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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크림 May 02. 2023

구조의 바깥은 없다

이글루스의 지난 글들

이라크를 '자원'해서 다녀왔다고? 



 지난 주였던가.


 갈매기살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과 종로 3가에 돼지고기를 먹으러 갔었다. 어둑해질 무렵, 갈매기살로 유명한 골목(맞나? 하여튼 난 그렇게 알고 있다)으로 들어가니 이미 저녁에 한 잔 걸치러 온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겨우 길거리에 자리를 하나 잡고 고기를 주문했다. 물론 갈매기살이었다.


 내가 갈매기살을 주문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내가 간 곳이 갈매기살로 유명한 골목이라고 알고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으며, 갈매기살이 가장 많이 팔릴 것이므로 파는 고기 중에 가장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삼겹살을 먹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고 고기를 다 먹은 듯한 사람들 중에는 입가심을 하려는 듯 국수나 냉면을 먹기도 했지만 역시 대세는 갈매기살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뭐 대강 이런 갈매기살이었다... 이미지 출처


                                                  

  몇 개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은 그 골목에서 길거리까지 테이블로 두고 모두들 갈매기살을 먹고 있었지만 그들이 다른 부위가 아닌 갈매기살을 주문한 이유는 각각 다를 것이다. 어느 사람은 갈매기살을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좋아해서 혹은 수없는 회식에서 먹었던 삼겹살에 질려서, 또다른 사람은 나처럼 갈매기살을 시키는 것이 가장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물어보지 않는 이상 그들이 다른 부위가 아닌 굳이 갈매기살을 시킨 이유들을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최소한의 공통점들을 짐작할 수는 있다. 


 첫째, 그 골목이 갈매기살로 유명하다는 점.  (특정 음식으로 유명한 곳에서 그걸 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다) 

 
 둘째, 그들이 '적어도' 갈매기살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점. (갈매기살을 싫어했다면 그 곳에 오지 않았거나 적어도 갈매기살을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날 그 곳에서 나를 포함해서 갈매기살을 주문해서 먹던 모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위의 조건에 부합할 것이다.(물론 직장 상사가 갈매기살을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온 부하직원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사람이 직접 주문을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테니 제외하자)  


그렇다면 그들의 선택에는 공통된 조건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뜬금없이 '갈매기살' 이야기가 길어졌다. 내가 갈매기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구축하는 자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그 구조는 우리에게 선택이 단 하나의 이유로만 결정하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주체가 특정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수많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파병에 지원한 이유는 아마 지원자 수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공통된 기반이 있고 이 기반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에 기인한다.


 나 역시 군 복무를 할 때 해외파병에 지원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UN 평화유지군으로 '앙고라'에 파병되는 것이었는데 지원률도 굉장히 높았다. (해외 원정 도박 건으로 지금까지도 복귀를 하지 못하는 그 연예인이 파병된 그 때이다)  인사계(요즘은 행정보급관이라고 하나? 정확히 모르겠다)에게 '죽을려고 거기 가냐?'고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 결국 포기했지만 그 때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매력적인 보수 때문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세번째 요건도 내가 파병을 지원하려는 이유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군복무 기간은 똑같은데 이왕이면 돈이나 많이 받자' 뭐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제대를 하면 학교에 복학할 예정이었지만 등록금이나 생활해야 할 금전에 대한 압박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 때 대학교 등록금은 상대적으로 쌌었고 그냥 등록금은 집에서 내주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철없는 나이였을 뿐이다.) 즉 내가 제대 후 써야할 돈 때문에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당시 1000만원이 훨씬 넘는 수당 (당시 병장 월급이 1만 2천원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체가 탐이 났던 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데 왜 좋은 기회를 그냥 차버리겠는가. 아닌 말로 님(군복무)도 보고 뽕(엄청난 보수)도 딸 수 있는데.  


  그 당시 파병에 대한 높은 지원률에는 사병 신분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높은 수당 역시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리라. 내가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소위 '돈독'이 올랐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다. 당시 사병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즉 <파병을 지원하거나 지원하지 않거나>다. 거지같은 고참 보기 싫어서 혹은 지금 부대 생활이 싫어서가 파병 지원의 이유들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이 군인이라는, 적어도 앞으로 군복을 1년 이상은 벗을 수 없다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제한된 선택만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곳에 나를 던져보고 싶어서,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어서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각 주체들에게 선택을 하게 만든 매커니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과연 당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과연 파병에 지원했을까. 물론 지원할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 비율은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연 민간인 신분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파병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즉 그들의 선택은 수많은 다른 이유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그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은 '군복무'라는 공통된 기반이 절대적 조건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이다. 막말로 '이왕이면...'이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을 구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난 푸코의 '권력의 바깥은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편이고 구조 역시 권력의 다른 모습이라고 믿는다. 주체에게 제한된 선택만이 존재하는 구조에서 수없이 많은 이유들로 주체들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의 심연에는 공통된 기반이 존재한다. 하지만 난 구조가 주체로 하여금 그 선택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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