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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Nov 21. 2023

올드머니룩? 올드룩은 안 되겠니

"엄마, 저 이거 입어도 돼요?"


익숙한 티셔츠를 걸치고 생글거린다.

헐렁하다. 누가 봐도 남의 옷 얻어 입은 티가 나는 핏이다.

당연하지, 내 옷이니까. 그리고 나는 언니가 아니고 엄마니까. 아무리 내가 작다 해도 초5 딸과 옷을 공유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 옷을 찾아 걸친 아이는 '아싸, 하나 건졌다'는 듯 흡족한 낯빛이다. 이미 입고 있으면서 입어도 되냐고 묻는 말간 얼굴을 보니, 풉 하고 웃고 말 수밖에 없다.

나는 언니 아니고 엄마니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지만 열두 살 딸아이는 작년 열한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 같다. 만날 보니 못 느끼다 계절이 바뀌어 전전 계절의 옷을 꺼내 입은 태를 볼 때야 화들짝 놀란다.

"어머 세상에. 언제 이렇게 컸어어~"

바지아랫단은 쑥 올라가 있고 소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넉넉하게 샀던 옷이어서 혹여 올해까지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사이즈라 해도, 그래도 아이는 입지 않는다.

질겁을 하고, 손사래를 친다.

"으... 엄마, 이거 애들 옷 같은데."


초5. 옷 사기가 참  애매한 나이다.

품질도 좋고 예쁘기도 해 애용하던 주니어 매장의 옷은 이제 유치하단다. 올 가을에 들어서는 무렵, 시내에 있는 보세 옷가게에 가보고 싶다길래 함께 들렀다.

그래. 나 또한 고등학생 때는 그러한 옷가게를 친구들과 꽤나 들락거렸다. 우리가 즐겨 가던 가게 이름은 '옷데리아'.(작명이 미쳤다.) 가게에 옷이 빽빽하게 많이 걸려있기도 하고, 그다지 고급스럽거나 비싼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좋았다. 만만하게 들락거리며 고르고 대보고 입어보며 놀았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앞두고 한 두 벌 사기도 했지만, 보통은 순전히 재미였다. 그러니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들었든, 시내 나왔을 때 눈여겨봤든, 나도 이제는 그런 곳에서 파는 옷을 고르고 입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사춘기 연령만 낮아졌을 뿐 여전히 솜털이 보송보송 아기 같은 아이에게 성인 사이즈의 옷이 맞을 리 없다. 최소한 중, 고등학생은 되어야 예쁘게 입을 수 있을 옷들이다.

그러나 저러나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니 마음에 드는 것을 자유롭게 입어보도록 둔다. 바지는 이것저것 입어봤지만 결국 맞는 것을 찾지 못했고, 상의는 쪼꼬맣게 나온 티셔츠와 후드 집업을 한 장씩 골라 사 왔다. 아이는 얼굴이 활짝 펴 "엄마, 고맙습니당~" 하며 콧소리를 낸다. 티셔츠는 세탁 서너 번 만에 전체에 보풀이 꽃피듯 피어올랐지만, 더 비싸고 질 좋은 옷보다 좋단다. 그래. 보풀 피는 옷 입어도 예쁜 너니까.

구러라 구래~



일년 전까지의 나에서 유체 이탈이라도 하듯 한 발 떼는 모양이 마치 탈피하는 애벌레를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빨리 큰다고...?'

육아서와 선배들의 조언등으로 틈틈이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고 믿었다. 그러나 실전에서의 아이의 성장은 더 빠르고 여파는 강렬하다. 남편과 내가 요즘 적잖이 당황하는 이유다.

부정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도 못 느끼는 사이 부모 품에서 떠날 준비를 하는 아이가 우리 부부는 못내 서운하긴 하지만, 그만큼 더 이르게 평화가 오지 않겠냐는 바람을 슬쩍 품어본다.




입을 옷이 없다고 입이 댓 발 나온 아이에게 내 옷장에서 하나를 골라 보여주었다.

"입어볼래?"

"오? 이런 게 있었어요?"

저녁 내 입고 있더니 그날로 그 티셔츠는 아이 옷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벌의 옷이 넘어갔다.


며칠 전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다. 작년 겨울 넉넉한 사이즈로 산 패딩을 생각하며 마음 놓고 있었는데. 고집스럽게도 얇은 집업을 입고 나서는 아이에게 크롭 길이의 내 뽀글이 외투를 내려줬다.

"이것 봐요. 꽤 잘 맞는데요?"

잘 맞긴. 헐렁한데. 그러나 저러나 급한 불은 껐다. 아이는 몹시 흡족해하며 제 옷처럼 입고 다녔다.

그 주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겨울 옷 쇼핑에 나섰다. 딸아이 패딩부터 찾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걸음을 재촉하는 내 모습이라니.

그랬다. 그 뽀글이는 휘뚜루마뚜루 나의 최애 외투였다.


새 옷으로 풀착장하고 기분 좋은 그녀 (초고학년 드레스코드 시커먼스)




나를 똑 닮은 딸아이 덕분에 인생을 두 번 사는 듯한 기분을 종종 느낀다.

동시에, 젊었던 내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역시 농사꾼의 자식인 아빠를 직장에서 만나 결혼했다.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는 시부모님의 눈총을 이기며, 직장 다니며 육아와 살림까지 도맡아 한 엄마는, 알뜰한데 감각 있게 알뜰했다.

엄마가 평생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물건을 이것저것 많이 사들이는 편이 아니었는데, 고심해서 고르는 것들은 다 제대로였다. 실용적이면서도 그야말로 멋스러운 것. 엄마는 그의 경제력 한에서 '좋은' 물건을 고를 줄 알았다. 어린 내 눈에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세련된 여자 어른으로 보였다. 시골에 살고 부자도 아니었지만 궁상맞지 않았으며 사치스럽지는 더 않았다.


내가 이십 대 중반에 취업을 했을 때였다. 엄마는 새삼스럽게 옷장 정리를 하며 당신이 젊었을 때 입었거나 쓴 것들을 꺼내셨다. 나이 들며 입고 쓰지 못했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웠던 것들. 그 수가 많지도 않았다. 가방 한 개와 옷가지 서너 벌. 뭐든 쌓아두고 사는 성격도 아닌 엄마가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니 그것들에 대한 애정을 알 만하다.

신기했다. 엄마의 옷들은 내 몸에 맞춤복처럼 잘 맞았다.(내 생에 가장 날씬했던 때였다.) 젊은 우리 엄마는 이렇게 날씬했구나. 사이즈뿐 아니라 완전히 옷이며 가방이며, 요즘말로 취향 저격이다. 유행 타지 않으면서 개성 있는 디자인에 더하여 품질 또한 놀랍다. 지금 산 거라 해도 믿겠다.

들어는 봤나요. 엘칸토 컬렉션.



이제 내가 마흔이 넘었다. 치마는 다시 들어갈(!) 날을 희망하며 모셔놓고 있지만 가방은 지금까지 들고 있다. 닳을 것을 두려워하며 아껴 아껴 든다.

혹시 아는가. 내 딸아이가 십 년 후 엄마의 손을 거친 외할머니의 옷과 가방을 물려받을지.

음. 가만.

내가 물려줄지 빼앗길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그랬다.

"딸은 다 도둑년이라더니~"






올여름부터 유행 중인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식을 줄을 모른다. 생각하면 올드머니룩 자체가 유행과는 거리가 먼 패션 아니겠는가.

아쉽지만 부자가 아니어서 '올드머니룩'이라 하긴 조금 뭣하다. 그러나 얼추 바디사이즈와 취향을 대대손손 물려받는 중인 우리 집 모계 여자들에게 '올드룩(Old Look)'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및 문박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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