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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Apr 10. 2020

012. ‘다시’를 기약하다

몽골. 울란바토르



#울란바토르가 좋아졌다



꿈같은 홉스굴 호수여행을 마치고, 우리 최 자매는 울란바토르로 무사히 돌아왔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향기로웠던 캔버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신없이 얽힌 전선줄과 버스, 바쁜 사람들이 뒤엉킨 무채색 도시로 돌아왔다. 다시 아스팔트 도시로 돌아온 것은 서글픈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울란바토르'에 돌아온 것이 반갑기도 했다. 



비 개인 울란바토르의 정경. 도시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처음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했을 때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리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한국음식점, 식품점, 미용실, 커피숍 등등 한국어로 된 간판이 너무 많아서, 여기가 진짜 몽골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심지어 Seoul St. 서울이라 부르는 거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서울정> 한국-몽골의 우호관계를 잘 보여준다. 



거기에 몽골인에 대한 인상도 한몫했다. 

큰 광대와 날카로운 눈매에, 이마가 딱딱하고 다부진 편이어서 가만히 있으면 화난 얼굴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2000년대 초 방영했던 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랄까. 요즘 말로 레트로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친숙한 얼굴이었다. 확실히 백인이 많았던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보다, 울란바토르의 몽골인들을 보는 게 훨씬 더 정겨웠다. 



#술과 벗, 벗과 술 



루씨

그녀는 코이카로 활동하는 단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느라 울란바토르에 거주 중이었는데, 같은 시기 있었던 신애가 루씨를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처음 만난 날부터 살갑게 유월이라 부르며, 울란바토르에 있는 동안, 그녀의 집에서 머무르며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심지어 얼마나 있을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최 자매는 떠나고, 나와 루씨의 동거(?) 생활이 이어졌다. 



루씨는 바빴다. 

그녀가 출근하면, 나는 방 청소를 하거나, 밖으로 나가 볼일을 보곤 했다. 그 볼일이라는 것은 여행자로서의 일이었다. 우체국에서 가서 한국으로 엽서를 보내거나, 커피숍에 가서 커피가 아닌, 맥주를 마시면서 일정을 정리하거나, 백화점에 가서 사지도 못할 기념품을 만지작 거리거나,  눈으로 만족해야 할 마두금(몽골의 전통악기)을 보면서 마음속에 저장하는 일 등이 그것이었다. 



몽골의 전통악기인 <마두금>  말머리 장식이 인상적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다가 루씨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술 한잔을 걸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곤 했는데, 하루 중 늘 이 시간을 기다렸다. 루씨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말솜씨가, 마치 한 편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10월 초, 벌써 하얗게 눈이 내리기 시작한 울란바토르의 쌀쌀한 밤. 

거실 테이블 위에 밝힌 양초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기와 부딪히는 술잔. 이렇게 편하게,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녀가 베풀어준 온정 덕분이었다. 나도 처음 본 누군가에게 이렇게 선뜻 호의를 넘어선 배려를 베풀 수 있을까. 루씨의 마음은 감사함에서 그치지 않고, 성찰하게 했다. 그녀와 있으면서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긍정적인 만남이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편안한 벗을 만났다. 



그녀의 집에는 없는 게 없었다. 

특히, 손재주가 많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루씨의 옷장은 여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임에 분명했다. 가끔 루씨의 옷을 입고, 울란바토르의 멋쟁이처럼 하고 돌아다닐 때면, 내가 꼭 여기에서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달살이>처럼 현지에서 생활하며 여행하는 건 멋진 일이었다. 물론 한 달씩이나 보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함께하는 시간들 동안
루씨는 내 감정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여행자로서의 설렘,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해내야 한다는 그 어떤 책임감,
그리고 이면에 숨겨놓은 막연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해서 말이다.  



루씨의 옷장에는 몽골전통의상도 있었다. 마지막날 그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진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루씨가 출근한 사이에 밖에 나가서 한 여행자의 볼일 중 하나는, 다음 여행지를 위한 기차 티켓을 예매하는 것이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발 – 러시아 이르쿠츠크 착 기차였다. 이 기차도 1박 2일간 국경을 넘는 침대 칸이 있는 열차였다. 시베리아 열차를 타 본 경험이 있어서 부담스러운 이동시간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는'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의 고통과 함께였지만, 지금의 나는 몸도 마음도 치유 되어 더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었다.



쇼타임! 

'이제 다시 건강한 여행을 즐길 순간이 온 것이다.!'



오후 출발 기차였으므로, 마지막으로, 몽골 국립병원에 인사하러 갔다. 

며칠 전, 최원규, 이연경 선생님께서 바쁘신 시간을 쪼개어 맛있는 점심도 사주시고, 가기 전에 병원에 들려, 꼭 비상약을 챙겨가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밀려드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이렇게 타지에서 만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까지 챙겨주는 모습에, 넘치는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사랑과 온정의 나눔은 그것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 나눠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은 잘 알게 되었다. 두 분 의사 선생님께 받은 사랑은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내가 다른 이에게 베풀어야 할 몫으로 남았다. 



두 의사선생님의 과분한 마음에 세 송이의 꽃으로 화답했다.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두 분 이셨다. 



신은 여행을 막 시작한 나에게, 평생 앓아 본 적도 없던 결석이라는 병을 주셨지만,

그것을 치료해줄 이를 보내주시고, 그로 인해 병든 육체뿐만이 아닌, 정신적인 부분까지 치유되게 하셨다. 그 분의 큰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15:22분 기차를 타기 위해 나가려고 하니, 루씨가 반차를 쓰고 나와서 기차역까지 바래다 준다고 했다. 그리고, 불편해하는 내 운동화 대신에, 그녀의 워커를 신으라며 주었다. 운동화는 여기에 둘 테니, 언제든 나중에 ‘다시’ 와서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어쩌면 유목민의 삶처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행 길에서 ‘다시’를 기약한다는 것은 힘든 일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루씨가 준 워커를 신고 따뜻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그녀와 헤어졌다.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작아지는 루씨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작별을 고해야 할 때 였다. 



안녕. 루씨

안녕. 몽골



#몽골여행 #울란바토르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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