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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당 Sep 07. 2021

10분짜리 강의

졸업생 다섯 명이 이 동네 계곡으로 휴가를 왔다고 한다. 밥 사달라고 하는 걸 보면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인 걸 알 수 있겠다. 면에 새로 생긴 중국집이 있으니 거기서 보자고 했다. 졸업생 방문이 늘 반가운 건 아니다. 졸업생들은 옛 선생 앞에서 새삼 놀랍지도 않은 비행 영웅담 썰을 풀면서 향수에 젖고 싶어 하고 그 결론이라는 것도 늘 식상하다. 학창 시절이 좋았다는 둥 세상 다 그런 거라는 둥. 이런 얘기를 다 들어내고 비로소 보이는 그들의 혼란과 고민을 만나기에는 내 체력이 버티질 못하고 대게는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 지치고 만다. 가끔은 바쁘다는 거짓말로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되도록 얼굴을 보려고 한다. 시절이 그러니 안부가 궁금하기도 해서다. 

좀 떨어진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아 있던 남자아이들이 내가 들어서자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직도 술이 덜 깬 아이의 목청이 높아서 나는 얼른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근데, 너희들 올해 몇 살이니?” 

졸업생을 만나면 초반에 꼭 나이를 묻는다. 그래야 재학 시기와 지금의 근황을 제대로 짚을 수 있다. 

“스물네 살이나 먹었어? 군대는 갔다 왔겠고 다들 백수야?” 

세 명은 백수고 두 명은 아직 학생이라고 그 목청 높은 아이가 정리해줬다. 

그리고는 불쑥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엊그제도 또 꿈을 꿨어요. 선생님한테 혼나는 꿈이요. 기억이나 하세요? 두 시간 동안 야단치신 거요. 그게 얼마나 자주 꿈에 나타나는지 아시냐고요. 하하하” 

언젠가 전화로 했던 꿈 얘기가 얼핏 기억난다. 

얘네들 1학년 때 내 수업 시간이었다. 원시시대를 담은 영화에서 이제 막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참이었다. 

“저 계집년은 누구예요?” 

키득거리는 아이들을 한 번 둘러보고 나는 영화를 껐다. 희색이 만연하던 아이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아이 기억으로는 그때부터 두 시간 동안 혼이 났다는데 내가 분기탱천한 시간 치고는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계집년’이라는 단어가 건드린 감정은 고릿적 가족사부터 펄펄 뛰는 정치적 분노에 이르기까지 결코 두 시간으로 해소될 수 없는 층위의 두께였다. 

아이 말로는 그 후로 자주 가슴 철렁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한테 고맙다는 거지?” 

“감사하지요. 그래서 저 연애도 잘해요. 남자 페미니스트 되려고 책도 많이 읽었다니까요.” 

“나 같은 선생 만난 게 행운인 줄이나 알아. 이놈아. 하하”     

밥값을 지불하고 나와 식당 앞 테이블로 아이들을 모았다. 스물네 살의 거무튀튀한 남자들 다섯이 쪼르륵 의자에 앉았다. 

“너희들 밥값으로 내 얘기 10분만 들어라. 딱 10분만 할게.” 

“오늘 10분 강의 제목은 ‘운칠기삼’이다. 인생 성공의 70프로는 운이고, 30프로가 노력이라는 말이다. 어느 경제학 교수는 인생 성취의 80프로가 운이라고 칼럼을 썼던데 나는 70프로라고 말하는 거야. 무슨 차이인지 근거는 없고, 다만 사자성어가 입에 착 붙잖니. 하하하.(하하하) 여기서 운이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으로 태어난 나라, 부모, 건강 같은 것이고, 살다 보면 행운처럼 만나는 우연들을 말하지. 다들 성공하려고 난리 치고 뭐 좀 해내고 나면 몽땅 자기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의기양양하지만 그건 착각이라는 거지. 잘 생각해봐라. 태어난 나라와 부모 조건, 그 덕분에 만난 사람들 없이 그런 결과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인 너희가 굶어 죽기는 성공하는 것만큼 어렵단다.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잖니. 또 너희 부모님들이 너희들을 그대로 놔두지도 않아. 굳이 대안 교육시키겠다고 유난 떠시는 분들이잖니. 그러니 굶어 죽을까 봐 걱정하지 말고, 노력 안 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울증 걸리지 말고, 자살은 더더욱 생각도 하지 말고...” 

논리도 부실한 얘기에 나 혼자 감동해서 목이 메고 급기야 컥컥 거리며 “십 분 강의 끝”을 외쳤다. 뜨거운 햇빛 속에서 상을 찡그리고 듣던 아이들이 어설프게 박수를 서너 번 치는데 바로 그 아이가 여전히 술 취한 목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선생님 생각인 거지요?” 

나는 활짝 웃으면서 큰 소리로 답했다. 

“당연하지”      

올해 두 명의 졸업생이 자살을 했다. 그동안 간간히 사고사 한 졸업생의 부고를 접하고 안타까워했으나 자살 소식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순식간에 죄책감에 휩싸이면서 급기야 구토를 해댔다. 가난한 스물아홉 살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 후로 선생질에 겁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AS 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아이들 마다 붙잡고 말하게 되었다. 굶어 죽을 가능성 없으니 우울증 걸리지 말고 자살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거기에 덧붙여서 고백한다. “옛날에 내가 했던 말들 말이야. 그건 다 내 생각일 뿐이야.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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