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녕 Apr 16. 2019

일하는 임산부의 서글픈 날들

엄마의 하루|조산의 위험신호

9개월 차 다음 예약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투입 시간이 애매해 현장에 준공청소를 쓰지 못해 직접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가야만 했다. 그 남자를 대동하여 밤 10시에 배에 복대를 두르고 가서 청소를 하고 왔다. 쭈그리고 현장 바닥을 닦다가 눈물이 났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왜 이러고 사는 건지. 집에 돌아가서 보니 몸살이 난 듯했다. 약도 먹을 수 없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고 그날 밤부터 배뭉침과 아픔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간 미통이었다면 이건 진짜다.


이틀 뒤 직원과 포천 현장에 다녀오던 길에 더욱더 알 수 있었다.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진통 인지도 모르고 그냥 몹시 아프다고만 생각하던 나는 매우 매우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뭔가 걸려있는 느낌. 이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심상치 않다.


어기적 어기적 걸어 병원으로 갔다.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3d 초음파 운운하고 있던 나에게 원장님은 2개월 입원을 강력하게 명령했다. 아기가 1cm만 나오면 태어나는 상황이었고 지금까지 병원에 안온 개멍청이 취급을 당했다.

그 순간까지도 난 회사에가서 컴퓨터만 끄고 오겠다고 말하는 여자였다. 금 뒤 현실을 직시하고나니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럴 순 없다. 개인의 역량으로 운영되는 나의 작은 스튜디오는 아직 회사의 형태를 띠지 못했다. 가만히 둬도 굴러갈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래 난 망한 거야. 지금 태어난다는 아기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가 멍청하고 한심했다.


29주. 지금 태어나면 아기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시국이 좋지 않다. 이대목동병원의 아기들의 잇단 사망사고도 너무나 무서웠다. 게다가 원장님 말론 지금은 인큐베이터는 구할 수도 없단다. 진짜 못 구하는 건 아니겠지만,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다. 너무나 두려웠다. 이렇게 보내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30주 미만의 아기들의 생존율도 생각보다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나는 뉴스에 떠드는 대로 우리나라 기술이 좋아서 다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많은 아가들은 부모의 노력과 이겨내려는 자생력. 하늘이 점지해준 천운으로 정상인으로 살 수 있는 거였던 것이다. 살면서 보니 나쁜 일은 나를 피해 가지 않았다. 지금이 그때인 듯했다.


입원을 했다. 걸어 들어왔는데 휠체어를 타고 5층으로 갔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1초라도 빠르게 보파를 놔주었다. 이걸 맞으면 아가가 도로들어가나?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열이 미친 듯 나는데 몸에서 영혼이 이탈하는 것 같았다. 미친 여자처럼 새벽 3시에 옷을 다 벗고 침대에 누워서 창문을 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았다. 나는 아기가 오는걸 기뻐하지도 않았고 몸을 함부로 마구 썼다. 난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침대에 얼굴을 박고 펑펑 울었다. 라포바 줄이 빠질까 걱정하면서. 그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4일째 입원하는 날 탈출을 시도했다. 원장님은 엄청나게 호언장담하셨다. 집에 가면 내일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아기를 만나고 싶다면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쓰던 양쪽 방은 산모들이 난방을 펑펑 때며 있었다. 나는 약 기운에 열이 나서 더웠지만 그들은 너무나 추웠다. 그리고 나는 위급했지만 양쪽 방은 축하하는  웃음소리와 손님들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것 역시 괴로웠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곡소리로 들리곤 했다.


결심해야만 했다.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그렇게 두 달간의 침대생활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