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비 Sep 01. 2020

빨래방에서 찾은 행복의 정의

[단편에세이]


 겨울에 쓰던 두꺼운 토퍼를 빨기 귀찮다는 본심을 숨겨놓고 푹신하다는 명분으로 한여름까지 계속 쓰다가 인제야 정리했다. 엄청난 부피의 토퍼를 빨기 위해 동네에 있는 작은 코인 빨래방에 갔다. 집에서 쓰는 세탁기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크기라서 30kg의 초대형 세탁기가 있는 빨래방만이 처치 곤란한 이놈을 받아주었다.



코로나로 카페 나들이도 가기 어려워진 요즘, '커피 한잔 곁들인 독서'라는 소소한 주말의 행복을 누릴 수 없어 침울해졌었다. 아무도 없는 이 빨래방에서 고요히 백색소음 같은 세탁기의 모터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것도 엄청난 행복이 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더불어 건의사항에 붙어있는 수백 개의 포스트잇은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친절한 사장님의 인심을 느끼며 쾌적한 공간에서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꼈다.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크고 다양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지 신기한 따름이었다.



빨래방에 붙어있던 포스트잇들



사장님, 저희 새벽에 공부했었던 학생들입니다. 밤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여기서 공부를 했습니다.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죄송해요. 사장님이 뒤늦게 알게 되시고 먼저 저희에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만나 뵙고 감사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섬유유연제 뽑아놓고 깜빡해서 못 넣었어요ㅠ_ㅠ 아무나 쓰세요~ 즐거운 빨래~^^
고객님들의 이쁘고 아름다운 마음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건강합시다. 행복합시다. 모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길래 이리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변동적일까? 사람들은 실체 없는 행복의 실체를 잡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이루면, 여기만 간다면.' 하는 사람들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정말 소소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느끼는 두 번째 부류도 있다. 마치 빨래방 이웃주민들 같이 말이다. 막연한 '~한다면'의 꿈을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걸 이뤘을 때 더 행복해졌을까? 결코 그렇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그럴 수 없다.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원한다. 로또 당첨자들을 보라. 평소처럼 사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하고자 열성인 사람들은 오히려 망가졌다.


나는 이젠 그냥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고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할수록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로또가 되어도 행복할 거다. 신상품을 사도 행복할 거다. 먹고 마시며 노는 것도 행복할 거다. 근데 그런 거 말고, '지금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걸 하고 누리고 싶은걸 누리고 싶다. 매일의 순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만이 행복감을 길게 유지할 수 있기에.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며 굳이 탕진잼, 욜로를 즐기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밖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막연한 꿈만 가지고 레이스에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페이스 조절을 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경로를 이탈해선 안된다는 거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 이렇게 달려가는 게 맞는지. 더 효율적이고, 더 도전적인 방법은 없는지. 내가 부족한 건 없는지 성찰적 사고를 통해 경기에 임해야 한다. 이런 사고 없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괴롭고 거지 같은 현실이 펼쳐지며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거다 착각하지 마라. 그 고통에 안주하지 마라. 고통을 겪는 자체를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즐거움과 행복은 누리지 못한 채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옳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때 나오는 호흡까지 온 신경을 '순간'에 집중한다면 레이스는 힘들고 지치지만 즐거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견뎌야 할 고통이 맞는가? 계속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확신이 안 선다면 당신이 안주하는 고통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합리화일 뿐이다. 당신이 고통스럽게 노력한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핑곗거리가 무한대로 생겨난다. 어쩌면 그렇게 핑계 대는 게 편하기도 하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끊을 건 끊어야 하는데 무뎌져서 그러지도 못한다. 그런 고통은 버티고 견뎌봤자 당신이 미래에 원하는 그것을 진정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도대체 당신이 뭘 알길래 그런 말을 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답은 당신이 제일 잘 안다. 힘겹게 발버둥 치면서도 행복과 즐거움은 하나도 없이 애만 쓰는 당신은 이미 확신이 없다. 당신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분명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로 멋진 몸매를 꿈꾸는 그대가 운동하며 근육통으로 아프고, 숨이 차서 힘들고, 피곤해서 가기 싫은 날들이 반복된다. 막상 하고 나면 개운함과 뿌듯함, 행복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운동과 식단의 과정에서 매일 느껴지는 몸의 변화도 있고, 그게 하루씩 쌓여가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다. 모든 일의 인과는 결과에 의한 과정이 아니라 과정에 의한 결과이다. 매일의 순간에 충실했던 일련의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승리했다.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결과까지 얻게 되니 당신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목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통으로 다가올지라도 그 안에 분명히 즐거움과 성취감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억만장자가 되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는 시간 제외 돈만 번다면?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이 포인트다. 돈을 벌고 벌어도 목표한 억만장자가 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며 돈을 모으고자 한다. 그렇게 모은 돈은 본인 속의 양심이 이미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당신의 마음을 소모시킬 뿐이고, 양심이 메말라가며 인간적인 면모도 없어진다고 느낀다. 또 다른 예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순수한 매일의 노동으로 작은 성취를 이뤄내더라도 스스로 성취감을 얻지 못한다. 성취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는 부자가 되고 싶은데, 되어야 하는데 아직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가 발견된다. 첫째, 목표와 과정은 아주 큰 연관성이 있다. 아무리 목표가 뚜렷하다 한들 거지 같은 과정이라면? 행복은 물론 도덕성도 찾아볼 수 없다면 목적지가 확실하다 하더라도 과정이 잘못된 건 틀림없다.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건 해당 목표의 근본적인 근거 또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둘째, 부자가 되는 것만이 행복해지기 위한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과연 목표하는 돈을 모았을 때 진정 행복할까? 목표를 이루기 위하는 과정에서 '진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은 안 들까? 이런 케이스는 목표치에 도달하더라도 공허할 것이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다.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져서 행복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고 그 이후에 이어질 당신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 그토록 원하는 부자가 되었는데, 그다음은?







먹고 마시고 노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분명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확답할 수도 없는 일 또는 비현실적인 일을 붙잡으며 행복해질 거야 고군분투하는 건 좋지 않다. 당장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막막하다면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라. 소소한 부분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느끼며 감사하라. 감사 속에 행복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느낀 그 행복을 유지해야 한다. 길을 걷다 주운 천 원으로 행복감을 얻었을 때 오래갈까? 그런 '웬 떡이냐?' 행복 말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을 이어가야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느낀 개운함에서 행복을 느껴봐라.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상쾌한 공기를 맡아봐라. 오늘의 점심메뉴 중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와서 행복을 느껴봐라. 빨래가 잘 돌아가서 감사하라. 냉장고가 시원해서 기뻐해라. 내가 그냥 별문제 없이 살아가서 감사하라. 당신이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행복으로 그 소소한 행복감을 유지해가면 삶이 더 윤택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큰 우주 속 작은 지구 속 또 작은 나, 별 존재가치 없는 내가 아닌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봐라. 그러다 보면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가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내면을 더 들여다볼 것이다. 행복은 습관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말할 게 없다. 다만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힘들고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내가 진정 이루고자 하는 '그것'을 보며 견뎌라. 순간의 짜증 같은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잠잠해질 것이다. 감정은 폭풍과도 같아서 당신이 요동치면 함께 휩쓸려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잠자코 기다리면 지나가기 마련이다. 폭풍 이후가 진짜 당신의 모습이니 요동치지 마라. 그 안에 행복이 있고, 반복되는 여정에서 행복 찾기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목적지에 다다라 있을 것이다.




한 번의 행복을 위해, 한 스푼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일상에서 소소한 경험들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얻은 행복은 지속할 수 있고 당신이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훨씬 커진다.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의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가길.


그렇게 당신이 원하는 바에 다가섰을 때

일상에서 모아두었던 행복 에너지를 폭발시켜

몇만 배의 시너지 효과가 내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4시, "엄마 쉬야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