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이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도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폐기되듯 내던져진 채 절망에 빠진 사람들, 그들 속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주머니에서 작은 라디오를 꺼낸다.
“어쩌면 음악이 필요하겠군요”
절망 사이로 루이즈 봉파의 노래 ‘삼 볼레로(Sambolero)’가 흐른다. 기타 연주에 맞춰 남자의 허밍이 가볍게, 부드럽게, 친숙하게 흐르면서 사람들은 안식을 찾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낭만’을 봤다. 이성의 작동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자유와 안식이라고 할까. 나에게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경험한 ‘낭만’적인 순간이 있다. 30년도 훌쩍 넘는 세월 속에서도 아주 가끔 찬란하게 빛을 내는 기억이다.
살인
살인
살인미수
살인미수
사기
사기
교도관이 철문 열쇠 구멍을 맞추는 짧은 순간에 문 옆에 붙어있는 문패를 빠르게 읽어 내는데 겁이 더럭 났다. 구치소장이 좀 전에 했던 말이 공갈은 아닌 모양이었다.
“너 같은 악질은 혼이 나봐야 돼. 무시무시한 방에 넣어 줄게”
교도관의 지시로 슬리퍼를 들고 방에 들어갔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주르륵 펼쳐진 녹색 삼단 요, 그 위에서 수십 개의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회색 수의를 입은 여자들 속에서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손으로 문 앞을 가리켰다. 거기가 내 자리인 모양이다. 일단 다소곳이 앉는데 사람들이 조용히 모포를 덮고 누웠다. 이내 불이 꺼지고 나는 두려움보다 무거운 피곤 덕분에 금방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점호 소리에 일어나 앉았을 때에야 천천히 방 안 풍경이 들어왔다. 비닐로 된 창문으로 3월의 햇살이 들어왔다. 구석에 놓인 화장실 역시 비닐로 된 문이어서 안에서 일을 보는 사람의 움직임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한쪽 벽면에 걸린 선반 위에 가지런히 세면도구들과 식기들이 정렬해 있고 빨랫줄에는 색색의 수건들이 걸려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감방에서 수건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실오라기를 계속 뽑다 보면 얇고 보드라운 면만 남는데 손수건으로 손색이 없었다. 수건에서 뽑아낸 색실들은 화려한 꽃으로 변신하여 수감자들의 머리핀이 되었다. 사람들이 재판장에 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돌았나 싶어 기함했다고 한 바로 그 노란색 꽃 핀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햇살에 반짝이는 플라스틱 식기들, 벽에 걸린 수건들, 거기에 두런두런 사람 소리까지 얼마나 정겨운지 자꾸 방바닥에 누워 뒹굴고 싶어질 정도의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젯밤 훑은 죄명들이 불안했다. 이 작은 방에 나를 포함해 열네 명이 수감되어 있는데 무려 여덟 명의 죄목이 살인이고 나머지는 사기였다.
저 중에 누가 살인범일까? 사기꾼 얼굴은 좀 다르지 않을까? 며칠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이방에는 지방에서 1심 선고를 받고 항소한 미결수들이 많았다. 유독 살인 죄목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였다. 모두들 항소이유서를 쓰고 재판 날을 기다리며 날짜를 지워가는 중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스물네 시간을 붙어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오갔다. 간간이 농담이 오가고 박장대소의 웃음소리까지 방안에 흩어졌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주현미의 짝사랑에 맞춰 몇 사람이 일어나 가볍게 스텝을 밟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한 번씩은 쌍욕이 오가는 쌈박질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애인과의 동반 자살에서 혼자만 살아나 살인 죄목으로 들어온 여자는 해 질 녘이면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친구를 죽이고 들어와 5살 아들을 그리워하는 여자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의 전부 인이 낳은 어린아이를 실수로 죽이고 들어 온 여자는 나처럼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에게는 속옷을 살 영치금도 없었다. 매주 토요일 면회 오는 어린 아들에게 이곳이 공장 기숙사라고 둘러대고는 6개월째 들어와 있는 사기범 아줌마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했다.
5월이 되자 구치소 담장 한쪽은 붉은 장미꽃 넝쿨이 뒤덮었다. 그 붉은색이 얼마나 느닷없었는지 처지를 잊고 나른한 환각에 빠질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살인범도 사기꾼도 그 작은 꽃을 향해 웃었다. 순진하고 환한 웃음이었다.
그즈음 나는 단식농성으로 하루 30분의 금쪽같은 운동시간에도 방에 누워있어야 했다.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기범 아줌마가 가슴팍 수의 속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꺼내 내미는 것이었다. 회색의 수의 속에서 빨간색 장미를 꺼내 드는 그분의 손짓은 흡사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행여 교도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떤 처분을 받을지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날에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운동을 끝내고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내 방을 지나는 누군가 머리맡으로 장미 한 송이를 던졌다. 그리고 이어서 몇 개의 장미가 툭툭 던져졌다.
당황스러워하는 나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가 익살스럽게 윙크를 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발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장미들이 미친 것처럼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나와 몇몇 사람들이 5.18 관련 단식농성을 하는 바람에 매일 저녁 구치소가 시끄러웠다. 취침 시간에 맞춰 구치소가 떠나가라 재미도 없는 연설을 해댔다. 그때마다 교도관들이 물려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다른 수감자들의 취침 시간이 지연되었고 나는 수감자들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일반 수감자들의 처지에서 세상도 모르는 순진한 이미지의 운동권이 외치는 정치적 구호에 동조했을 리는 없다. 그보다는 열흘 가까운 단식에 매일 교도관들의 곤봉에 위협당하는 어린애에 대한 보호 같은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그 무엇이었든 수감자의 처지에서 민감한 분란에 개입을 하거나 마음을 보태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다. 구치소 담벼락에서 가시 달린 장미를 꺾고, 고이 수의 속에 품고 들어와 교도관의 눈을 피해 던지기를 감행하기까지 그분들이 느꼈을 두근거림, 설렘을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열흘의 단식농성에도 징벌방에 끌려가지 않고 무사히 남은 기간을 마치고 나왔다. 스스로 몸을 통제하고 사람과의 거리에 예민한 요즘의 시절을 살면서 낭만의 작은 라디오와 붉은 장미가 자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