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남긴 폐차
종종 근무하는 사무실로 걸려오는 폐차 문의 전화에는 슬픔이 안개처럼 끼어 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남기고 간 자동차는 어떻게 폐차할 수 있을까요?"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난 분들의 흔적을 정리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메마른 사막처럼 황량하다.
그런 와중에 수화기 너머에 있는 아픔에 전해줄 수 있는 단어는 애써 목구멍에 집어넣어 삼키고 업무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나의 위로보다는 막막한 상속폐차절차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런 수화기너머의 형식적인 위로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 지 확신이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차주가 사망한 경우 상속폐차는 사망신고를 기점으로 내용이 변경된다. 고인이 된 차주의 사망신고가 있기 전이라면 기존폐차절차대로 폐차를 진행하면 되지만 사망신고 이후에는 고인 기준의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상속가족 전원의 상속포기각서, 상속대표자의 인감날인 위임장과 인감증명서가 필요하게 된다.
상속폐차라고 해서 기존 폐차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5등급 경유차량이라면 조기폐차 지원금을 받기 위해 조기폐차를 진행할 수도 있고 체납이 있다면 조건에 따라 차령초과말소를 진행할 수도 있다.
다만, 차량이 조기폐차 차량이라면 명의이전을 하고 조기폐차접수를 해야하는제 조기폐차의 경우 6개월 이상 유지조건이 있어 이 경우 고인분 기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서 해당 조건을 유예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고인명의로 자동차를 계속 방치할 경우 과태료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고인명의 차량을 3개월 이상 말소하지 않을 경우 3개월이 경과하는 시점에서 과태료 10만원이 발생한다. 이후 10일이 경과하고 나면 하루당 1만원씩의 과태료가 추가로 누적되어 최대 50만원까지 청구할 수도 있다.
명의이전의 경우에도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완료를 해야하며 6개월 이후에는 위 사항과 동일하게 과태료가 발생한다는 점도 알아둬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인이 된 차주의 과태료나 세금체납이 누적되어 차량가액을 뛰어넘는 경우 한정승인을 통해 폐차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차령초과말소를 통해 진행할 수 있지만 차령초과폐차(11년이상) 연한이 되지 않은 자동차의 경우에는 직접 폐차를 진행할 수는 없고 법원을 통해 공매신청을 하거나 채권자의 동의를 얻어 임의처분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한번은 우리 엄마 나이또래의 여사님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남편이 지난주 돌아가셨는데 폐차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차가 어디 있는 지 모르겠어요." 떠난 사람의 허전함과 그의 흔적을 지우는 일. 너무나 가슴아픈 사연이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폐차 요청된 자동차를 반드시 폐차장에 입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폐차를 진행할 방법이 뚜렷하게 없었다.
여사님의 마음 속 멍자국에 돌하나 더 얹은 심정. 길을 떠난 사람은 저멀리 여행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가족과 고인이 이세상에서 여행을 다닐 때 소중하게 탔던 그 자동차는 그렇게 황량하게 이 땅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