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힘을 뺀 채 몸 전체가 물속에 잠긴 순간을 잠깐 상상해 보시면 좋겠다. 물 공포증을 가진 분들은 손발이 얼어붙는 기분일 것이고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리면서 고요하고 평온할 것이라 짐작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물속을 떠올리면 살아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느낌은 상상이 아니라 감각이다. 나는 프리다이버다.
저 요즘 프리다이빙 배우고 있어요
저 요즘 프리다이빙 배우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할 때면 대부분의 경우에 부연설명을 붙여야 한다. 서핑과 함께 대중화가 되고 있는 대표 워터 스포츠 중 하나지만 아직도 프리다이빙을 들어 본 사람이 아직 열명 중 하나가 채 되지 않는다. 수중에서 호흡을 하지 않고 활동하는 것을 프리다이빙이라고 부르며 호흡을 하기 위해 공기통을 가지고 다이빙을 하는 스쿠버와는 다른 스포츠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조개를 찾지 않고 물속에 있는 것 자체를 즐기는 해녀라는 표현일 것이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접한 것은 약 오 년 전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파란 물속에 정주하고 있는 프리다이버의 사진을 보고 나는 무소음의 평화를 상상하며 체험 수업을 덜컥 신청했었다. 하지만 물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수압을 견디고 숨을 참아야 하는 과정이었다. 폐의 압력, 숨 쉬고 싶다는 충동, 심장 소리를 느끼는 그 어느 때 보다 펄떡펄떡 살아 있는 시간을 경험함에 놀라 당시에는 체험만으로 그쳤었다.
수년간 잊고 있었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재작년 여름이었다. 처음 다이빙을 체험했던 올림픽 공원 수영장을 지나치던 중이었다. 문득 내가 프리다이빙을 계속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살아있는 그 느낌이 생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쳤다. 매일 하고 있는 일이 살아있는 것이어야 할 텐데 살아있는 느낌이 생경하다니. 그 날 나는 삶의 감각을 복구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10m 정도를 잠수할 수 있는 초급 다이버가 되었다. 과정이 마냥 쉬웠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대부분의 초심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난제인 귓속의 공기압력과 외부 수압의 평형을 맞추는 부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귀가 먹먹해지는 이유는 주변 기압이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인데 프리다이빙을 할 때는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 기압씩 올라가서 수심이 깊어질수록 압력 평형을 맞추어 주는 활동을 해야 한다. 보통은 복압을 활용하거나 기도를 움직여서 이관(耳管)의 압력을 외부와 맞추는데 자연스럽게 기도를 움직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편안하다고 느꼈던 건
수심이 편안하다고 느꼈던 건 여덟 번째 연습 시간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26미터 수심을 가진 K26 잠수풀에서는 물속에 음악을 틀어준다. K26에 방문한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들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서도 편안하다고 느낀 순간 음악소리와 물소리, 스쿠버 다이빙 장비에서 나오는 공기방울 소리들이 스며들어왔다. 즐거웠다. 작은 성취감과 자유롭다는 느낌이 소리와 함께 스며들어 오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물속이 편안하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 지금도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이 있고 가끔은 나도 모르는 긴장감에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나오는 날이 있다. 그래도 이제는 그곳에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몸에 힘을 빼고 귀를 기울이면 음악이 들린다는 것을 안다.
숨이 고픈 순간에도 사람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듣는 순간은 다이빙과 삶의 감각이 가장 닮아 있는 순간이다. 삶이 나를 압도하거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감정에 휘둘리는 날에는 다이빙을 하기 직전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숨을 골라 본다. 그리고 내가 듣지 못한 음악에 귀 기울이며 긴장을 풀어놓는다. 잊지 말자. 숨이 고픈 순간에도 사람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