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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연 Jenny Oct 29. 2021

사랑의 연대기

가족의 다른 이름

    '아빠?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러 갔지.' 주 6일제에 야근은 필수였던 1990년대. 아빠를 찾는 유치원생에게 엄마가 해 준 이야기다. 엄마의 이 대답 이후로는 아빠가 출근하신 이후에 아빠를 찾지 않았던 것 같다. 함께 보낼 수 없는 많은 시간 동안에도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족 안에 아빠의 빈자리 대신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준 엄마는 현명했다. 내가 아빠에게 '아빠는 진짜 엄마한테 잘 하셔야 해요.'라고 종종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 엄마가 다른 대답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신 아빠는 억울하고 나는 마냥 서운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올 해 환갑을 맞으셨다. 동년배의 많은 분들이 은퇴를 맞이하고 있다. 뉴스를 보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가장들에게 가정의 규칙은 낯설기만 하다고 한다. 어떤 어린이가 귀가했을 때 아빠 혼자 집에 있으면 '아, 아무도 없잖아.'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아마도 아이의 마음 속에 아빠의 자리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은 엄마지만 아빠의 자리를 채운 것은 아빠였다. 벌써 10년 정도 전의 어느 날, 아빠는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가 가정을 돌보기 위해 해 온 많은 일들을 더욱 존중하시게 된 것 같다. 그 후로 주말마다 설거지, 청소를 담당하기 시작하셨다.



    이제 아버지는 사무실의 비품 뿐만 아니라 휴지, 손톱깍이 같은 사소한 물건들이 집안 어디에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이런 아버지께 가정의 규칙이 언제라도 낯설 리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친구에게 부모님들 간에 가사노동의 분배와 관련해서 많이 싸우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집이라고 해서 가사노동이 평등한 수준으로 재분배 된 것은 아니라서 나도 몇 마디 보탰다. 하지만 대화 끝에 '그래도 우리 아빠는 사랑받을 만한 분이니까 괜찮아.'라고 했더니 친구가 대단하다고 했다. 생략된 말을 추측해 보면 아마 '오랜 가족 관계에도 사랑이란 단어를 잊지 않다니 대단하다' 였을 것 같다.



    남편의 빈 자리를 사랑으로 해석한 여자와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를 사랑하리라 마음먹은 남자의 모습이 나에게 사랑을 가르쳤다. 이 사랑의 연대기가 있는 내 가족을 오늘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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