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쭌스토리 Mar 29. 2019

006.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이동


낯선 남자의 방문에 심장을 쓸어내렸던 새벽의 해프닝은 잊고, 나는 당장 몽골 울란바토르로 떠나기 위한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섰다. 잠깐 괜찮아진 줄 알았던 통증은 걷는 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미리 챙겨 나온 타이레놀 한 알을 급하게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살짝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추워서... 그런 걸 꺼야.’


몸은 심상치 않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지만, 괜한 걱정을 하기 싫어서 애꿎은 날씨 탓만 했다. 


버스표를 사기 위해 마을 중심으로 나갔다. 화창한 날씨에 도로엔 트램도 다녔지만, 어쩐지 휑했다. 기존에 있던 버스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없어져서, 한참을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 몽골! 울란바토르!’를 몇 번이나 묻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거리에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서로 다른 대답을 들으면서, 이곳 저곳을 다니기를 한 시간째, 나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에게 최대한 간단한 영어로, 울란바토르행 버스 티켓 매표소를 찾는다고 했다. 때마침, 본인도 그곳에 간다고 하여 같이 이동했는데, 한참을 헤맨 뒷골목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하 핫...’


실소가 흘렀다. 

누구를 탓하리. 5분 거리를 한시간을 헤매어도 이건 순전히 러시아어를 못하는 나의 잘못이다. 이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 나라에 이방인으로 왔으면 최대한 그들의 방식에 따라야 한다. 


울란우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나와 아니 동양인에 닮아 있다고 느꼈다. 

알고 보니 몽골인이 주축이 된 브라티야 공화국의 수도가 울란우데였던 것이다. 얼굴은 비슷한데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 더 답답했다. 그들도 피차일반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더군다나 노란 머리에 하얀 얼굴의 나를 그들은 러시아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한 시간 만에? 버스 티켓을 손에 넣고, 잠시 여유가 생겨서 울란우데를 돌아보기로 했다. 

울란우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7m에 이르는 레닌의 두상이 있다. 아동을 위한 ‘그림으로 떠나는 러시아’를 읽어본 게 도움이 컸다. 세계사라곤 저 멀리 기억 속 서랍에 두고 도무지 꺼내보지 않아, 가물가물한 러시아 역사를 되돌아보는데 일조했다. 


소비에트 연방을 창시한 초대 원수이자, 아직까지도 러시아 국민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 레닌! 사실 나에겐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으나, 그 위용에 압도되었다. 누군가가 내가 죽고 나서 7m나 되는 나의 두상을 만들리는 만무하니, 레닌이 사후에도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게 되면, 이 두상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오페라 극장이 있는 분수대를 지나, 잠시 벤치에서 햇볕을 쬐었다. 이곳에도 비둘기들은 있었다. 


‘여기 비둘기도 광장을 좋아하는군.'


평일 오전의 광장에는 사람들보다 비둘기들이 더 많았다. 오히려 조용해서 더 좋은 오후였다.

여행을 하고 처음으로 햇빛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고통도 잊히는 듯했다. 


‘내일 이 시간이면 버스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이동하고 있겠지... 한시라도 빨리 몽골에 가고 싶다.’


그날 저녁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었는데, 고통으로 팔다리가 오그라 들어 바짝 몸에 붙이고는 잔뜩 쭈그린 채 침대에 옆으로 누워 진통제를 겨우 삼켰다. 이제 남은 약은 한 알 밖에 없었다. 지금 오로지 울란바토르에 한인 의사분이 있다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다음날, 버스 안에 몸을 실었을 때, 나는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버스 안의 온기로 겉옷을 벗었을 때도 나 혼자만이 추위로 가시처럼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마지막 남은 진통제 한 알을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애썼다. 


‘이게 ‘오한’이라는 것인가. ‘


진통제의 약 기운으로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해주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댔다. 


‘도착했구나. 울란바토르. '


주변의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호텔에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미리 예약했던 호텔로 향했다. 이런 컨디션으로 도미토리에 묵는 건 어쩜 더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더 고민하지도 않고, 택시를 잡아 호텔에 도착했다. 


그렇게 바라던 혼자만의 공간에 체크인을 하고, 바로 누워버렸다. 약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였을까. 죽음의 고비를 넘은 사람 같지 않게 또 몸은 괜찮아졌다. 이 요통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아플 때는 죽을 것 같고, 약기운을 받으면 또 살만했다. 욕조가 보여서 뜨거운 물을 콸콸 틀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죽긴 왜 죽어…’


사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란 걱정이 제일 앞섰다. 

주변에 그렇게 당당히 다녀오겠노라 선포했는데, 이렇게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귀국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는데, 당시에 나에게는 그런 용기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픔을 을 참고 여행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용기라고 느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고통은 심해져 갔다. 


'더 이상은.. 차라리 죽는 게 덜 아플지도 몰라..'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때쯤 킴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줬을 뿐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방 번호가 몇 번 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오한으로 떨리는 몸, 고통과 싸우는 신음소리. 점점 흐려지는 의식의 끈을 잡으며, 희미하게나마 호텔 직원들이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005. 한밤중의 낯선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