고단한 인생으로 이어졌다. 가끔 천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다른 식으로 발산하곤 한다.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보티첼리가 자신의 지고지순했던 몽환적인 첫사랑을 이어간 것이라면 카라바조는 현실 속에서 욕망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보티첼리의 사랑이 짝사랑했던 대상을 평생 혼자 흠모하며 동경했던 것이라면 카라바조의 일생은 방탕하기 짝이 없는 문제 인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과 사소한 시비를 벌이기 일쑤였고, 결국 시비 끝에 살인까지 저지르고 나폴리, 시칠리, 몰타 등을 전전해야만 했다. 화가 난 교황이 누구든 만나면 카라바조의 목을 베어 가져오라고 명령을 했다니 그는 극심한 공포에 짓눌려 살았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림에서 읽는다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카라바조 같은 이의 일생이 숨겨진 작품이라면 더 그렇다. <젊은 박카스>라는 이 그림 속에도 카라바조의 얼굴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다. 아무리 봐도 잘 보이지는 않던데 어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나는 많은 화가들 가운데 유독 이 화가의 이름이 외워지지 않았다. 몇 번을 되뇌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매번 헷갈리기만 했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카라조프라고 썼다가 고쳤다) 방탕한 생활로 일관하던 카라바조에 얽힌 일화는 제법 많다. 그는 그림만큼이나 수많은 일화를 통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준다. 그 영향을 받은 화가들도 적지 않아서 카라바조 일가라 불릴 정도였다니 이색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에게는 별로 많이 안 알려진 화가이기도 하지만 세상은 그 특별함에 매료되었나 보다. 그 특이함 때문인지 영화 <다빈치 코드>의 첫 장면에서 언급되기도 했고, 영국에서는 그의 작품 전시회를 보던 가출옥 죄수가 체포되기까지 했다 하니 시대를 뛰어넘는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9시부터 시작한 우피치 미술관 투어는 3시간 넘게까지 이루어졌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는데 작품 설명을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았다고 할까.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쉬움에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보티첼리의 작품을 보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 앞에서 경배하듯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들은 어떤 광경이나 음식을 보았을 때 눈으로 그걸 담지 못하고 사진기나 핸드폰에 우선 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걸 가슴에 담아 두었더라면 좀 더 오래가지 않을까. 일단 찍고 보자는 충동, 단세포적인 기억, 현재 문명과 기기에 의존하면서 생긴 습관이랄까.
경배하라
우피치를 찾은 이들이여
천 년 사랑의 흔적을 찾아
핸드폰을 높이 들고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경배하라
기억으로 담아둘 수 없으므로
카메라를 들고, 핸드폰을 높이 들고
신의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 열고 귀 열어 마음껏 경배하라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 못 올 시간이기에
그 옛날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경배하라
- <우피치에 경배하라>
그 짧은 시간에 우피치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피치 미술관은 너무 방대했으며 시간의 축적 속에 만들어낸 예술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해설을 곁들임으로써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로 조금은 더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작품을 볼 때 해설을 배제하고 보는 데 익숙했었다. 작품을 볼 때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보게 되면 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볼 때면 오래 오래 보면서 작가가 그렸을 당시의 느낌과 정서를 조금이나마 맛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가끔은 다른 이와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 투어는 나의 선입견을 깨뜨리게 한 작은 사건이었으며 특별한 경험이었다.
살다 보면 가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고흐의 <오베르 교회>가 그렇다. 나는 보티첼리 작품 덕분에 앞으로 피렌체를 더 따뜻하고 감성이 넘치는 도시로 생각할 것이다. 해설이 있는 미술관 투어를 해서인지 아이들은 미술품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대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었나 보다. 그림에 자주 나오는 색깔이나 등장인물의 동작만으로도 그 의미나 인물을 구분하는 정도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한 걸음 더 미술의 세계로 다가서다니, 그것만도 어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말 알고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가끔 벼룩시장에서 명화를 구입한 사람 이야기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면 그 안목이 부럽기도 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다. 아들이 유럽 여행 중 피렌체가 제일 좋았다고 하는 걸 보니 설명을 들으면서 하는 미술관 투어야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루브르에서도 미술관 투어를 생각하기는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하지 못했다. 그걸 우피치에서 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미술관 투어하기를 참 잘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특히, 어린 시절이라면 더 그렇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미술관 투어를 꼭 추천하고 싶다. 짧지만 강렬했던 추억이 당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