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재형 Jan 26. 2024

묘한 이야기

3. 맺는 말


 내가 만나 본 고양이는 소리에 매우 민감했다. 선의의 소리에도 경계를 하며 은신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고양이는 민첩했다. 순간적으로 반응하고 순간적으로 행동했다. 반응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사람인 내가 이해하려고 할 때 벌써 고양이는 행동으로 옮긴 뒤다. 고양이는 동굴 같은 공간이나 구멍을 선호했다.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새끼들이 안 보였다. 한참 뒤지다가 파렛트 속 구멍에서 나오는 새끼를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주먹 크기에 불과한 파렛트 틈의 비좁은 구멍에 들어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새끼들 행동은 내가 예상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었다. 육상을 달리는 것 말고 더 뻗어나갈 수 없는 나는 평면적인 사고에 고착되어 있다. 평지에서 허공으로 확장된 고양이는 나무를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경계와 경계 사이를 넘나든다. 공감각적으로 궁리하고 입체적으로 행동하는 거다. 

 고양이는 모든 걸 놀이로 파악했다. 내가 꽃밭에 물을 주면, 내가 물을 가지고 논다고 여겼다. 내가 삽질을 하면, 내가 삽하고 논다고 여겼다. 내가 돌을 나르면, 돌하고 논다고 여겼다. 내가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 빗자루를 가지고 논다고 여겼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을 신기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나하고 놀고 싶은 아이처럼 졸졸졸 따라 다니며 내가 하는 작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봤다. 

     

 고양이를 만나러 갈 때는 자본주의 사전을 벗어던지고 인간 위주의 헌법을 태워버려야 한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고양이와 우리 어깨 높이는 같다. 고양이의 길을 좇아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가 잃어버린 본래의 경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도시에서 앓게 된 외로움이나 우울은 고양이와 오래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고양이가 좇는 자연을 같이 응시하면, 고양이의 넘치는 명랑과 고양이의 빈 주머니에 내가 흘린 땀보다 더 가진 잉여분을 털어 넣는다면, 도시 사회에서 발병한 우리의 고질병에도 차도가 있을 것이다. 

 고양이와 우리가 한 식구로 사는데 걸림돌은 무엇인가. 사람인 우리가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있는 고정관념이다. 우리만이 영장 동물이고 고양이보다 우등하다는 관념의 경화가 문제다. 고양이와 우리가 같이 사는 데 디딤돌은 무엇인가. 우리가 단지 지구의 수많은 동물 중 하나의 종이라고 생각을 낮추는 거다. 고양이처럼 지구촌을 빌려 잠깐 머물다 돌아가는 한 종에 불과할 뿐이라 인정하고, 고양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결심 하나면 된다.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고양이 문법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사람아, 자연에서 온 것처럼 어서 자연으로 돌아오라, 더 늦기 전에.”      

작가의 이전글 묘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