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를 찾는 이라면 다른 지방과 달리 가게들의 화려함에 눈이 먼저 호강하는 경험할 것이다.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유리공예가 발달해서 특색 있는 유리 제품이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베네치아 본섬 구석구석 골목을 다니다 보면 수많은 가게에서 유리 공예품을 취급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가게를 장식하고 있는 유리제품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정교함까지 갖추고 있다.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후예답게 이탈리아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어우러진 제품들에 저절로 눈이 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화려한 모습의 펜던트부터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메뉴도 있고 아기자기한 단품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베네치아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한 두 가지의 유리제품은 사 가지고 오기 마련이다. 나는 피사에서부터 아내에게 주기 위해 펜던트를 사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가게에서 세트 메뉴를 주로 보았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무늬의 유리 작품들은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그 많은 제품을 만드는 공방은 대부분 무라노 섬에 있다.
베네치아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숙소의 체크아웃이 10시였기 때문에 일단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맡기고 좀 더 베네치아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무라노 섬(Murano)과 내친김에 부라노(Burano) 섬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베네치아를 처음 찾는 이라면 이름이 비슷한 무라노와 부라노가 같은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 같아서는 베니스 영화제가 열린다는 리도까지도 가볼까도 했으나 여행에서 무리한 욕심은 금물이다.
일단 본섬에서 무라노 섬을 가기 위해서는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야 한다. 택시도 있기는 하지만 바포레토는 좀 더 대중적이고 저렴하다. 400여 개의 다리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베네치아를니스를 연결하는 주요 운송수단인 바포레토는 베니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명물이다. 파리에 가본 이라면 바토무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한번 타는 가격이 7.5유로, 왕복이면 15유로, 거기다 무라노와 부라노를 다녀오기로 한다면 30유로 가까이 든다. 적지 않은 가격인 셈이다.
물론 1회권을 끊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나은 해결책은 1일권을 사는 것이었다. 1일권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1박 2일을 머무는 경우라면 1일권을 구입하는 게 훨씬 낫다. 1일권이 20유로기는 하지만 여러 군데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일권은 티켓 자동 구매기뿐만 아니라 일반 상점에서도 판매하기 때문에 정거장이 있는 곳이라면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다만 너무 작은 정류장에서는 팔지 않기 때문에 규모가 큰 정류장 근처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의할 점은 승선 시에는 바코드를 찍고 들어가기 때문에 검사가 없지만 불시에 검사를 한다는 사실이다. 배를 타는 과정에서 검사하는 사람이 없으니 관광객으로서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검표를 불시에 진행해서 걸리면 적지 않은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만용으로 여행을 망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문제는 무라노섬을 가려는 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별로 사람이 없는 다른 곳으로 가는 줄과 달리 무라노행만큼은 줄이 길다. 다른 섬과 달리 무라노섬을 찾는 사람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기도 있고 볼거리도 많다. 무라노섬의 정거장은 세 곳이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다 무라노섬이니. 만약 부라노섬으로 가는 이라면 무라노섬에서 갈아타야만 한다. 본섬에서 부라노섬까지 바로 가는 배는 없기 때문이다. 무라노 건 부라노 건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바로 배를 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정이 짧거나 시간이 없는 이라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코스이다. 수상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도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에 긴 줄이라도 만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본섬을 빠져나간 바포레토는 오래지 않아 무라노섬에 도착한다. 배 위에서 보는 베네치아 풍경도 근사하다. 본섬의 가게들 역시 유리 제품을 취급하기는 하지만 무라노섬은 좀 더 느낌이 색다르다. 무라노 섬에 보았던 가게 한 곳은 아예 오케스트라 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시 연륜과 축적된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라노섬에서 압권은 유리잔으로 연주하는 거리의 예술가를 만난 일이다. 유리잔에 담긴 물들이 영롱한 소리를 낸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소한 인연들이 추억으로 남아 우리 생을 빛나게 한다.
무라노섬에서 좀 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공방에서 직접 유리 제품을 만드는 것은 보지 못했다. 운이 좋은 이는 눈앞에서 유리로 말을 금방 만들어내는 걸 보기도 했다는데 그건 우리 몫은 아니었다. 비교적 가까운 줄로 알았지만 다음 일정인 부라노섬까지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부라노섬의 첫인상은 무라노섬과는 많이 달랐다.
<부라노 섬>
이탈리아를 찾는
사람들은 베네치아만 왔다 가지만
아는 이들은 부라노로 간다네
파스텔톤 그림이
마을이 되어버린 곳.
사연 많은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 따라 흐르는
작은 어촌 부라노.
가다가 그냥 발길이 머물러
잠시 머물면
누구라도 친구가 되지 않을까
반가운 이웃이 되지 않을까
이곳 부라노에서는
부라노섬은 골목골목이 어쩌면 그렇게 감칠 나게 멋있던지 눈이 저절로 호강하는 느낌이었다. 골목길을 걷고 있노라니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가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들린 곳이지만 부라노에서의 느낌은 강렬하고 선명한 빛으로 인상적이게 다가온다. 단지 호사스러운 화려함만이 아닌 각각의 색깔이 맑은 하늘과 파란 바다와 어울려 빛을 발한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마을 안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 덕분에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쉽게 배를 볼 수 있다. 여기에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파스텔 톤의 색채가 바닷물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동을 준다. 심지어 빨래를 널어놓은 집이나 아무렇게 세워둔 자전거마저도 운치 있게 느껴진다. 여기서라면 누구나 저절로 카메라나 핸드폰을 누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마을 누군가가 처음으로 이와 같은 발상을 시도했을 텐데 지금은 이 화려한 색감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누군가 이 마을에 있는 문만을 찍어서 엽서로 만들어 놓았던데 사실 가보면 반할 정도로 근사하다. 어쩜 이렇게 색감을 살리면서 멋지게 마을을 만들어 놓았나. 이탈리아인의 타고난 감성과 디자인이 이런 마을을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네치아 본섬도 골목골목이 아기자기한 멋이 넘치지만 우연히 들린 부라노섬이 주는 감동도 그 못지않게 크다.
<부라노 찬가>
마음 복잡한 날은
날 잡아서 부라노나 가자
베네치아 복잡한 골목길이 싫증 나면
배나 한번 잡아 타고
무라노에서 배도 바꿔 타고
색동 보자기같이 알록달록한 부라노에 가자
골목마다 추억이 넘실대고
아무 데라도 들어가고픈,
금방이라도 오고프면 안 되니까
사진도 많이 찍어서
묵은지처럼 넣어 두고 오래오래 보자
그리울 때마다
보고플 때마다 꺼내서
긴 밤이 짧아질 때까지
짧은 밤이 길어질 때까지
무라노섬이 유리 공예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면 부라노섬은 레이스 공예가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골목에는 레이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다. 16세기 이후 정교한 레이스 공예품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그 명성의 흔적만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지친 일상에 힘들어하는 이나 시끌벅적한 베네치아에서 벗어나 한적함을 느끼고 싶은 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일상이 화보 같은 소박한 어촌 마을 부라노. 당신이 오늘도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이라면 부라노섬을 찾기를 권해 본다. 이탈리아에서 찍은 무수한 사진들 가운데 핸드폰 배경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곳이 바로 부라노이다.
<부라노의 여유>
사람들은 물 따라
부지런히 길을 만들고,
길은 또 사람을 따라가며
마을을 만들고
심지어는 걸려 있는 빨래까지도
단단히 한몫하는 곳
여기 찾는 사람들은
예쁘다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지만
여기 사람들 삶까지는 담지 못하지
우리가 사는 이야기까지는
담아가지 못한다는
느긋한 여유가 물씬 풍겨지는
베네치아의 자존심
부라노 부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