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차의 딜레마
누가 좋고, 나쁘고, 이상한 지 절대 확신치 마라
(Never be sure who's good, bad or weird.)
세상은 다변화되어 이전처럼 너는 나쁜 놈이고 나는 착한 놈이라고 무턱대고 구분짓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시대, 흑백의 시대가 아닌 총천연색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바야흐로 21세기 사회의 흐름이다.
최근에 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조기폐차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었고 이에 대해 정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다가 그럼 "생계형으로 운전하는 운전자들은 어떻게 하냐"는 말에 말문이 잠깐 막히고 말았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노후경유차를 폐차하고 그 폐차의 기준가액을 보전해주는데 누가 싫어해?라고 생각했지 실제 생계로 운전대를 잡는 운전자분들이 2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새로운 차를 살 수가 없고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한 건 아닐까?
이러한 고민을 뒤로 하고 배출가스 저감사업의 일환으로 노후경유차에 대한 대대적인 감축정책이 정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노후경유차는 과연 나쁜 놈일까? 아니면 서민의 친구 착한 놈일까?
노후차는 일단 지구에게 나쁜 놈이다.
우선 자동차는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 산정방법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경유차 뿐 아니라 모든 차량을 오염물질 배출에 따라 5등급으로 분류해서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2년 7월 1일 이전 등록된 5등급 경유차의 경우에는 미세먼지가 심각한 12월에서 3월사이 계절관리운행제한제도를 통해 수도권지역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고 5등급 차량 중에서도 자동차 종합검사 불합격차량과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하지 않은 차량의 경우에는 상시 운행제한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5등급 차량 보유자를 위해 저감장치(DPF) 부착 지원, 조기폐차 유도를 통해 5등급 차량의 도태를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경기연구원의 '경기도 5등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간 추진한 경유차 저공해화사업을 추진한 결과 대기오염물질 배출 삭감량은 PM10(미세먼지) 4,465톤, PM2.5(초미세먼지) 4,108톤, NOx(질소산화물) 30,254톤, VOC(휘발성유기화합물) 5,933톤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경제적 순편익도 3조 6,654억 원에 달할 정도로 5등급 경유차 감축을 통해 상당량의 미세먼지를 감축하고 실질적인 경제성까지 갖춘 것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
이에 호응하여 환경부에서도 미세먼지 저감사업으로 운행차 배출가스 저감사업을 역점사업으로 올해 2021년 예산을 6,282억원으로 편성(2020년 6,027억원, 4.2% 인상)하여 노후차 퇴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노후경유차 조기폐차에 3,168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24년까지 노후경유차 80% 이상 퇴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만큼 5등급 경유차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도태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노후경유차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의 대표적인 산물로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휘발성유기화합물을 토해내는 우리 대기의 적이자 우리 미래의 환경을 헤치는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이 놈, 저소득층에게는 좋은 놈인지도?
노후경유차를 퇴출시키면서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300만대, 수소차 85만대 보급목표를 수립한 바 있다. 2019년 수립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2040년까지 전기차 830만대, 수소차 290만대 보급을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전국 기준 자동차등록대수가 2400만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 20년뒤에는 자동차 절반이 친환경차로 보급된다는 청사진을 정부에서 제시한 것이다.
전기차와 수소차가 온실가스 저감과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친환경차량이 저소득층에게까지 보급될 수 있을까? 우선 올해 환경부의 전기차 및 전기차 인프라 구축예산을 1조1,226억원(2020년 8,002억원, 39%인상)으로 대폭 인상하고 101,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목표를 세운 바 있다. 하지만 대당 전기차 국고보조금은 해마다 줄어들어 2013년 1500만원 수준에서 2020년 700만원 수준으로 절반 이상 축소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전기차인 아이오닉 EV의 경우에도 기본차량 가격이 4,400만원선이며 국고보조금과 지자체보조금을 최대한 받게 되면 2,400만원 가량에 구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기폐차를 통해 조기폐차지원금 200만원 남짓을 받더라도 전기차를 구매할 여력이 도저히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고급전기자동차로 유명한 테슬라 역시 2019년 전기차 보조금 전체예산의 6.5%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생계형으로 운행하는 경유트럭에 대해서도 문제다. 시중에 출시된 전기트럭 역시 제한적이고 올해같이 극심한 추위에서는 배터리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어 매일 장거리를 운전해야하는 운전자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한, 전기차인프라가 확충되었다고 하지만 5분안에 주유가 가능한 경유차 대비 길게는 1시간까지 충전을 기다려야 하는 전기차의 여건 상 여러모로 제한사항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운행제한에 따른 노후경유차 폐차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주위에서는 배기가스를 내뿜는 고물을 가진 민폐 운전자로 낙인찍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출에서도 노후차는 개발도상국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이다. 작년 한해 40만대 가량의 한국중고차가 수출되었는데 대부분 리비아, 예멘, 요르단, 가나와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대부분이 OECD국가처럼 전기차 인프라가 구축하기 어렵고 자동차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도 없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노후차량이라도 마르고 닳을 때까지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물을 기르기 위해 매일 10Km를 도보로 이동하는 아이들에게 매연을 토해내는 낡은 포터트럭은 그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선물일까?
혹자는 국내의 폐차량을 다시 운행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온당한 방법일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환경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테슬라도 없고 아이오닉도 없으며 오토바이를 만들 수도 없는 환경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전기차를 타라고 얘기하는 것은 마리앙뜨와네트가 파리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상한 놈 노후차
시간은 지날 것이다. 그리고 노후차는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이고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연을 토해내는 노후차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운송수단이자 소중한 친구인 것도 잊지 말자.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 노후차와 아름답게 떠날 준비를 해야할 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이 노후차를 강제하고 제재하는 지에 집중하는 것은 노후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에게는 그야말로 이중고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조기폐차지원금을 조금 더 현실화하고 이를 통해 차주들이 새차까지 살 수는 없지만 한단계 좋은 중고차를 살 수 있는 유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전기차 예산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테슬라 모델 S를 구입하는 차주님께는 죄송하지만 전기차예산을 좀 더 복지적 측면에서 분배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해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OECD회원국이자 경제 10대대국인 대한민국이 이렇게 인색해서 되겠는가? 적극적으로 개발대상국을 위한 ODA정책을 펼쳐야 한다. 도로, 발전, 자동차 등 모두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산업분야이다. 일본은 미얀마, 필리핀 등지에 적극적으로 도로 및 자동차 ODA 정책을 펼쳐 시장점유율까지 확보한 바 있다. 우리 역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훌륭한 경제 파트너가 되어 동반 성장을 이룰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물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노후차가 개발도상국에서도 도태시키는 것은 당연지사.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린 노후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떠나 보낼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가쁜 숨을 토해낼 수 밖에 없는 차량도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후차, 나쁜놈이기도 하다가 좋은 놈이기도 한 이상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