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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Mar 01. 2024

해외 한 달 살기 귀국길, 엄마는 걱정 인형이 된다



출발 한 시간을 앞두고 여유 있게 탑승구 앞에 도착했다.

대기 공간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애초에 넉넉하지 않은 벤치들 사이에서 남은 의자 두 칸을 발견해 냈다. 세 아이를 좁혀 앉히고 그 앞 바닥에 배낭과 기내용 짐을 내려놓았다. 가방을 뒤져 바닥에 깔 만한 것을 찾아 꺼냈다. 툭툭 턴 그것을 바닥에 놓고 적당히 가늠해 엉덩이를 맞춰 앉았다.


바닥의 찬 기운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늘의 긴 하루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밤 11시 50분 비행기 출발을 코앞에 두고야.








우선, 종일 짐 싸며 마음 졸였던 수화물 걱정이 끝났다.


한 달 살기를 한 살림의 양은 만만치 않았다.

현지에서 산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어쨌든 야금야금 불어나 있었다. 챙겨 올 수 없는 것들은 '드림'을 해서 덜어냈다. 맛난 간식과 기념품을 더 쟁이기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캐리어에 우리 넷이 낑낑대며 매달리고 있었으니. 누군가는 위에 타서 누르고 다른 누군가는 조심조심 지퍼를 닫고, 정 안 되겠으면 다시 열어 또 뭘 빼거나 자리를 조정하여 재차 닫기를 시도했다.

캐리어 갈무리 작전을 겨우 성공하고 나서는 그러나 새로운 염려가 스몄다. 어떻게 꾸역꾸역 넣기는 했으나 이 무게 괜찮을까. 위탁수화물 무게 한도를 넘지는 않을지. 

"맹구 30kg 정도 나가지? 고새 똥깨가 더 무거워졌으려나?"

아이들과 짐을 번갈아 들어보며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숙소 체크아웃을 마치고 공항까지 그랩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랩 플러스'를 불렀는데도 보통 크기의 승용차가 온 것을 보며 나는 적이 당황했다. 트렁크에 안 들어가면 어떡하지. 짐 때문에 승차를 거부하면 어떡하지.

그랩 기사는 우리 짐을 한 번 보고는 '흠-'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곧 트렁크를 간단히 정리한 후 우리 짐을 차례차례 넣기 시작했다.

"이거 먼저, 아니 저거."

기사는 매우 고심하며, 하지만 신속하게 테트리스를  맞춰나갔다. 마침내 트렁크는 빈틈없이 에누리 없이 들어찼다. 트렁크 뚜껑이 깰꼼하게 닫히는 순간 우리는 그랩기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여덟 개의 열렬한 손짓은 북한 군인 같아 다소 우스꽝스러웠을 것 같다. (한 달간 수도 없이 말했던, 우리는 from south korea 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로 가슴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일말의 싫은 기색 없이 최선을 다해준 그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자, 우리의 이런저런 걱정들을 스스로 털어내는 의식이기도 했다.



공항에서도 다행히, 무게 이슈 없이 무사히 위탁수화물을 보냈다. 그렇게 조금, 마음의 무게를 덜었다.






연착 제 또한 그랬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비행기의 항공사는 최근 연착하는 일이 잦더니, 아예 사나흘 전부터는 밤을 넘겨 새벽 4~5시에 출발하는 일이 매일같이 거듭되었다. 몇 시간을 그것도 아이들을 데리고, 그것도 공항에서, 그것도 밤을 내는 상황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

밤 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늦은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랩 안에서도 수시로 메일을 확인했다. 앞선 며칠간의 지연도 공항 가는 차편 안에서 연락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아 새 메일이 왔다는 표시가 떴다. 발신자는 우리가 탈 항공사였다. 

두구두구.

메일이 안 오고 있는 게 더 찝찝한 이상한 상황이었으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차라리 후련한 심정으로 메일을 열었다.

"기존의 밤 11시 15분에서 지연되어 밤 11시 50분에 출발합니다."


오 지져스!

정시 출발도 아니고 '35분 지연'이, 종교도 없는 내가 신을 찾을 정도로 감사할 일인가. 일이다. 오늘을 넘기지 않고 뜬다. 이만한 게 어디냐. 할렐루야!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옆에 그랩 기사에게도 자랑했다.

이후로 더 이상의 번복이나 추가 지연 공지는 없었다.

출발 시간이 진하게 찍힌 보딩패스를 받아 들고 '정말이지?' 재차 재차 확인했다.





그렇게, 그대로 탑승구 앞에 와 있다.

맞은 편의 통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비행기가 이렇게 든든할  없다. 

이제 저기 실려가기만 하면 된다.

내 선에서는 끝났다.








그때.

갑자기 명치가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종일 바짝 긴장된 마음이 상온 해동되듯 조금씩 풀어지다 완전히 녹아버린 모양이다. 종일 짊어졌던 곰 같은 커다란 걱정 인형이, 내가 여기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 비로소 어깨를 타고 내려앉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터진 눈물이 좀처럼 그칠 줄 모른다.

세 아이는 가만히 바라보거나 엄마를 만져주었다. 동요하지 않는 이 어린이들을 보며 '얘네가 언제 이리 의젓해진거지'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보다 더 아이처럼 연신 꺽꺽거렸다.


"너희들이 오늘 내내 말레이시아에 작별 인사 했잖아. 사실 엄마는 감흥이 없었어. 아니, 느낄 겨를이 없었던 거 같아(꺽꺽). 무사히 공항에 올 수 있을까. 실수하지 않고 비행기 탈 수 있을까. 걱정했거든(꺽꺽).

그런데, 지금 밀려와. 밀물처럼."

"...... 엄마 있지. 벌써 그리워."

엉엉.


오늘 하루 바짝 얼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몸살의 검은 기운이 어른거리는 걸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터진 울음은 비단 오늘 것이 용해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와 본 나라에서 적응하고 아이 셋을 챙기며 생활하는 달의 기간 동안 어쩌면 나는 내내 긴장 상태였나 보았다.


그럼에도 엉엉 울만큼 '벌써 그리운' 마음이라니.

무엇이 나를, 우리를 떠나기 아쉽게 만든 걸까. 돌아보고 싶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느라, 안전하느라(!), 지금 순간을 즐기느라, 기절하듯 잠들거나 잠들지 못한 날들을 보냈다.


그리하여 이제, 글로 찬찬히 음미하며 마음껏 그리워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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