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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udie Jul 15. 2020

여전히 백합을 좋아하는지 궁금해

너에게 쓰는 편지


안녕. 오랜만이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도 참 오랜만인데 갑자기 네가 생각난 이유는 뭘까.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거야. 아니 5학년 때였나. 아무튼 벌써 20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지났네. 살면서 한 번쯤은 널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궁금해했는데 마주치기는커녕 소식 한번 듣기도 어렵네.


살면서 신기하게 어딜 가던 초등학교 동창들을 우연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도 있지만 모두들 네 소식은 모르는 것 같아.


우리가 같은 반이 되기 전에도 아마 우린 서로 누군지는 알고 지냈던 모양이야. 같이 반이 돼서 처음 만나게 되던 날 나는 네가 소위 말하는 '날라리'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멀리했었어. 수학여행을 가던 날 우리가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린 내내 친해지지 못했을 거야.


그날 좋아하는 꽃이 뭐냐는 네 질문에 나는 백합이라고 말했고 너는 그런 나를 비웃으며 자기는 lily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어. 사실 우린 같은 꽃을 좋아했던 건데 너는 그것도 모르고 나보고 무슨 백합 같은 꽃을 좋아하냐며 뭐라 했고 나는 lily가 백합이랑 같은 꽃인데 그것도 모르냐며 반대로 널 놀렸지. 서로 황당해하다가 이내 배를 잡고 웃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나.


처음 색안경을 끼고 본 너는 공부하기 싫어하고 반항기 많은 문제아였는데 가까이서 본 너는 끼 많고 예쁘고 착한 친구였어. 일주일에 세 번씩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나보다 너는 한 번도 배운 적 없다는 피아노를 더 잘 쳤어. 무엇보다도 나는 네가 너무 재밌었어. 너랑 노는 게 너무 즐거워서 거짓말을 하고 학원을 빠지고 너랑 놀기도 했고 세상 몸치인 내가 너한테 춤을 배워서 같이 추고  그 당시에는 흔했던 교환일기라는 것도 썼었어.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만나고 나서 지금도 누군가를 색안경 끼고 보기 전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 마치 인간관계의 무죄 추정의 법칙이랄까. 못된 행동이나 못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안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당시 너와 지내는 나에 대해 우리 엄마에게 걱정스러움을 토로했다는 담임선생님이 참 미웠어. 선생님은 알지도 못하면서. 이 친구가 얼마나 보석 같은 친구인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얼굴도 예쁘고 피아노도 잘 치던 네가 나는 되게 인기 있는 연예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6학년이 돼서 내가 전학을 가고 이사를 가게 되어 멀어졌을 때도 네가 오늘은 녹음실에 가서 노래를 녹음했다며 버디버디로 영상을 보내줬던 것도 생각난다. 그렇게 그냥 서서히 잊고 살다가 널 다시 떠 올린 건 고등학교 때쯤이었을 거야. 그때는 싸이월드가 유명해서 보고 싶었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다 찾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네 흔적은 어디서도 못 찾겠더라. 주변에 물어봐도 아는 친구가 없었어.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네가 날 기억할 거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종종 생각나. 잘 지내니? 어딘가에서도 그때처럼 예쁘게 유쾌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살아가면서 한 번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인 것 같아. 너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일까.

 

나는 요즘 마트리카리아라는 계란 프라이를 닮은 귀여운 꽃을 좋아하게 됐는데 너는 여전히 백합을 좋아하는지 궁금해.

여전히 또 보게 될 날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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