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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Apr 05. 2020

009. 8천만 년 시간을 거슬러.

몽골. 고비사막투어(2)



지난밤 간바가 붙인 장작 불꽃이 옮겨 붙은 듯, 뜨겁고 쿵쾅대는 가슴으로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일정을 준비해야만 했기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직 밖은 어두웠지만, 저 멀리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지평선 끝에서 시작되는 일출.. 그리고 몽골 유목민의 거처인 게르가 보인다. 



땅 끝…. 

가로막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수평선 끝자락에, 저 멀리서 빼꼼 얼굴을 내민 태양은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순식간에 대지까지 붉게 물들여버렸다. 

찰나였다. 

간밤의 어둠을 끝내고, 세상을 다시 빛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다림은 길지만, 정작 보일 듯, 말듯 한참을 애태우다가, 눈 깜짝할 새에 그 전부를 드러낸다는 것을..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일출을 보았다고 하기가 무색해진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를 마주한 오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다릴 동안 준비하고,
결정적인 장면에 집중하고,  
그 순간에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는 것을..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 

부디 오늘 이 순간을 놓쳤다라도, 아직 내게 결정적인 장면을 마주할 순간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고 

계속 전진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차강 소브라가 Tsagaan Suvraga)



푸르공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무릎을 마주하고 깜빡 잠에 빠져들기도 했고, 몽골의 노래 가락을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했으며, 네모난 창문으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평원을 바라보기도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붉고 하얀색의 토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이드인 바타의 설명에 따르면 ‘차강 소브라가’ 이곳은 원래 바다였다고 하는데, 이 지대 석회암 지층이 융기하면서 지금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바다 저 깊은 곳, 그때는 해저였을 땅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괜스레 숨을 깊게 들여 마셨다. 



혹시라도, 내가 밟고 있는 이 흙, 깊숙한 곳, 그 어디쯤엔가 바다 유전자가 남아있지는 않을까.

바다의 짠 내음을 느껴보려 했다. 

마른바람이 부는 이 곳에, 짠 내음이 날리 만무했지만, 이런 행위들로 인해, 억겁의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곳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지난 세월 흔적을 느끼려 했다.  






#바양작 (Bayanzag) 



다음 날, 불타는 절벽이라 불리는 바양작으로 향했다. 

이곳은 미니(mini) 그랜드 캐년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면서, 미국의 한 탐험가에 의해 공룡알이 발견되면서, 그가 붙인 <불타는 절벽> 이란 이름도 같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공룡 화석과 알이 출토되었고, 여기서 발견된 화석 중 가장 유명한 <싸우는 공룡들> 은 몽골의 국보로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가보지 못해서 느낌은 비교 불가하지만, 절벽처럼 가파르게 떨어지는 곳도 있고, 마른땅이 쩍쩍 갈라진 곳, 협곡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곳도 있었다. 불타는 절벽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이지 아찔했다. 혹시나 그럴리 만무했지만, 공룡의 흔적을 찾아, 공룡알, 화석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정작 실제로 공룡알을 보아도,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불타는 붉은 절벽. 바양작에서.. 절벽 위에 서 있는 것만 봐도 아찔하다. 



어제 차강소브라가를 다녀와서 인지,  아니면 이제 몽골의 붉은 대지에 익숙해져서 인지, 큰 감동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여행지에서 큰 감명을 받아야 할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8천만 년을 뛰어넘은 시공간에 지금 발을 붙이고 서있다는 것이고, 함께 하는 이들이 모두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온 친구들 마냥 찰떡같이 마음이 맞다는 것이었다. 



불타는 절벽에 한참을 서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번져나가, 멀리 지평선 끝으로 사라져갔다. 





#홍고린 엘스 (Khongoryn Els)



불타는 절벽에 이어, <노래하는 언덕> 이라 불리는 사막, 홍고린 엘스에 석양을 보러 향했다. 

높이 300m, 폭 1.2km, 길이 100km의 거대한 모래언덕 사막! 

이쯤되면 언덕이라는 말보다, 오히려 작은 모래 도시라 불리우는게 무방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사막…이라니… 사. 막. 

사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설렘으로 심장이 요동쳤다. 두근두근.

드디어 사막으로 간다고….?! 



내가 그려왔던 사막의 이미지는 그랬다.

황량하고, 삭막하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

영화에서, 책에서 그려내는 사막의 다른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그리고. 오. 아. 시. 스 



절망이 가득한 땅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허락하는 모래 도시 속 작은 희망. 오아시스. 

다시금 요동치는 심장. 두근두근 



지평선 앞으로, 높은 모래 벽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저 끝 능선까지 오르기만 하면

건너편으로 지는 석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 바타를 따라, 그가 내디딘 발자국에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지그재그 사선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쑥쑥 빠져들었다. 

모래 알갱이들이 발을 감쌌다. 내 몸뚱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깨의 짐 그 무게만큼, 

사막의 모래를 파고들어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이 쑥쑥 빠져들었다.

뿐만인가... 한참을 오르다 보니, 운동화와 양말 사이 틈으로, 모래 알갱이가 비집고 들어가, 마치 발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내딛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으면, 석양을 놓칠 수도 있었다. 서로를 격려해주며, 계속해서 올라갔다.그렇게 한참을 올라가고 나서, 앞선 바타가 뒤돌아 보았을 때, 우리는 드디어 능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바람에 모래가 입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입을 벌려 그 자리에 서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과, 붉게 물든 하늘. 찰나였지만, 영겁같은 순간이었다. 



끝없이 끝없이. 시선이 닿는 곳 전부가 모래 언덕이었다. 

그 위로, 태양이라 불리는 둥그런 불덩이가 하늘을 모조리 태우고 있었다. 



두 눈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고, 반은 모래요, 반은 붉은 하늘이었다. 



울컥. 

붉은빛이 일렁였다.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직접 느낀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분명 내 마음인데, 잘 모르겠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그런 것. 



서른넷.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몰랐던 세상.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사막.  

그 공간에 있는 나. 그리고 감싸는 공기.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들. 

그것이면 충분했다. 

.

.

여기에 오길 잘했다. 

그래. 떠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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