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의 지난 글들 : 영화 <건축학 개론>에 부침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기억을 다룬다. 결국 이야기는 발화자가 지니는 기억의 최대치이며 청자는 (혹은 독자는) 그 이야기가 갖는 힘으로 인해 그에 감염된다. 감염의 정도는 이야기의 힘이 지니는 강도나 청자가 공감하는 정도에 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내가 <건축학 개론>을 말하려면 '공감'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는게 나을 듯 싶다.
그간 젊은 시절의 기억을 다룬 영화는 많았고 그 중 얼마는 직접 보기도 했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부터 <러브레터>,<4월 이야기>, <번지점프를 하다>를 거쳐 가깝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써니>까지.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88426
사실 우린 그동안 그런 영화들로 인해 경험하지 못했던 이전 세대의 기억을 추억하도록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난 <친구>의 친구들처럼 까까머리와 후크달린 깜장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교련복을 입기는 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선도부에 의해 린치를 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억의 편린들이 끼워맞춰진 이야기들을 마치 우리 세대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추억하도록 요구당한 것은 아닌가 말이다.
사실 기억을 재생하도록 만드는 힘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사물에 존재한다. 서사는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물은 특정한 시대를 대변해 주는 것이면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거의 동일한 경험치를 기본적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이야기의 힘만 아니라 적절한 사물을 배치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88426
DISCMAN이라는 하얀 글씨가 박힌 CD 플레이어는 바로 80년대 말, 90년대 초중반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경험치를 부여한 대표적 사물이다. 워크맨처럼 그냥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커서 백팩(그 시절에는 배낭이라고 불렸던)에 넣고 이어폰으로 연결하여 들었던 그 CD 플레이어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재생함으로써 완벽하게 그 시절을 복원한다. <기억의 습작>은 전람회의 대표적인 곡이자 90년대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가장 적절한 곡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청춘을 보냈던 우리들이 모두 어느새 잊고 있었던 곡이었기에 그걸 일깨우는 아찔한 느낌은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극대화된다.
마치 <써니>에서 '라붐'의 'reality'와 촌스런 헤드폰에서 떠올릴 수 밖에 없던 그 느낌은 <건축학 개론>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의 순진함과 어설픔'을 통해 본격화된다. 스무 살의 승민과 서연은 그 나이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청바지와 약간은 촌스러운 하얀 운동화를 신고 벤치에 앉아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은 나에게는 아름답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아픈 기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20대를 지낸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기억이자 몇 가지 디테일로 인해 90년대 20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승민이 서연에게 전람회 앨범을 돌려주는 장면은 또 어떤가. 나 역시 스무 살 즈음에 이런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기도 했고 거리에서 혹은 학교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수없이 바라보며 그 때마다 가슴이 '덜컹'했던 기억이 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내가 직접 그리고 스스로 경험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경험에는 굳은 살이 박힌다.
<건축학 개론>의 출현은 90년대 20대를 보냈던 사람들이 영화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전 세대가 거쳤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마치 우리의 기억처럼 추억하도록 만드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렇기에 영화 포스터의 카피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