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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꼬마리 Oct 28. 2024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일로 놔두자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


어릴 때부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걸 싫어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만 찾아서 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면 그날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했다. 머리칼을 만지다가 갑자기 당일 예약 되는 곳을 찾아서 당장 머리를 자르고 온다거나 프랑스 자수 영상을 보고는 그날 밤 자수 세트를 왕창 사버린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고통도 감수할 정도로 진심인데, 고등학생 때 귀를 뚫고 온 친구를 보곤 너무 부러워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 귀걸이를 찾아 스스로 귓불을 뚫어버린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겁도 없고 눈에 뵈는 것도 없었나 보다 싶다. 스스로 귀를 뚫는 건 장장 한 시간 정도가 걸렸고 너무 아파서 식은땀까지 날 정도였다. 마지막엔 반짝거리는 귀걸이가 달려진 귓불을 보고 눈물 나게 기뻤지만. (실제로 눈물이 나긴 했다. 아파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말 그대로 고통도 감수하는 사람인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저기 인심 넉넉한 시골 동네 할머니처럼 되어버린다. 하기 싫은 일을 하려고 꾸역꾸역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갑자기 마음이 넓어지고 인자해지기 시작한다.

 -아이고, 괜찮아.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간식부터 먹고 해. 눈이 아주 때꾼한 게 피곤해 보이네. 낮잠이라도 자야 쓰겄는데?

그러면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침대에 눕곤 한다. 그러곤 이제 진짜 발 등에 불이 떨어지다 못해 익기 직전이 되어서야 울면서 일을 시작하는 거다. 이제는 ”왜 안 깨웠어! 학교 늦었잖아. “ 하고 탓할 사람도 없다. 탓하자면 그 마음속 할머니한테 해야지. 아, 할머니... 이제 그만 나타나시라고요. 저 일 해야 하는데.


하루는 마음을 바꿔 먹어보기로 했다. 하기 싫은 일들을 계획표에 쭉 써놓고는 이건 재밌는 거다, 이건 정말 즐거운 일들이다-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로 한 거다. 예-전에 tv에서 한참 방영한 최면을 통해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종종 자아가 너무 강하거나 정신력이 강해서 최면에 들지 못한 연예인들이 있었다. 내가 딱 그 꼴이다. 시답잖은 세뇌에 절-대 안 걸려든다. 하기 싫은 일들을 재밌는 일로 생각해 보자고? 아이고, 어림도 없지. 내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데. 내 귀도 스스로 뚫는 사람이라고.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만 재밌는 거라고.


그렇게 머리도 쥐어뜯고 허벅지도 주먹으로 내리치고 큰 숨을 한 이십 번쯤 쉬면서 꾸역꾸역 하기 싫은 일을 끝내고 나면 마음이 탁- 풀리면서 해방감이 찾아온다. ’ 괜찮아-괜찮아-‘하면서도 실은 마음속에 짐이었던 거지. 한 톨의 껄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누운 침대 위에서야 진실로 괜찮음을 느낀다. 하기 싫은 일을 해낸 나, 진짜 괜찮았어.


어제의 일기장은 ’하고 싶은 일은 나를 꿈꾸게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라는 오글거리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맺었다. 그냥 뭐,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멋진 빈털터리가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은 나를 먹고살게 한다.‘ 이런 말인 거지.  하고 싶은 일은 나를 즐거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만 하기 싫은 일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들을 억지로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냥 하기 싫은 일들은 하기 싫은 일로 남겨둘 거다. 오히려 그럼에도 해낸 내가 기특하고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아, 오늘도 괜찮은 사람이 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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