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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Jan 26. 2024

묘한 이야기

2. 밍크 일가와 보낸 한 철



 꽃샘을 앞둔 올해 2월이다. 인적이 뜸한 우리 집에 길고양이가 나타났다. 어린 암컷이다. 잿빛 바탕에 흰색이 섞여 있다. 하도 예뻐 미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루에 두 차례 찾아왔다. 담장에 난 구멍이 출입구이다. 일주일간 먹이를 놓아주며 끈질기게 접근했다. 하루에 한 뼘씩 거리를 좁혀가며 50센티로 좁히고, 다시 30센티까지 좁혀 일주일 만에 한 뼘 안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미녀보다 큰 암컷이 등장했다. 삼색의 털을 보유한 암컷은 밍크코트처럼 털이 부드럽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밍크라고 불렀다. 밍크는 세 번만의 접촉으로 나한테 대시했다. 우리는 옛날에 알았던 친구처럼 쉽게 거리를 좁혔다. 밍크는 나를 만난 지 얼마 안 지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나한테 접근하기 전, 우리 집에 상주하다시피  들락거리던 수컷 치즈와 가까이 지내는 장면이 몇 차례 목격되기는 했다. 내가 안 보는 틈에 벌써 눈 맞아 거사를 치른 것으로 보였다. 밍크는 임신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몸 관리를 철저히 했다. 성별이 다른 치즈한테는 거리를 두고, 성별이 같은 미녀가 대들어도 싸움을 피하는 식으로 몸을 사렸다. 

 치즈에게는 본래의 짝인 얼룩이가 있었다. 얼룩이는 가끔 나타나 밍크와 미녀를 내쫓으려고 했다. 얼룩이가 우리 집 주변을 자신의 영역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간혹 내가 개입을 해보지만, 종일 지켜볼 수 없어 밍크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얼룩이가 하도 괴롭히자 밍크는 나름의 방책을 세웠다. 우리 집 기와지붕으로 피신했다. 지붕과 처마 틈을 다락으로 삼아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한낮에는 지붕으로 올라가 숨어 지내다가, 내가 퇴근하면 지붕에서 내려오는 전략이다. 밍크는 임신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나타나면 지붕에서 서슴없이 뛰어내려 나를 놀라게 했다. 낙태가 우려되어 뛰어내리지 말라고 만류해도 막무가내였다. 뛰어내리고 싶으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지붕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곤 했다. 

 한번은 귀가하니 뒤뜰 화분이 박살났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하고 CCTV를 돌려봤다. 화면에 고양이끼리 난투극 장면이 떠오른다. 낮잠 자고 있는 미녀에게 얼룩이가 몰래 다가와 물어 쫓으려고 한다. 미녀는 잠에서 깨어나 도망치려고 하지만 더 빠른 얼룩이한테 몇 발자국 못 가 잡혀 물리고 있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나타난 밍크가 얼룩이를 제지하고 나선다. 갑자기 나타난 밍크와 대치하게 된 얼룩이가 잠깐 엉거주춤한다. 그 틈에 미녀는 도망가고, 동시에 할 일을 마친 밍크가 그 자리를 피하면서 화분을 건드린다. 임신후 그렇게도 몸을 사리던 밍크는 막상 미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얼룩이한테 물릴 위험을 무릅쓰고 도운 장면이었다. 길고양이에게 의협심이라니 뜻밖이었다.      


 밍크의 출산이 임박한 것으로 추정된 4월 중순경이다. 밍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나를 올려다보며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 내가 담장 안으로 데려오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문득 나를 유도하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따라갈 테니 어디 한번 가보라고 하자, 밍크는 그제야 나를 대동한 채 앞장섰다. 몇 걸음 가다가 내가 따라오는가 싶으면 앞서 가는 식으로 한 300여 미터를 갔다. 처음 보는 숲에 다다랐다. 밍크는 나를 앞에 두고는 숲 속에 난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유사시에 대비해 나한테 자기 산실을 알려준 것이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왔다. 불러도 반응이 없다. 나는 지쳐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저녁 8시경 밍크가 다시 나타났다. 밍크의 돌출된 배 모양이 역력하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징후다. 밍크 자신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눈치다. 나도 고양이 산파역이 처음인지라 당황스럽기만 했다. 밤이 깊어 가는데 더는 방도가 없어 졸린 나머지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니 밍크가 안 보인다. CCTV를 확인해봤다. 밍크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나를 찾은 흔적이 고스란히 화면에 나타난다. 아뿔싸! 이를 어쩐다. 

 매일, 아침을 먹기 위해 현관 앞에 대기하던 밍크가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에 출산한 것으로 보였다. 다음날 아침에도 안 나타나 밍크가 알려준 그 숲으로 찾아가 밍크를 불러도 반응이 없다. 일단 사료와 물을 입구에 놓고 왔다. 그 다음날 다시 찾아가 확인해보니 사료와 물이 줄었다. 밍크가 살아 있다는 청신호다. 삼일 째 되는 날 밍크가 나타났다. 배가 홀쭉하다. 출산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밍크는 사료만 먹고 곧장 바쁜 걸음으로 돌아갔다. 4일째 되는 날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다. 밍크 일가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난 밍크, 갑자기 지붕으로 올라가 무언가를 찾는 눈치다. 내려왔다가 다시 지붕으로 올라가 수색했다. 평소에 밍크가 출산하면 써먹을까, 하고 점찍어둔 창고 문을 열고 유도를 했다. 밍크는 주저 없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 구석을 뒤지더니 마음에 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혹시나 밍크가 새끼를 물고 올지 몰라 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고를 다 정리하기도 전에 어느새 밍크가 새끼 한 마리를 물고 나타났다. 밍크는 물고 온 새끼를 구석진 곳으로 물고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다. 새끼를 안심시킨 밍크가 창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평소에 말이 없던 순둥이 밍크가 갑자기 내 얼굴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처음 듣는 억양으로 야옹! 하며 몇 차례 외쳤다. 나 말이야당신 믿고 새끼를 데려 오는 거야잘 지켜잘못되면 당신 죽고 나 죽을 거야알었어?‘ 라고 들렸다. 나는 알았어 라고 알렸다. 밍크는 다시 새끼를 물고 왔다. 역시나 새끼를 창고 안으로 물고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안심을 시키고는 창고 밖으로 나와 다시 나를 향해 잘 지키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고 새끼를 데리러 갔다. 세 마리 째부터는 밍크가 많이 지쳐 있고 위험해 보여 내가 직접 따라 다녔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7마리를 물고 왔다. 밍크는 7마리를 데려다 놓은 다음 다시 한 번 갔다 왔다. 무언가 뒷정리를 하고 온 것으로 보였다. 새끼 7마리 공수 작전은 장장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출산 직전까지 밍크는 나를 보면 어리광이나 부리며 스킨십을 시도하곤 했다. 그런데 출산 후 밍크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혼자 숲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7마리를 출산한 그 사이, 밍크는 전사가 다 되었다.      


 창고에 들어온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밍크 일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놀라서 창고를 다 뒤졌다. 맨 아래 구석진 곳에 있던 밍크는, 어느 사이 새끼를 맨 위 선반으로 옮겼다. 아주 작은 상자 안이다. 밧줄을 담아 둔 종이 상자인데, 새끼 7마리를 상자 안에 담고 나니 밍크 몸의 절반이 밖으로 나와 있다. 우천 때문에 바닥이 차가우니까 윗칸으로 옮긴 거다. 밍크는 24시간 내내 새끼 곁을 지키며 호위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번갈아 가며 혀로 ‘그루밍(Grooming)’을 했다. 밍크는 새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루밍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그루밍은 고양이가 손과 혀로 털 등을 손질하는 행위라고 한다. 너무 핥아서 닳아빠질 지경이다. 그루밍을 하는 순간이나, 젖을 먹이는 내내 밍크는 ‘골골송’을 달고 있다. 골골송은 행복할 때 고양이가 목젖으로 ‘골골골’ 소리를 내는 현상이다. 사람으로 치면 흥얼거림, 감탄사, 콧노래, 만면에 짓는 웃음 같은 것이다. 

 새끼들이 하루하루 자람에 따라 조금씩 큰 상자로 옮겨주었다. 그때마다 밍크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어야 했다. 몇 주 지나자 새끼들은 비틀거리며 조금씩 기어 다니더니, 비틀걸음을 하다가는, 어느 사이 걷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외부로 통하는 경계에 담장용 상자를 만들어 주었는데 높이를 더 올려야 했다. 

 어느 새벽 밍크는 새를 물고 나타났다. 그것도 살아 있는 새다. ‘물까치’라 불리는 제법 큰 새다. 날아다니는 새를 맨발로 잡아온 거였다. 나는 새도 잡아올 줄 아는 생계형 투사로 밍크가 변했다. 산 채로 포획한 새를 입에 물고 온 밍크의 모습은 인디언의 전사처럼 위풍당당했다. 밍크는 물고 온 새를 새끼들 앞에 내려놓고는 지켜봤다. 새는 상처를 입었으나 목숨이 붙어 파닥거리며 도망가려고 했다. 아직 너무 어린 새끼들은 새한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데, 그중 수컷 새끼 ‘단추’가 용감하게 달라붙어 제 몸보다 더 큰 새를 입으로 물었다. 상처를 입고 피가 떨어지는 새가 불쌍하고 보기 흉해 치워버리려고 밍크가 한눈을 파는 사이 얼른 새를 집어 들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밍크가 알아채고는 잽싸게 달려들어 내 손에서 새를 낚아챘다. 놓아주지 않으면 내 손이라도 물 기세였다. 나는 그 새를 흉물로 보았지만 밍크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밍크에게 먹잇감은 아무리 친한 나한테도 성역이었다. 내가 함부로 나서 관여할 영역이 아닌 거였다. 나중에 창고에 들어가 보니 새는 보이지 않고 깃털만 몇 개 날렸다. 밍크가 그 특식을 먹어치운 것이다. 


 새끼들이 어미의 젖만 물고 살아 밍크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이유식 같은 사료를 주문해 넣어주었다. 새끼들이 오줌을 싼 흔적은 신문지가 젖은 걸로 알 수 있는데, 똥 싼 흔적은 안 보였다. 밍크는 새끼들이 용변을 볼라치면 순식간에 알아채고 변을 먹어치운 다음 혀로 엉덩이를 핥아 닦아주었다. 새끼들이 용변을 봐도 밍크의 그루밍으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신문지만 한 번씩 갈아주면 되고, 청소 문제는 어미인 밍크가 스스로 해결했다. 밍크의 혀는 용례가 다양했다. 사람의 손과 발로는 하기 힘든 일까지 혀로 척척 해냈다. 밍크의 혀는 사람으로 치면 의사소통을 위한 필기구가 되거나, 삽과 칼, 붓 같은 무기와 도구가 되기도 했다. 밍크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모래 담은 상자를 넣어 주자, 새끼들은 하나같이 상자 안에 들어가 소변을 봤다. 맨바닥에 소변을 보는 일은 없었다. 일곱 마리 중 오줌싸개가 없다는 말이다. 어린 새끼들이 어미 배속에서 배우고 나온 것처럼 스스로 소변을 가렸다. 

 밍크는 새끼들을 단속하고 잠이 들면 새벽에 잠깐씩 외출하는데, 그 사이 침입자가 있을까봐 밍크만 드나들 수 있는 틈을 남겨두고 창고 문을 닫아두었다. 하루는 다른 야생 동물 흔적이 엿보여 늦은 밤 시간에 창고 문을 아예 새벽까지 닫아둔 적 있다. 그런데 새벽에 창고 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밍크 엉덩이에 똥이 나올락말락 달라붙은 상태였다. 밍크는 자기 똥을 입으로 핥으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고양이의 허리는 근육으로 조직되어 목을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다.- 밍크는 창고 문이 닫혀 나올 수 없자, 나오려는 똥을 참고 새벽까지 버틴 거였다. 사람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사람인 내가 동물적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청결의 경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창고에 입주한 지 50일 만에 밍크 일가를 밖으로 옮겼다. 초여름으로 진입하며 더위가 우려되어서였다. 빠른 성장으로 새끼들을 창고 안에 두는 데는 한계에 봉착했다. 나무로 된 평상 주변을 막아 거처로 만들어 주었다. 유사시에 지켜보는데 용이한 안방 창문 너머를 위치로 잡았다. 창고가 세상의 전부인 줄로 알고 있던 새끼들은 갑자기 펼쳐진 바깥 세상에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자꾸 평상 밑으로 들어가 숨으려고 했다. 얼마 지나자 평상 위로 올라와 뛰어다니며 좋아라 했다. 밍크도 안심하고 흡족해 하는 표정이었다. 

 사료 먹는 양이 점차 늘어갔다. 젖과 사료의 비율이 거의 절반씩이다. 모래상자에서 스스로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소변을 볼 때는 암수 구별 없이 엉덩이를 바닥 쪽으로 낮추고 본다. 그런데 대변을 볼 때는 시위를 당기듯 등허리를 활처럼 구부린 다음 똥이 나오는 순간, 앞쪽 다리 하나를 들고 있다. 방아쇠를 당겨 똥을 발사하는 격이다. 대소변을 본 다음에는 반드시 앞발로 주변의 모래를 긁어 대소변을 덮는. 자기 흔적을 은폐하는 거다. 적에게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는 야생의 본능이라고 할까. 

 날이 갈수록 새끼들은 점프 실력이 늘어갔다. 평상과 마당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주었으나, 나중에는 그 높은 담장을 자유롭게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기존의 높이로는 감당이 안 된다. 담장을 다시 높여야 했다. 그래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담장을 없애고 마당에서 뛰어놀도록 전면 개방했다. 새끼들은 온 세상을 만난 듯 마당과 뒤뜰을 구석구석 뒤지고 뛰어다녔다. 젖보다 사료 먹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새끼들 소화를 위해 물을 주었다. 처음에는 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을 발로 차보고 입술로 살짝 대보고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새끼마다 물에 접근하는 시점이 다르고 반응하는 태도도 달랐다. 물을 몇 번 혀로 맛보더니 물맛을 알게 되자, 대소변을 보고 나면 물을 먹는 식으로 자체적인 매뉴얼이 정해졌다. 


 새끼들이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m 남짓 작은 나무를 오르내리더니 얼마 지나 5m 높이의 감나무 위까지 자유롭게 오르내렸다. 고소공포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새끼들도 소리에는 민감했다. 풀 깎는 예초기 소리는 물론 먼 곳에서 들리는 폭죽 소리, 중장비 엔진 소리, 하늘 높이 울리는 천둥소리에도 쏜살 같이 흩어져 구멍을 찾아 숨었다. 심지어는 사람의 재채기 소리나 방구 소리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귀를 쫑긋 새우거나 도망치려고 했다. 청각이 유달리 발달했다는 증거다. 새끼들은 자기 동기들과 어미를 제외하고는 모든 타자를 사물로 인식했다. 무조건 자기 동기들이나 어미가 아니면 경계했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슬며시 만져본다. 냄새를 맡아보고 뱅뱅 돌며 타자인 사물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때까지 수색하는 탐구 본능을 가졌다. 새끼들은 어미인 밍크가 하는 행동을 모두 따라서 했다.

 밍크는 어미로서 보호 본능이 뛰어났다. 멀리서 혼자 놀다가도 새끼들 신음 소리가 나면 곧바로 달려왔다. 거의 날아오는 속도였다. 한번은 옆집에서 키우는 제법 큰 강아지가 길을 잃고 우리 집에 잠깐 들어온 적 있다. 밍크는 그것을 무단침입으로 간주했다. 평소 순하던 밍크는 외부의 침입자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했다. 모든 발톱을 세우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강아지는 꼼짝을 못하고 당했다. 저러다가 강아지가 물려 죽을까 싶어 밍크를 뜯어 말리자, 심지어는 나에 대해서도 공격을 하려고 했다. 상대의 적과 전쟁을 치르는 밍크에게 제3자의 섣부른 개입이었고, 강아지를 두둔하는 것으로 오인한 나머지 순간적이지만 나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처음 보는 밍크의 흥분한 모습이었다.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공세적 본능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밍크는 새끼들을 데리고 뒷마당에서 앞마당으로 옮겨보기도 하고, 집 안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더니 어느 날 밤부터 집 밖으로 외출을 시도했다. 앞마당 문을 통해 큰길 쪽으로 새끼들을 유도했다. 옆집과의 거리가 약 50여 미터인데, 밤마다 그 쪽으로 외출했다. 옆집은 더 외진 곳이고 산 쪽에 가깝다. 며칠 후 새벽에 일어나 보니 고양이 집에 밍크 일가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옆집 쪽으로 가 봤더니 동굴 같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꿈쩍 안 했다.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옆집 동굴은 비를 피할 순 있어도, 비 오는 날은 먹이를 확보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우리 집 뒷마당보다 옆집 동굴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거였다. 언젠가는 닥칠 새끼들의 분리를 위해 야생의 단독 생활을 견습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동안 새끼들을 보살피고 사료를 주었다고 해도 밍크는 냉정했다. 선택의 과정에서 사람의 인정 같은 건 고려 요소가 안 되었다. 나는 고양이에 관한 한 문외한이기 때문에 밍크 일가의 그런 행동이 몹시 서운했다. 그것들의 선택과 행동을 나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내가 전적으로 길고양이를 오독한 것이다. 사실 길고양이에게 나는, 통과의례인 플랫폼이었다.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나를 선택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길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야생의 길고양이를 마치 개 같은 가축처럼 오인한 거였다.

 공교롭게도 밍크 일가가 떠난 지 며칠 지나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우려대로 밍크가 새끼들을 대동하고 비를 맞은 채 우리 집으로 다시 왔다. 물론 나를 보러 온 게 아니다. 순전히 밥 때문이었다. 그렇게 밍크는 우리 집에 잠깐 머물다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가고, 필요하면 다시 우리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새끼들에게 우리 집을 영역으로 물려주고 밍크 혼자 다른 영역으로 옮겨갔다. 그때쯤은 나도 어느 정도 예견을 하였기 때문에 밍크와의 이별에 대해 둔감해졌다.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후로 밍크는 한 두 번인가 잠깐 얼굴을 비쳤으나 새끼들과 어미는 인간들끼리의 상봉과는 달리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서로 단독자로서 새출발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 본능 때문으로 보였다. 새끼들 중 1마리는 장맛비 속에서 행불되고, 4마리는 전원주택 단지로 옮겨갔다. 나머지 2마리만 우리 집에 남아 있다. 여름이와 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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