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을 읽으며, 글쓰기로 스스로 토닥이고 위로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나는 도대체 왜 글쓰기에 뭉클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학창 시절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칭찬하던 특기는 글쓰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다되어가는 내게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자,
"너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한 줌의 지푸라기다.
글쓰기는 고등학교 문학시간 과제로 쓰던 독후감을 통해 체감했던 속 시원한 해소창구였다.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글을 쓰면 머리에 안개가 걷혔다. 머릿속을 휩쓰는 거대한 먹구름이 써보니 생각보다 별 것 아닌 마음이었음을 발견하곤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나는 글이 나의 도구라 믿는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세상에 가치를 내고 싶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글쓰기에서 나는 어떤 자긍심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글로써 세상에 가치를 전달하겠다'는 게 스스로 느끼기에도 꽤나 거창했고, 알 수 없는 오글거림이 나를 쭈뼛거리게 했다. 부끄러워졌고 내 진심은 꽉 막힌 좁은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일흔 즈음에 감사하고 싶은 것'이란 에세이 글을 만났다.
박막례라는 ‘인간’의 모든 아름다움을 손녀 김유라는 발견하고 조명한다. 할머니에겐 긍지가 있고 손녀는 그 긍지를 인식한다. (…) 강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고, 그 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제 몸으로 삶을 똑바로 밀고 나간다면, 그런데 그들에게 언어가 없다면, 그 삶을 똑바로 적어낼 의무는 아마도 먹물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가슴 벅찬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결국 되고 싶은 것은 '그 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찾아내는 사람', '그 삶을 적어내는 사람'이다.
꾸준히 좋아했던 스터디언(상상스퀘어)의 동기부여 콘텐츠들, 롱블랙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이야기 등을 좋아했던 이유는 글로써 사람들에게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몸소 보여줄게!" 하는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저 메시지가 내가 글에 부여하는 가치다.
글로 가치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글쓰기 책을 읽고, 콘텐츠 책을 최소 20 권은 읽어볼 것이다. 20권으로 작은 성공을 해볼 것이다. 20권을 읽은 나는 보석 같은 이야기를 독자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꾸준히 쓸 것이다.
부지런히 찾아 읽고 써서 공유하겠다는 말을 길게도 써봤다.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적인 내용이 아닌, 글을 쓰는 이유와 글에서 찾는 치유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