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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Apr 13. 2020

013. 러시아 again! 친구들 again!

몽골 울란바토르 -> 러시아 이르쿠츠크 행 기차



#이르쿠츠크 행 기차



루씨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기차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 [블라디보스토크-> 울란우데] 구간의 기차에 비하면, 환경적인 면에서 말도 안되게 여러면에서 압도적으로 월등했다. 더욱이 2등실에 4인 침대인 이 열차 칸에, 몽골 아주머니와 둘이서만 사용하게 되어, 자리도 넉넉했다.



접어도 되지 않는 침대 매트리스, 문을 닫으면 외부와의 소음도 차단되었다. 

안에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가 있고, TV 도 있다. 물론 몽골 방송을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창밖 풍경이 아닌, 시선을 둘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차창 밖을 바라다 보는 것도 좋지만, 계속 바라다 보면, 이상하게 나는 병실에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입원해있을 때, 창문 밖을 보는 것 밖에 할일이 없었던 외로웠던 기억이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있나보다. 

또한 이어폰을 꽂으면 8개 채널이 있어 음악방송을 포함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도 있었다. 



총 4인실 객실 양 옆 벽에 거치대는 2층 침대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말고 손님이 없어서 넓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벽걸이 TV 는 물론 옷걸리와, 여닫이 출입문 뒤에는 전신거울 까지 붙어있고 없는게 없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기차가 이렇게 안락한 곳이었나. 마치 5성급 호텔에 머무르는 것처럼 마음도 몸도 편했다. 

이 정도면, 다시 66시간 아니 그 이상의 여정도 가능할 것 같았다.

승무원이 가져다준 시트커버로 매트리스를 정리하고, 흐트러진 내 마음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몽골 아주머니와 가족 얘기를 하다가, 아주머니 큰 딸이 22살, 아주머니가 42살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급히 아주머니에서 언니로 호칭을 급하게 바꾸었다. 그녀는 정말 동안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대화를 했는데, 언니는 몽골어와 러시아어, 나는 영어밖에 하지 못해서, 주로 사진들을 보며 손짓 발짓으로 소통했다. 그래도 마주 보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걸 보면,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열게 되면 말이다. 



이르쿠츠크 행 기차 동행 진짜 동안이었던 몽골 언니와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짧은 금발 머리의 나.



밤 11시나 되었을까. 

승무원이 분주한걸 보니 국경에 다가온 것 같았다. 나눠준 세관 신고서, 러시아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나니 몽골 출국 심사원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얼굴을 확인한 후 여권을 가지고 갔다. 잠시 후,  돌려받은 여권의 몽골 비자에 out  스탬프가 찍혀있다. '출.국' 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정차 후, 또 조금 더 달려 정차했다. 이번에는 러시아 입국심사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짐을 열어보라고 하고, 의례적인 검사를 하더니, 나를 보며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서보라고 한다. 한참을 이리저리 얼굴과 여권을 대조하더니, 탈색한 현재 머리 스타일의 내 모습과 여권 사진의 얼굴이 매칭이 안되는지, ‘치~즈’ 웃어 보라고 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 얼굴 구분을 잘 못한다고 하더니,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였구나 란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정말 위조여권으로 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도 다른 증명사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치~즈!'

1%의 의심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마지못해 그 자리에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는 표정이 달갑지 않다. 그리고는 입국카드를 회수해서는 그녀의 남은 업무를 하기 위해 옆 칸으로 이동해갔다. 


'입국심사 한번 요란하군!'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시끌시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객실의 손님의 입국심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금세 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몇이나 더 몰려왔고, 우리 몽골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심각한 얼굴을 빼꼼 내밀어 그 상황을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기차에서 내렸다. 나도 얼른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행동들은 마치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몽골 언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옆에 선 나는 부랴부랴 나오느라 외투를 걸치지 않았더니,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게 피부 세포 안 하나하나, 뼛 속까지 느껴졌다. 북에서 불어오는 더 차가운 바람. 그런데 더, 더 북쪽으로 가고 있다니... 추위를 죽도록 싫어하는 내가, 지금부터 시작하는 여행이 온통 겨울이라 불리는 계절을 기다리는 나라만 가게 생겼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동남아에 살았던 나에게 이 겨울은, 이 추위는 4년만이었는데 4년만의 겨울이 러시아라니! 시베리아 한파를 현지에서 체험하게 생겼다. 

그녀의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부스럭부스럭. 

간밤에 내려졌던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몽골 언니는 부지런히 짐 정리를 하고, 본인이 싸온 말린 고기와 치즈를 올린 식빵 한 쪽을 내게 주었다. 든든한 아침이었다. 도착 예정시간은 10:49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침구정리를 했다. 



그러나, 도착 예정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 기준 시간으로 계산된다는 것을... 

표에 적힌 도착시간이 오전이니, 실제로는 오후 4시나 되어야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몽골언니의 아침식사 나눔. 맥심믹스커피는 기차에서 승무원이 무료로 나누어준다. 
복도를 따라 객실이 있고, 통로 끝에는 화장실이 있다. 내가 머문 3호실 객실 칸. 



심심해진 나는, 기차 칸 복도를 서성거려본다. 그때 몽골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몽골 언니랑 분명 바디랭귀지로 즐겁게 얘기했지만, 이렇게 100프로 들리는 대화를 하니, 언어가 다시 중요하게 느껴졌다. 하룻밤 사이에, 갈대보다도 빠르게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 

그는 카드게임을 하는데 인원이 3명이라 한명이 부족하다고 같이 하자고 했다. 



‘내가 또 카드 게임을 잘하는 것은 어떻게 알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물론 몽골 청년이 친절하게 어떻게 게임이 진행되는지 영어로 잘 설명해주었다. 

훌라도, 원카도, 포커도 아닌 게임이었지만, 들어온 카드를 빨리 털어버리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금방 룰에 적응했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만큼 나는 한국 대표니까… 비장했다.

열 번도 넘게 게임을 했을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겸손해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았다. 깔깔깔. 우리는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기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 카드게임만한 게 없다. 



그러다가 몽골인 청년들은 어디로 가나 궁금해졌다. 이들은 동유럽 쪽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는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들은 이렇게 대륙을 통해서 이동이 가능한지라, 유럽으로도 유학을 많이 간다고 했다. 그래서 생긴 모습은 동양인이나, 마인드나 생각이 깨어있는 몽골인들도이 많다고 했다. 



반도로 된 우리나라는 북으로는 막혀있어,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니,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북쪽이 막혀있지 않았다면, 우리도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유럽 쪽으로 쉽게 여행이나 유학을 다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문화나 가치관들을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했던 섬나라 인 일본, 호주, 그리고 섬이나 마찬가지 인 우리나라는 유독 폐쇄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늘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의 얘기를 듣고나니, 알에서 깨어나 세상을 보기 위해 내디딘 걸음인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 러시아 again!  친구들 again!



창 밖으로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르쿠츠크”  오후 3시. 

지난밤, 국경을 넘으며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옆 침대 몽골 언니와 악수를 하고, 짧았지만 함께 게임을 하며 친해진 몽골 청년들과도 인사를 하고, 출구 쪽으로 발을 돌렸다. 



정말, 안녕 몽골! 그리고, 

이제 다시 러시아 시작이다. 러시아 again!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심카드가 터지지 않아, 새것을 사려고 기차역 내를 두리번거리는데, ‘taxi’ 라는 호객 소리가 들린다. 



아… 원재다...! 

우리 몽골 고비 투어의 막내. 20살에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원재가 여기에 마중을 나와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감격스러웠다. 기차 역 밖으로 나오자, 호상이까지 있었다. 이런 깜짝 선물이라니!

모스크바 기준시간을 착각해서 예상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는데, 기다려준 이 친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는 또 울컥했다. 

여행을 해서 감수성이 풍부해진 자인지, 감수성이 풍부한 자가 여행을 시작하게 된건지, 요즘 들어 울컥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다시 만난 그리웠던 얼굴들. 친구들 - 러시아 이르쿠츠크 역에서-



마침내 타지에서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 친구들 agian!



#러시아여행 #이르쿠츠크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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