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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Oct 03. 2021

여기가 어디죠?

디자인과 문화, 영화와 음식 등 장소에 대해 늘어놓는 정체불명의 잡탕수프



나는 이방인이었다. 

20대 초부터 삼십 대를 넘긴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을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여기에 적응할 만 하면 다른 곳 그 뒤엔 또 다른 어느 곳으로, 그렇게 여행에서 여행으로 이어지는 삶. 새로움 속에 자신을 던져놓고 길도 언어도 모르는 곳에서 우왕좌왕하며 헤매기 일쑤였다. 하지만 거기엔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안정감은 없을지라도 낯섦을 견디려는 예민함이 있었다. 집으로부터 한참을 떨어진 남의 나라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시에 있다 보면 입을 덜 여는 대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면서 자연스레 관찰력이 좋아진다. 그렇게 바싹 마른 스펀지같이 주변을 바라보고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틈이 날 때마다 기록해두었다.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작은 스케치북 하나를 펼쳐놓고 모나미 볼펜으로 쓱쓱 그저 그날의 즉흥적인 감상과 흥미로운 점, 낙서나 그림 정도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습관처럼 쌓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습관이 그러하듯 최초의 의미는 사라지고, 거기에 일을 벌이기만 하고 수습은 못 하는 태생적 게으름이 더해져 장소에 대한 기록들은 스마트폰의 오래된 사진들처럼 관심을 받지 못하고 낡은 노트와 하드드라이브 어딘가에서 서서히 잊히며 세월만 먹어가고 있었다.  



photo credit: Emanuela Picone                    @emanuela (unsplash.com)



시간이 흘러 2020년, 전 세계의 모두가 코로나의 피해를 보고 발이 묶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내외로 여행에 제약이 생겨 삶의 반경이 점차 좁아지면서 지금까지 나를 움직여오던 동력들, 예컨대 호기심이라던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관찰력 등이 퇴화해 가는 것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구나 싶었다. 최근 2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여행 가고 싶어!",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많이 다닐걸" 이었으니 말이다. 무언가가 죽어가는 듯한 위기의식이 일었는지 나는 느닷없이 오랜 기록들을 뒤적이고 먼지를 톡톡 털어내어 지난 기억을 하나씩 다시 꺼내 보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잊고지냈던 감각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쳐왔던 여행지들에 대해 곱씹고는, '맞아 여기 참 좋았지'라고 혼자 되뇌다가 문득 이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이 아닌 브런치의 글로. 방구석에서 동동거리며 다시 어딘가로 떠나게 될 날을 갈망하는 우리들의 여행 DNA를 조금이나마 되살리기 위해 [여기가 어디죠?]를 기획하게 되었다.   



냉장고 속 오래된 식재료를 한 번에 처리할 때 나는 종종 그것들을 한데 모아 스튜를 끓인다. 당최 어디에 족보를 둔 음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박한 맛에 먹다 보면 나름 만족스러운 한 그릇이 된다. [여기가 어디죠?] 시리즈는 이런 한 그릇의 스튜 같은 여행 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래된 재료들을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커다란 냄비에 디자인적 관점에 영화와 책, 음식과 술 등의 토픽들을 투박하게 썰어 넣고 자박자박 끓여보려 한다.  


누군가가 정말 "여기가 어딘가요?"라고 물었을 때 편안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수다처럼! 


     


[여기가 어디죠?]에서 다룰 토픽들 


+ 역사가 있는 도시  History 

+ 옛것과 현대적 감각의 만남  Old and New  

+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도시  Future City  

+ 자연 속으로  Nature 

+ 재료가 주는 날것의 매력 Materiality

+ 방대한 디자인의 세계  Design 
+ 인간과 삶에 질문을 던지는 장소들  Life and Human 




코로나가 조금씩 잡혀가며 내년 즈음엔 다시 여행이 재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들이 커지고 있다. 내년과 내후년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 속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 디자인과 문화, 영화와 음식 등 장소에 대해 늘어놓는 정체불명의 잡탕 수프 같은 [여기가 어디죠?]를 읽으며 독자들이 자신들이 여행했던 장소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고, 새로 떠날 곳에 대한 기대를 더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곁들인다. 

 


* 전문적인 정보를 기대하시는 분께는 죄송하지만 [여기가 어디죠?]는 장소들에 대한 습자지처럼 얕은 지식과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들로 범벅된 정체불명의 수기입니다. 잘못된 내용을 짚어주시거나 주제에 관련된 개인의 경험을 남겨주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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