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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Nov 18. 2023

꿈꾸는 소녀의 꿈으로 꿈꾸기

그 꿈이 그 꿈이여?


집안이 어둑어둑해지는 걸로 보아 저녁 무렵인 듯하다. 하늘은 이렇다 할 구름 모양도 없이 짙은 회색 바탕이다.

꽝! 꽝! 부아아앙!!!!! 갑작스럽게 울리는 굉음. 소리가 들리는 주방 창문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가 내다본다. 새까만 전투기 여러 대가 저 멀리에서부터 날아와 지붕 위를 닿을 듯 아슬하게 지나간다. 가까워지는 속도만큼 굉음도 순식간에 커진다. 본능적으로 곁의 세 아이를 끌어 모아 그들의 작은 귀를 내 손과 팔로 황급히 감쌌다.

무장을 한 군인들이 나타나 소총 같은 것을 두어 개씩 집집마다 나누어 주며 다닌다. 전시 상황에 맞게 배급, 이라 해야 할까. 그때 누군가는 집 담벼락에 바짝 붙어 지나가는 게 보인다.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댄 채 급박한 음성으로 상황이 어떻다 저떻다, 연신 교신을 하며 오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밤이 되어 사방이 칠흑처럼 깜깜한데, 창 밖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수가 제법 많다. 그들이 똑같이 입고 있는 노란색의 점퍼는 내게도 익숙한 옷이다. 사무실 내 의자에 일 년 내내 걸쳐 있던, 을지훈련 기간에 반드시 착용해야 할 뿐 아니라, 가끔 걸치기 만만한 여벌옷이기도 한 그 점퍼. 그것은 민방위복이었다. 공무원들이구나.

모래 마대를 쌓아 방호벽을 쌓고 있다. 등불 같은 것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지만 비밀리라 그런지 환히 밝히지 못하는 듯하다. 어둠침침한 속에서 조용하고도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떠오르는 생각. 남편이 아직 집에 안 왔다. 저곳에 있을까. 그게 어디든 그도 비상근무에 들어갔을 것이다.

밖에서는 여전히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우리 머리 위를 쉴 새 없이 지나고 있다.   

이를 꽉 깨물고 더 힘껏 아이들을 끌어당겨 안는다.

이 집에는 나와 세 아이뿐. 내가 지켜야 해. 내가.







눈이 떠졌다.

눈물로 눈가가 절어 있는 느낌. 베개도 축축하게 젖어있다. (침 아니다.) 꿈속에서 분명 운 기억이 없는데, 잠자고 있는 나는 울고 있었다.

아직 어둠 속이다. 암막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 한밤 중이려니 짐작할 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종종 악몽을 꾸다 이렇게 깬다. 그럴 때면 이 끝도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듯하다. 무섭다. 외롭다.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소하려 천천히 황급히 더듬는다. 이불을 고이 덮은 아이와 잠옷이 배 위까지 제쳐진 또 다른 아이가 내 양 옆에서 감지된다. 상체를 조금 일으키고 오른손을 더 뻗으니 조금 더 큰 아이의 팔이 만져진다. 후우. 그제야 세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쌔액쌔액 번갈아 귀에 들어온다. 다시 편안히 등을 대고 눕는다. 꿈속에서, 내가 지켜야 했던 이 아이들이 현실에서 내 곁에서 이렇게 세상모르게 단잠에 빠져있다.

그럼 되었다.








어릴 때 엄마아빠는 내게 '꿈 많은 소녀'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침 식탁에 앉으면 간밤의 내 꿈을 이야기보따리 풀 듯 풀어놓으며 식사를 시작하였다. 종교 없는 우리 집에서 식전기도 격으로 거의 매일 꿈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은 대체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지만, 아침 식사 시간까지는 제법 남아있기도 했다. 꿈을 더듬는 나의 태도는 꽤나 진지했다. 꿈 보따리를 한참 털어놓고 나면, 가만히 듣던 아빠가 마지막에 잊지 않고 덧붙였다.

"거~기 어디,  ~가 한 마리 왔다 갔다 하지 않드냐?"


꿈 맞다.





말 나온 김에 내 개꿈의 역사를 좀 읊어보고자 한다.


<연령대에 따른 변화>

떠올려보면 10대에는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주로 등장했다. 이것저것 별것에 잘도 설렜던 나이였으니.

술 먹느라, 공부하느라, 취업하느라 바빴던 20대에는 기록을 잘 못했다. 꿈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록이 기억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30대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엄마로 살게 된 이후로는 유독 내 아이(들)를 잃는다든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꿈을 꾼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눈물에 절어 깬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 사이 어디께에서 오래 헤맸다.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둠 속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휴직 전 3년여 동안은 직장에서 큰 실수를 하고 일을 망치는 꿈을 그렇게 꾸었다. 그런 날은 다시 잠들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장르에 따른 구분>

장르가 제법 다양하다.


일단 나를 슬프게 하는 악몽.

하늘 아래 같은 악몽이 없다고, 악몽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공포물, 추리물, 스릴러, 어드벤처, 전쟁 등등.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파던 때에는(다작을 하는 작가라 덕질하는 재미가 있다) 추리물을 자주 꾸었는데, 특히 내가 사건의 목격자이면서 용의자로 몰리는 꿈은 무려 십 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다.(언젠가 단편소설로 확장해볼까 싶다)

한편,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 시절에 대하여는 교과서보다 소설로 주로 접해서인지 이입을 깊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전쟁 꿈을 심심찮게 꾼다. 내가 그 시대, 그 상황에 속해 있다거나 현재에서 전쟁이 나는 꿈이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하지만 악몽 중에도 제일 괴로운 것은 역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아이들을 잃는 꿈이다. 너무나 예쁘고 귀하고 행복하여서 역설적으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그러니 오늘 꾼 - 전쟁이 나서 아이들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꿈은 '내 거 중에 최악'이라 하겠다.


물론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꿈이다. 음. 이건 코믹으로 분류하는 게 맞겠다.

공중화장실에서 열어보는 칸칸마다 똥이 그득그득, 차고 넘치는 꿈을 꾼 일이 있다. 부정 탈까 봐 그 누구에게도, 암시롱도 안 하고 로또를 제법 사 왔는데, 하. 결과가 모두 꽝이 아닌가.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에 씩씩거리며 해몽을 찾아봤더니 아 글쎄, 똥을 보기만 해서는 안되고, 손을 푹 담그든 몸에 잔뜩 묻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꿈이라나! 꿈이라는 게 내 맘대로 되어야 말이지?


덕질 기질인 나는 연예인 꿈도 여전히 꾼다. 핑크 니트를 입은 배우 김수현'님'이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드넓은 어깨로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막아 지켜주는 꿈은 지금도 설렌다. 판타지 아니지, 로맨스 장르로 넣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로맨스 장르의 꿈은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한다. (내 속도 모르고.)

그래도 그런 날은 참말로 세상 살 만하다. 어설픈 똥꿈보다 훨씬 유익하다.






뭘 이토록 꿈을 잘 기억하는 걸까.

중1 때부터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사춘기 소녀는 마음속 이야기를 다이어리에 털어냈다. 꿈 보따리 역시 아침 식사 시간 대신 다이어리에 풀었다. 실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꿈을 다이어리에 적는다.

예지몽도 뭣도 아닌,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은 꿈을 이렇게 열심히 기록하게 하는 이유가 뭔지, 사실 나도 뚜렷이는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대자면, '재미'가 아닐까.

기억하기 싫은 꿈도 많다. 너무 질색일 때는 남기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앞뒤가 안 맞고 어처구니없는 꿈이 대부분이지만, 꿈이란 게 원래 그렇다. 비밀스럽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쓰며 킥킥대는 재미가 있었다. 바로 이 재미가 나로 하여금 하찮고 꾸준한 기록 인생을 살게 해 주었다고 믿는다. 더불어 기록 덕에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꿈을 꾸는지, 꿈을 꾸는 바람에 푹 자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힘들기도 하다. 건강을 위하여는 숙면을 취하려는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그 틈새를 공략하는 꿈들에 대하여는 원망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꿈의 기록과 기억이 이 글 한편 발행하는 일생일대의 사건에 기여하고 있지 않은가.

흥미진진하고 슬프고 으슬으슬한 나의 꿈들이, 나아가 더욱 버라이어티 한 작품 세계로 확장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허무맹랑한 미래를 꿈꾸며, 나는 이 쓸데없는 '꿈의 기록'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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