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터가 생긴다
이제 만 나이를 쓴다고 하지만 아직 몇 년생인지, 그래서 한국나이로는 몇 살인지를 묻는다.
나는 한국나이로 29살이다. 그마저도 1달 반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봄기운이 돌고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있다.
20대는 영원하지 않다는 말
당연히 물리적으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나 보다.
대기업에서 대리를 다는 친구도 있고, 결혼하는 친구들도 많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늦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늦은 거 아닐까?" 하며 고민하는 친구에게 "지금이 제일 젊으니까 도전해 봐!"라고 응원하던 나였는데, 막상 내가 커리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니 솔직히 쫄린다.
늦었을까, 나 너무 나이가 많나? 생각을 하면서도 29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힘이 있다.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다.
29살이 꼭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 방황할 수 있는 기회.
그냥 내 마음속에 짐짝처럼 있는 것들을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안다. 30살, 31살이 되어도 예상치 못한 변수는 발생할 것이고, 나는 그 변수들에 맞춰 어찌어찌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20대의 마지막을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면서 "해볼걸..." 하며 후회하지 않고 싶다.
성취하고 싶은 것들을 써봤는데, 이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진정 이루고 싶은 게 맞는지, 진짜 성취가 아닌, 대충 합리화하며 형식적으로 행동하진 않을지 고민이 되었다.
이런 나를 생각하며,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존경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볼 때면 "뭘 그렇게까지 해?" 하는 생각과 함께 압도되었다.
내 생각은 왜 "그렇게까지"의 수준에 닿지 못할까?
첫 번째는 종결욕구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주욱 적혀있는 할 일들을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다. 나의 커리어와 발전을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얼른 하고 해치워버리고 싶어 한다. 특히 머리 쓰지 않고 얼른. 후딱. 알맹이 없는 실천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편하려고 이메일을 보내고 싶지만,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의미와 의도가 잘 전달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편하며, 어떻게 해야 감동을 받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는 실패를 견디고 새롭게 시도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섭다. 손이 벌벌 떨린다. 쪽팔리고, 비판에 마음이 다칠 때도 있다.
하지만 좀 실패하면 어떤가, 꾸중을 들으면 어떤가, 다시 제대로 하면 되는 거다. 대충 해치우는 식이 아닌, 스스로 납득이 갈 만큼 했다면 그 경험을 디벨롭하여 다시 하면 된다.
후회하지 않게 다 해보자.
글도 써보고, 인터뷰도 해보고, 구직활동도 해보고, 나의 역량과 준비를 어필도 해보고 다 해보자.
침대에 누워 벌벌 떨면 아무것도 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나를 내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